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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Sep 06. 2023

여행을 좋아했던 S언니

나는 20대 후반부터 여행작가로 활동하면서 취재차 여행을 많이 다녔다. 그리고 지자체 여러 곳에서 초청받아 가는 단체여행도 자주 했다. 그러던 어느 해 떠난 여행지에서 S언니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글쎄 S가 TV 뉴스에 나왔다네? 난 S가 우울증 때문에 그런 줄 알고 추모 글까지 올렸는데…”


‘뉴스에 나왔다고? 우울증은 뭐고, 추모 글은 또 무슨 소리지?’

군데군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그 전말을 알게 됐다. S언니는 며칠 전 사망했다. 이번 여행도 신청해 놓은 상태였다고 한다.


외국에 떨어져 사는 S언니의 남편이 아내와 연락이 안 돼서 경찰서에 실종신고를 했다. 경찰이 주거지인 아파트 지하 주차장 차량에서 S언니를 발견했다. 경찰이 아파트 CCTV를 조사했더니 S언니가 어떤 남자를 만나 차를 타고 나가고, 그 차량이 다시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장면을 포착했다. 유력한 용의자인 CCTV 속 남자를 추적하던 중, 경찰은 황당한 상황을 마주했다. 용의자 집에 들이닥쳤는데 방에서 두 명의 시체를 발견한 것이다. 용의자는 S언니를 죽인 후 자신의 아내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당시 뉴스에는 50대 남성이 내연녀로 추정되는 여성을 목 졸라 죽이고 얼마 후 집에서 부부싸움 중 아내를 칼로 찔러 죽이고 자신도 칼로 찔렀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나왔다. 뉴스 속에서 내연녀로 추정된 여성이 S언니였다. 생전에 봤던 S언니는 그저 여행을 즐기고 아름다운 우리 강산과 자연을 사랑하는 평범한 여성이었다. 범죄에 희생되지 않았다면, 늘 그렇듯 여행을 즐겼을 것이다. 


범죄는 모르는 사람 보다, 주변 사람이나 잘 아는 사람, 친밀한 사이에서 더 잘 일어난다고 한다. 가끔 뉴스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을 보면 그저 남의 일이라 여겼는데, 비록 친분은 없지만 아는 사람이 범죄 피해자가 된 경우는 처음이어서 충격이 컸다. 피해자는 살해됐고 유력한 용의자는 사망하여 실체를 못 밝힌 채 사건이 종결됐다. 

S언니의 죽음은, 혼자 외롭게 살던 유부녀가 외간 남자와 내연 관계를 맺다가 그 남자에게 살해된, 일명 ‘치정살인’으로 분류되었다. S언니가 왜 죽었는지, 왜 살해됐는지, 정말 내연관계였는지,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한 여성이 범죄에 희생돼 생명을 잃은 것도 억울한 일인데 ‘내연녀’라는 꼬리표로 치정살인의 주인공이 된 S언니. S언니의 갑작스런 죽음은, 이제껏 범죄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로 여기며 살아온 내게 경각심을 주었다. 여성이라면 특히 더 몸가짐, 마음가짐을 조심하고 또 함부로 사람을 만나지 말아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결코 일어나지 말아야 할 범죄,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살인 사건. 이로 인해 억울한 피해자가 생겨나고, 그 수가 점점 많아진다면 그 사회가 온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무리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풍요롭다 한들 온갖 범죄가 만연돼 있다면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이런 혼란한 사회에서는 어느 누구도 마음 놓고 살지 못 한다. 


어쩌다 일이 늦게 끝나 귀가하면, 혹시 누가 나를 쫓아오지 않을까, 나를 해치려 하지 않을까, 불안하고 무서운 마음에 밤길을 막 뛴 적이 있다. 심심찮게 터지는 범죄 사건을 뉴스로 접하면서 이런 두려운 마음이 조금씩 생겼다. 그래서인지 나는 예전부터 쓸데없는 약속을 만들지 않고, 늦게까지 술자리를 하는 경우가 없다. 나에게는 딱히 회식도 없으니, 프리랜서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한다. 결혼 후에는 지방 출장 등 일 때문에 늦어질 경우, 항상 신랑이 버스 정류장으로 마중 나온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별 탈 없이 마음 놓고 살아가는 것은 삶의 기본 중에 기본이다. 특히 우리 어머니와 딸들이 안심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안전한 사회가 지속되기를 바란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강산을 사랑했지만, 이제는 그토록 좋아하는 여행에 올 수 없는 S언니.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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