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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Sep 09. 2023

원이 엄마의 편지

머리 희어지도록 함께 살자던 당신, 내 꿈속에서라도 볼 수 있다면...

원이 아버지에게 


당신은 늘 나에게 말했었죠. 

“우리 두 사람, 머리가 희어지도록 오래 살다가 함께 죽자”고요. 그런데 당신은 어찌 나를 두고 먼저 갈 수가 있나요? 나와 어린 아이는 당신 없이 어떻게 살아가라고요. 우리는 이제 누구의 말을 듣고 누구를 의지하며 살아야 하나요? 이렇게 우리만 남겨 놓고 어떻게 당신 혼자 갈 수가 있나요? 당신이 어떻게 내 마음을 가져갔고 내가 어떻게 당신에게 마음을 줬는지, 우리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서로가 너무나 잘 아는데...  


자리에 나란히 누울 때면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그렇게 둘이 흰머리가 될 때까지 오래도록 사랑하며 살아갈 줄 알았는데 이렇게 일찍 떠나버리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요. 이제 내 마음은 어디에 둬야 하며, 이 어린 자식들 데리고 당신만 그리워하면서 살아가야 하나요?


당신 없이 나는 도저히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당신이 없는 세상에서 나는 한시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나도 데려가 주세요. 지금이라도 빨리 당신에게로 가고 싶어요. 이승에서는 당신을 잊을 수도 없고, 당신을 향한 애끓는 이 마음도 끊을 길이 없습니다.


당신은 그곳에서 평안하신가요. 그곳에서 당신도 나처럼 아프고 서러운가요? 이 편지를 읽는다면, 부디 내 꿈에서라도 나타나서 당신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리고 다정한 목소리로 나에게 아무 말이라도 해 주세요.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한도 없고 끝도 없지만, 이만 적습니다. 


병술년(1586유월 초하루 날 아내가 


* 이응태의 무덤에서 발견된 ‘원이 엄마의 편지’ 중에서


남편(이응태 1556∼1586)의 병환이 날로 위독해지고 아내(원이 엄마)는 자기 머리카락과 삼줄기로 미투리(신발)를 삼는 등 쾌유를 빌지만 남편은 어린 아들(원이)과 유복자를 남기고 서른 한 살에 숨을 거둔다. 

아내는 애끓는 마음을 편지에 담아, 남편의 관 속에 넣은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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