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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Sep 06. 2023

재산은 나를 스쳐 가는 것

전남 해남의 대흥사 대웅전에 이런 글귀가 있다.


‘얻었다고 하나 본래 있었던 것이고, 잃었다고 하나 원래 없었던 것이다.’


이 의미를 짚어보면 재산을 많이 가졌다고 우쭐댈 필요 없고, 가진 것이 없다고 그리 불행한 것이 아니다. 얼마나 많이 갖고 사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가치임을 일깨운다.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았다.


어릴 때 밥을 굶거나 배고팠던 기억은 없다. 하지만 나는 여덟 식구가 북적대는 방 두 칸 짜리 단층 집, 그것도 우리 집이 아닌 사글세(이전에 ‘삭월세’라 함), 누가 봐도 넉넉지 않은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특히 동네 주민이 함께 사용하는 집 밖의 공중변소는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다. 내가 자랐던 1970년, 80년대, 그 때는 두루말이 휴지도 없어, 신문지를 찢어서 변소에 갔었다. 집안에 화장실은커녕, 샤워할 욕실이 없다보니 한 달에 두어 번 대중목욕탕에 가는 게 일상이었다. 부엌 옆에 간이로 씻는 곳 하수구에는 쥐들이 돌아다녔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병치레 한번 없이 그나마 건강하게 자랐는지 신기한 노릇이다. 어릴 때는 그저 동네 아이들과 산이며 밭이며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노는 것이 좋았다. 


어른이 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적은 월급이나마 내 손으로 벌었지만, 아끼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워낙 가진 게 없고 돈을 쓰지 못 했으니 근검절약이 저절로 되었다.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면서 번 돈을 대부분 저축했다. 사실 나는 돈을 쓸 줄 몰랐다. 그 때도 우리 집은, 집 한 채 없이 여기저기 이사를 다닐 때여서, 나는 그저 어엿한 내 방을 갖는 것이 소원이었다. 이는 내가 저축에만 몰두한 이유다. 얼른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마음이 크다 보니 내 용모를 치장하거나 나를 즐겁게 하는 것 따위엔 돈을 쓰지 못했다. 이는 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가정 환경과 성향, 가치관 등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었다. 당장 시급하고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었기에 버는 돈 대부분은 적금으로 들어갔다.


내가 마흔 살이었던 약 10년 전, 어느 여행에서 친한 언니가 이런 얘기를 했다.

“주희야, 아껴 쓰는 것도 좋지만 너를 위해서 조금씩 써보면 어떠니?”

“제가 일부러 아끼는 것은 아니고요, 마땅히 어디 쓸 데가 없네요.”

그 언니는 내가 외모를 잘 꾸미지 않고 옷도 털털하게 입고 다니니 일부러 돈을 안 쓴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면서 외삼촌 이야기를 꺼낸다.


“우리 외삼촌이 평생 일만 하다가 60세도 안 돼 덜컥 암에 걸렸어. 외삼촌은 젊은 시절부터 사업에 몰두했고 크게 성공해서 많은 돈을 벌었어. 그런데도 삼촌은 계속 일만 했지. 자신을 위해 좋은 옷 한 벌 사 입지 않고 오로지 돈을 모으는 게 목표인 사람처럼 일만 했어.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여행이나 취미활동도 하지 않았지. 아무리 재산이 많고 풍족해도 인생을 즐기지 못 한 거야. 그러다 어느 날 몸이 이상해 병원에 갔는데 덜컥 암 판정을 받은 거야. 그러더니 정말 얼마 안 가 돌아가셨어. 그런데 삼촌이 유언도 못 남기고 갑자기 돌아가시니 자식들이 재산 싸움이 난거야. 삼촌이 떠나고 집안 곳곳을 뒤져보니 현금만 3억이 나왔어. 그 돈을 더 갖겠다고 싸우고 난리였지. 그것을 보니 돌아가신 삼촌이 정말 불쌍하더라. 무엇을 위해 삼촌은 평생 일만 하고 자기 몸조차 돌보지 않았을까. 그 때 나는 절대로 삼촌처럼 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


언니의 삼촌이 일에 열정을 쏟은 만큼, 다른 것에도 관심을 갖고 인생을 즐겼더라면…. 

그가 남긴 것은 어마어마한 재산이지만, 결국 그 재산으로 인해 가족이 분열되고 해체되는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 오히려 재산이 없는 것만 못 한 꼴이 된 것이다.  


‘얻었다고 하나 본래 있었던 것이고, 잃었다고 하나 원래 없었던 것이다.’


이 글귀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어쩌면 재산은 신기루처럼 나에게 잠시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더 벌기 위해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아등바등 살지 않을 것이며, 세속적인 성공이나 부귀영화를 위해 내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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