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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Sep 14. 2023

무제한 속도! 질주하는 쾌감! 오토바이

마치 속도 경쟁을 하듯 도로 위를 무한 질주하는 오토바이! 

세계적으로 대중적인 교통수단으로써는 물론 ‘오토바이 매니아’가 있을 정도로 다채로운 매력을 가지고 있다. 흔히 ‘모터사이클’로 통용되는 ‘오토바이’에 대해 살펴보자.



# 세계의 오토바이(모터사이클) 탄생의 역사

<1867년 프랑스, 자전거에서 발전한 오토바이의 탄생>


1860년 피에르 미쇼가 발명한 자전거가 프랑스 파리에서 생겨나고, 이후 그 아들인 어니스트 미쇼가 아버지 자전거에 이것저것 시도하던 중 증기엔진을 처음 장착하면서, 최초의 오토바이가 탄생하게 된다.



<1884년 영국, 3륜 모터사이클 첫 선을 보이다>


오토바이를 뜻하는 ‘모터사이클’은 자전거와 모터가 결합해 움직이는 이동수단이다. 따라서 자전거의 발전과 모터가 발명이 우선돼야 한다. 1984년 영국 에드워드 버틀러에 의해 3륜 모터사이클이 첫 선을 보였다. 

<1885년 독일, 세계 최초로 가솔린 엔진 모터사이클 제작>


영국에서 3륜 모터사이클이 나온 후, 독일에서 다이믈러 벤츠의 창시자로 유명한 고트리프 다이믈러가 세계 최초로 가솔린 엔진 모터사이클을 제작하면서 오토바이는 한 단계 발전한다. 독일의 고틀리프 다임러가 세계 최초로 만든 이래, 오토바이의 기본 원형이 유지되고 있다.



<1894년 모터사이클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금속본체 모터사이클 발명>


독일의 힐테브란트와 울프멀러에 의해 만들어진 모터사이클은 4개의 실런더와 사이클 모터(1500㎤)를 장착한 금속본체로, 당시 획기적인 발명이었다. 이 오토바이의 최고 속도는 시속 40킬로이며 공기타이어를 사용했고 쇠막대기가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등 획기적으로 발전하였다.



# 20세기 제 1차, 2차 세계대전과 오토바이


제 1차 세계대전, 보병 부대에 투입된 군용 오토바이

20세기 들어서 오토바이는 엔진의 속도만큼 빠르게 발전하였다. 1909년 미국 Indian사와 Pierce사에서 4개의 실린더를 장착한 오토바이를 생산하였고 1910년 영국 Scott사에서 개발한 오토바이에는 수냉식 2단 실린더를 비롯해 킥 스타터(Kick Starter)가 새로 선보였다.

이후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군에서 말을 대체할 수단으로 오토바이가 전투용으로 등장하였다. 보병 부대에 투입된 오토바이는 기관총을 신속하게 배치하는데 쓰였고 부상병의 빠른 이송, 탄약과 의약품을 최전선에 수송하는데 유용하게 쓰였다. 1차 세계대전에서 미군이 사용한 오토바이가 8만대 정도로 가장 많았다. 당시 세계 최고의 오토바이 회사였던 ‘인디언 모터사이클사’의 오토바이가 5만대였고 다음이 ‘할리 데이비슨’으로 2만대 정도였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유명한 영웅 오토바이로 목숨 잃어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오토바이와 관련된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유명한 영국의 고고학자이자 군인인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경이 오토바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하루아침에 영웅을 오토바이 사고로 잃게 되자, 온 나라와 국민들이 오토바이의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느끼고 이후 오토바이 헬멧을 발명하게 된다. 1962년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경의 생애를 다룬 영국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피터 오툴, 앤소니 퀸 주연으로 방영돼 큰 인기를 끌었다.



제 2차 세계대전, ‘오토바이 부대’ 적극 활용한 독일

제 1차 세계대전에 이어, 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유럽을 중심으로 전쟁에 참여한 나라들은 기병대 대신, 오토바이 부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오토바이 부대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국가는 독일로 전해진다. 2차 세계대전 역시 군용 오토바이가 많이 활용되었지만 1차 세계대전에 비해 직접 전투에 사용하는 비율이 낮았다.


한편 미군은 독일군에게서 노획한 Zundapp와 BMW가 생산한 오토바이가 우수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국의 할리 데이비슨 WLA'는 2차 세계대전뿐 아니라 한국전쟁에서 7만대가 사용된 오토바이로 알려져 있다.



# 우리나라 오토바이의 역사


우리나라에서 모터사이클은 언제 처음 들어왔을까? 우리나라의 오토바이는, 일제 강점기였던 1915년, 한국에 개신교를 전파하고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를 세운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의 아들 ‘원한경(호러스 호톤 언더우드)’이 미국에서 처음 들여온 것이 시초였다. 한국에서 최초로 생산한 모터사이클은 1962년, 기아산업(현 기아자동차, 모터사이클 부문은 대림자동차)이 일본 혼다와 제휴를 맺어 만든 ‘기아혼다 C100’이다.


1978년 효성기계공업으로 설립된 S&T모터스는 1979년 일본 오토바이 제조 기업인 스즈키와 기술 제휴 계약을 체결하면서 오토바이 제조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1986년에는 기술 연구소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독자 기술 개발에 나섰다. 1995년 국내 최초로 V-Twin DOHC(Double Over Head Camshaft) 엔진을 자체 개발했고, 2003년에는 650㏄급 엔진 개발에 성공하며 국내 최초로 오토바이 생산 풀라인업(Full Line up)을 갖추었다.



모터사이클 (Motorcycle)? 바이크? ‘오토바이’ 명칭의 유래

한국에서 오토바이는 법적 분류상, 이륜자동차/원동기장치자전거 항목에 속한다. 우리가 흔히 ‘오토바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영어의 auto와 bicycle을 합성한 일본어 ‘오토바이’를 그대로 쓰고 있다. 

‘오토바이’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수록된 표준어이자 전형적인 일본어식 영어로, 현재 한국과 일본에서만 사용하는 명칭이다. 우리나라 동호회에서는 ‘오토바이’가 일본어식이라는 이유로 영어인 ‘모터사이클 (Motorcycle)’ 이나 ‘모터바이크 (Motorbike)’ 혹은 ‘바이크 (Bike)’라는 명칭을 주로 쓴다.


오토바이의 역사는 자동차와 궤를 함께 한다. 오토바이의 원형은 자전거에 작은 엔진을 달면서 시작했고, 자동차의 원형은 마차에 엔진을 달면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 세계의 ‘모터사이클 경주’


‘자동차 경주’와 마찬가지로 ‘모터사이클 경주’도 시대의 변화 및 경제 성장과 함께 발전해 왔다. 1904년 국제 모터사이클 연맹은 오스트리아·덴마크·프랑스·독일·영국 등 여러 나라를 통해 국제대회(international cup)를 창설했다. 제1회 대회는 1905년 프랑스 두르당에서 개최되었다. 투어리스트 트로피(Tourist Trophy/TT) 경주는 1907년 시작된 뒤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모터사이클 경주로 발전했다. 북아메리카는 1903년 뉴욕의 미국 모터사이클리스트 연맹이 창설되면서 시작되었다.


모터사이클 경주의는 자동차 경주만큼이나 다양하다. 종류는 트라이얼(trials), 스피드웨이(speedway), 힐 클라임(hill climb), 랠리(rally), 모터크로스(motocross), 드래그 레이스(drag racing), 빙상경기(ice racing) 등 여러 경기방식이 있다. 트라이얼 경주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행해졌으며, 스피드웨이 경주는 1920년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시작되었다. 모터크로스는 험난한 코스에 일정한 수의 랩(lap : 파인 곳이나 굴곡)을 설치해놓고 진행하는 크로스컨트리 경주로, 1940년대 말 유럽에서 첫 선을 보인 뒤 많은 관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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