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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Sep 06. 2023

내 친구, 희순이


1995년 7월 중순으로 접어든 어느 오후. 장마 비가 억수로 퍼부었다. 

창밖으로 계속 퍼붓는 비를 보면서 내 마음도 어둡고 우울했다. 취업 준비한다고 집에서 빈둥빈둥 시간만 때우고 있던 때였다. 밖은 어둡고 집안 분위기도 덩달아 우중충했다. 그 때 엄마가 나를 불렀다.


“쌍문동에 살았던 희순이라고 아니?”

“희순이? 그럼 잘 알지. 같은 동네 살았잖아, 초등, 중학교 같이 나오고.”

“글쎄, 희순이가 며칠 전에 발견됐다고 하더라.”

“뭐라고? 희순이가? 발견되다니?"

"며칠 전 삼풍백화점 사고 있었잖아."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했다. 내 친구 희순이가 죽었다고? 그것도 삼풍백화점 사고로? 희순이가 삼풍백화점에서 일했던 것인가? 엄마는 동네 아주머니에게 들었다고 한다. 

“엄마, 희순이 장례식 치렀어?”

“어저께 장례식 끝났다고 하더라.”

“그럼 나는 친구 장례식에도 못 가는 거야?”


나는 내 방에 들어와 방문을 닫고 멍하니 침대에 걸터앉았다. 

‘희순이가 그렇게 떠나다니, 만 스물 셋 나이에 뭐가 그리 급하다고, 나는 친구의 마지막 모습도 못 보는구나!’

머리가 하얗고 마음은 허공에 붕 떴다. 덧니를 드러내며 웃던 희순이 얼굴이, 눈물 맺힌 내 눈동자에 아른거렸다.


중학교 2학년 때로 기억한다. 나는 한동안 수업이 끝나면 희순이와 같이 집에 갔다. 내가 먼저 수업이 끝나면 희순이네 교실을 힐끔거리며 복도에서 기다리곤 했다. 그러면 희순이가 유리창 너머로 나를 보고 눈을 찡긋하였다.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목조목 집들이 모여 있는 쌍문동에 살았던 희순이와 나는 그렇게 하교길을 같이 걸었다.  

당시 희순이가 했던 얘기가 기억에 생생하다. 중학생 때 내가 덧니가 있었는데 “왠 다람쥐처럼 생긴 아이가 복도에서 교실을 힐끔 쳐다보는데, 자기 반 친구들이 제 누구냐고, 귀엽다”고 했다는 것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가 다르면서 그 후로 희순이와 연락이 끊겼다. 그러던 대학 2학년 때 수유역에서 우연히 희순이를 마주쳤다.

반가운 마음에 우리는 근처 카페에서 차 한 잔을 마셨다.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그 사이 나는 이사했고 희순이도 이사를 했다고 한다. 그래봤자 다 그 동네 언저리였다. 희순이는 전문대학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후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았다. 

전문대학 졸업 후 희순이는 서울 상계동에 있는 미도파백화점 의류 매장에 점원으로 일한다고 했다. 어느 덧 나도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던 1995년 봄이었다. 어느 화창한 일요일 아침에 희순이가 전화를 했다.

“요즘 뭐하고 있니?”

“나 취업 준비하고 있어. 너는?”

“나 백화점에서 일해. 그런데 너 혹시 00 백화점에서 주말에만 알바할 수 있니? 나 일하는 의류매장인데 주말에는 손님이 많아서 알바를 구하고 있어.”

“아, 그래? 어머 어쩌지, 내가 일요일(주일)에는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고 있어서 주말에는 일할 수가 없어.”

“그렇구나. 그럼 다음에 보자, 안녕!”


이것이 희순이와의 마지막 통화였다. 당시 어려운 형편에 내 처지에는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했지만 크리스챤으로서 주일에는 예배를 드려야했고 더구나 교사로 봉사하고 있어서 빠질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해 여름, 서울 강남에 있던 삼풍백화점이 폭삭 주저앉았다. 진한 분홍색깔의 거대한 백화점 건물이 두부가 뭉개지듯 처참하게 무너진 모습을 TV 화면으로 멍하니 보고 있었다. 


‘이게 실화야? 어느 재난영화에 나오는 장면 아니야?’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라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면서 우리 국민은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그리고 보름이 지났을 즈음, 그곳에 희순이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건물 붕괴로 스물 네 살 희순이는 별이 되었다. 삼풍백화점은 듣도 보도 못한 백화점 이름이었다. 당시 롯데, 신세계, 미도파 백화점이 유명했고 나는 ‘삼풍’이라는 이름은 붕괴사고 후 처음 들었다. 그 전에 희순이가 전화로 나에게 얘기했던 백화점이 ‘삼풍’이었다. 통화 중에 생소한 이름이라 잘 알아듣지 못했고, 희순이가 그 백화점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만약 내가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면, 또 교사로 봉사하고 있지 않았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때는 빨리 돈을 벌어야했기에 뭐든지 기회가 있으면 아르바이트라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붕괴 참사를 피하지 못 했을까? 그 때 내 나이 스물 네 살. 대학을 졸업하고 막 사회에 발을 들여놓을 때였다.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모른다고 하더니 스물 네 살의 내 운명은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삼풍백화점 사고는 금요일 오후 5시 경에 발생했다. 설사 내가 그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더라도 주말에만 했을테니, 사고는 나를 비껴갔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한 치 앞을 내다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언제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여기서 후회없이 살아가고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꽃다운 나이에 황망하게 생을 마감한 희순이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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