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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Sep 11. 2023

내 방을 가질 결심

어린시절 '내 방'에 대한 결핍과 로망 


1980년대 서울 쌍문동 골목에는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있었다. 

나는 그 아이들 무리 속에 한 명이었다. 작은 키에 단발머리, 통통한 양 볼은 불에 데인듯 늘 빨갛고 몸은 날렵해서 다람쥐처럼 요리조리 잘 뛰어다녔다.     


서울 도봉구 쌍문1동 301번지. 

허름한 단층 기와집은 내가 태어난 후 열여덟 살까지 살던 집이다. 작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고만고만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동네에서 나고 자랐지만 나는 사실 ‘가난’이 뭔지 몰랐다. 사실상 집과 학교, 교회만 오고갔으니, 아이의 시야와 개념은 쌍문동 작은 동네에 머물러 있었다. 이 아이가 쌍문동 외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안 것은, 동네에서 가장 먼저 들여놓았다는 우리 집 텔레비전을 통해서였다. 


화려한 가운을 입은 중년 여성이 흔들의자에 앉아 우아하게 차를 마신다. 운동장 같은 거실에는 커다란 소파가 마주보고 놓여 있다. 무엇보다 아이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이다. 난생 처음으로 아이가 본 부잣집 모습이다. 

푹신한 가죽 소파와 나무 흔들의자, 나선형의 2층 계단. 화면 속에 비친 화려한 집을 보면서 아이의 마음속에는 집에 대한 로망이 자리 잡았다. 

‘나는 언제쯤 저런 집에 살아보나?’ 

부러워했지만 어린 마음에 그런 2층 양옥집은 바라지 않았다. 아이가 꿈도 못 꿀 일이다. 그 때 내 소원은 그저 손바닥만한 공간이어도 ‘내 방’ 하나를 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어릴 때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사람은, 자기 방을 가지고 있는 친구였다. 

어쩌다 친구 집에 놀러 가면 그 집의 구조와 규모가 아닌, 친구의 방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내 방’이라는 게 없었기에  방을 가진 친구가 참으로 부러웠다. 

문을 닫으면 온전히 자기 세상이 되는 방, 나만의 방, 나만의 공간. 간절히 갖고 싶었던 그 공간을 나는 가지지 못 했다. 이러한 결핍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심해졌다.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할까? 사춘기에 이르러서 우리 집이 그리고 내 자신이 ‘가난하다’고 어렴풋이 느꼈다. 그것은 우리가 번듯한 집에 살지 못 해서가 아니라, 그저 ‘내 방’ 하나 없다는 사실 자체가 ‘가난’을 느끼게 했다.

 

대상이 분명치 않은 실망과 원망, 지독한 결핍은, 정작 어린 시절엔 몰랐지만 20대가 된 후에 나를 괴롭히듯 지독하게 따라다녔다. 어엿한 직장을 갖지 못 하고 여기저기 작은 업체를 전전하던 때, 모든 것이 불안정했던 20대 시절, 우리 집은 그야말로 이사를 밥 먹듯이 다녔다. 원치 않은 이사짐을 싸야 할 때, 나는 편안하게 살아가는 최소한의 집, 작은 오두막집이라도 '내 집'을 반드시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기본 생활인 '의식주'에서 나에게는 '주'가 가장 중요했고 하루 빨리 가져야만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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