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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Sep 06. 2023

소보루빵의 추억

청춘의 허기를 채우고 싶었던 빵 


20대에는 늘 무언가에 쫓기듯, 막연한 긴장감과 불안, 정서적 허기에 시달렸다. 

대체적으로 청춘이 그러하듯 경제적 결핍과 불안감이 내 청춘을 잠식했다. 20대 후반이 되었지만 이 직장, 저 직장 옮겨다니면서 어디 한 군데 정착하지 못 하고 늘 불안하고 조급했다. 꿈은 있었지만 현실은 막막했다. 1990년대 20대, X세대로 일컫던 시절의 나는 방황하는 청춘이었다. 지갑 속에는 신용카드 한 장 없이 몇 만원도 아닌, 천원짜리 몇 장이 들어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집에 있을 때는 돈이 없다는 사실을 체감하지 못 했지만, 밖에 돌아다닐 때는 비어있는 주머니만큼 허전함을 넘어 심각한 허기를 느껴야 했다.

 

정처없이 돌아다니던 어느 날, 서울의 한 백화점에 들어갔다. 식품 매장에서 빵과 우유를 사서 간단히 요기를 할 참이었다. 그런데 식품 매장을 지나가다가 외국어로 된 빵집 간판을 보았다. 그 앞에 발길을 멈추게 한 것은 식욕을 자극하는 빵 굽는 냄새였다. 오전이라 갓 구워진 빵들이 먹음직스럽게 진열돼 있었다. 철근까지 씹어 먹을 나이였지만 빈약한 주머니 사정으로 밖에서 먹는 것이라곤 빵이나 떡, 과자가 전부였다. 그래서인지 여기저기 돌아다닐 때면 육체와 정신의 허기를 동시에 느껴야했다. 

온갖 맛있는 빵들이 진열된 빵집으로 들어섰고, 마침 커다란 철판에 갓 구워진 소보루빵이 줄 맞춰 나왔다. 딱딱한 껍데기와 촉촉한 속이 어우러진 소보루빵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빵이었다. 그런데 소보루빵 마다 바닥에 빵 껍데기가 삐죽하게 붙어 있었다. 이 소보루빵을 덥석 구입하기에는, 돈이 넉넉지 않았다. 그런데 유독 소보루빵 앞에서는 식욕이 돋았다.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삐져나온 껍데기를 손으로 떼어 먹었다. 빵 바닥에 붙어있는 부스러기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아뿔사, 한 여직원이 내 행동을 보고 만 것이다. 나와 눈이 딱 마주쳤는데, 아주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곧장 그 빵을 집어서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다. 내가 미처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기 전에 순식간에 일어났다. 소보루에 직접 손을 댄 것이 아니기에, 그 빵은 사실 온전한 제품이었다. 하지만 그 직원의 행동을 탓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놀랐을 뿐. 분명 내 행동은 잘못된 것이다. 나는 순간 죄지은 사람마냥 그 자리를 도망쳐 나왔다.    

내가 그때 빵 하나 살 돈 조차 없었는지, 아니면 한 푼이라도 아끼느라 빵 하나도 선뜻 사먹지 못했는지 정확히 기억 나지 않는다. 다만 당시 형편이 어려웠고 제대로된 직장도 다니지 못 했던 때여서, 어떻게든 아낄 대로 아끼고 살아야했다. 가격이 비교적 저렴했던 빵, 먹고 싶은 빵 하나 마음 놓고 사지 못했던 시절이다. 돌아보면 청춘의 씁쓸한 기억이지만, 어쩌면 그 시절의 궁핍과 시련이 있었기에 나는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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