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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Sep 11. 2023

쥐포를 못 먹었던 이유

좋아하던 쥐포를 멀리한 아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우리 동네에 나보다 한 살 많은 민정언니가 있었다. 

민정언니는 특이했던 게, 늘 쥐포를 입에 물고 다녔다. 먹을 게 많지 않던 어린 시절, 간식거리로 쥐포를 자주 먹었다. 겨울이면 난로에 구워서 쥐포를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동네 구멍가게에 가면 늘 있던 쥐포를 50원에 사먹었다. 값싸고 씹는 즐거움도 있어 당시 아이들의 최애 간식이었다. 그런데 유독 민정언니는 쥐포를 입에 달고 다녔다. 

나는 속으로 ‘쥐포가 그렇게 맛있나?’, ‘집이 잘 살아서 쥐포도 마음껏 사먹는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민정언니가 보이지 않았다. 하얀 얼굴에 공주풍의 짧은 치마를 입고 다녔던 민정언니는 늘 쥐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말은 없어도 잘 웃고 다니던 언니였다.


어느 해 봄, 아이들은 너도 나도 골목으로 뛰쳐나왔다. 

그 때 골목 귀퉁이에 있는 어느 집 앞에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당시엔 대문이 없는 집이 많았다. 대개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그 집의 현관이었다. 그런데 민정언니네는 마당이 있었다. 마당 안쪽에 현관문이 활짝 열려있고, 아이들이 그 안을 신기하듯이 쳐다보았다. 

나는 ‘뭐가 있나?’ 하면서 얼굴을 들이밀었다. 순간 내 눈을 의심할 정도로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민정언니가 엄마와 마루에 앉아있는데, 기존에 알고있던 언니가 아니었다. 


민정언니 머리는 빡빡 깎여 있었고 초점 없는 눈동자에 아기처럼 턱받침을 한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엄마가 떠 먹여주는 죽이 입에 들어갔지만, 씹지를 못 하고 입가에 침이 흘러 내렸다.

 

‘민정언니는 이제 8살, 학교에 들어갈 때인데 왜 저런 모습을 하고 있지? 그렇게 활발하게 다녔던 언니가 왜 갑자기 아기가 되었지? 학교는 못 가는 건가?’ 


동네 아이들은 신기한 구경이라도 하듯,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 했다. 어린 마음에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민정언니가 갑자기 아기가 된 이유는 모르지만, 여덟 살인데 학교에 가지 못하는 그 언니가 안타까웠다. 그것이 민정언니의 마지막 모습이다. 얼마 안 가서 민정언니 가족은 쌍문동을 떠났다. 그 후론 그 언니를 본 적도, 소식을 들은 적도 없다. 


내 어린 마음에는 ‘그 언니가 쥐포를 많이 먹어서 잘못되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기억 속에 쥐포하면, 민정언니가 자동으로 떠오른다. 그 언니의 마지막 모습을 봤던 것이 충격이었을까? 

나는 그 후로 쥐포를 잘 먹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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