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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Sep 16. 2023

허주희의 人 인터뷰 3. 가수 진성

오랜 무명에도 놓지 않은 ‘노래의 끈’

‘바람에 날려버린 허무한 맹세였나~ 첫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경쾌한 리듬이 어깨를 들썩이며 절로 흥얼거리게 하는 노래 ‘안동역 앞에서’. 

'국민 트롯'인 이 노래의 원곡자는 가수 ‘진성’이다. 간드러지는 음색과 경쾌한 트롯 선율이 찰떡궁합으로 어울리는 천상 트롯 가수가 '진성'이다. 보릿고개, 태클을 걸지마, 님의 등불 등 본인이 직접 작사, 작곡하면서, 음악가로서 뛰어난 역량을 지니기도 하였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말,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대기만성’은 큰 그릇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뜻으로,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이루어짐을 이르는 말이다. ‘대기만성’은 가수 진성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가수 진성은 열일곱 살에 노래를 시작해 나이 쉰을 넘긴 후에야 비로소 ‘안동역에서’가 인기를 끌며 점차 트롯 가수로 자리를 잡았다. 진성은 단순히 대기만성형 가수가 아닌, 파란만장한 인생사와 감동을 주는 노래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의 불우하고 고단했던 인생사와 애절한 트롯 노래가 겹쳐지면서 대중에게 깊은 감동과 울림을 주고 있다.



긴 무명 시절 끝내게 해 준 노래 ‘안동역에서’

지난 2020년 진성은 환갑을 맞았다. 육십 대를 살아보니 “인생에 우연을 없다”고 하는 가수 진성. 그의 히트곡 ‘안동역에서’는 가수 진성을, 오랜 무명가수에서 벗어나게 해 준 고마운 노래다.


“안동역에서는 역주행한 곡이에요. 발매하고 4년 정도 묵혀 있었어요. 원래는 ‘안동 애향가요 모음집’에 한 곡으로 있었는데, 사람들이 ‘이 노래 어디서 들을 수 있냐?’고 문의가 왔고 늦게 서야 히트곡이 되었죠.”


대개 가수는 ‘히트곡’이 있어야 비로소 대중에게 인기를 얻고 무명 생활을 청산한다. 1994년 정식 가수로 데뷔했지만 그의 가수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데뷔와 함께 길고 긴 무명 시절이 시작되었다. 돈벌이가 안 되니 기본적인 생계유지가 안 되었다. 가수지만 노래를 들어주는 대중도, 가수 진성을 알아봐주는 사람도 없었다. 끝이 안 보이는 긴 터널처럼 어둡고 서글픈 무명 시절을 겪어야했다. 가수를 포기할 법도 했겠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저에겐 ‘노래’밖에 없었습니다. 노래가 그나마 고달픈 인생을 살아가는 유일한 희망이고 유일한 빛이었어요. 노래에 청춘을 바쳤기에 무명 생활이 길어도 포기할 생각을 못 했습니다. 세 살 때 부모에게 버림 받고 ‘떠돌이’처럼 혼자 외롭게 살다보니 일찌감치 ‘노래’로 인생의 방향을 정했습니다. 노래만이 유일한 버팀목이고 희망이었죠. 그 오랜 소망과 절실함이 있었기에 늦은 나이에 빛을 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트롯가수로 자리 잡을 무렵, 혈액암 투병 시련

긴 무명끝에 ‘안동역에서’가 히트하고 가수 ‘진성’이 인기를 얻어가던 2016년 경, 그는 갑작스럽게 림프종 혈액암 판정을 받았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앞으로 꽃길만 걸을 줄 알았는데, 암 판정은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더 두려운 것은 앞으로 가수 활동을 못한다는 것이었다. 만약 활동을 중단했다가는, 다시 오랜 무명 시절로 돌아갈 것이라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는 입원 6개월 만에 방송 프로그램에 복귀했다. 치료를 더 받아야 함에도 그에게는 가수로 활동하는 것이 진정 ‘살아있는’ 것이었다.


“무명시절은 겪어본 사람만 알아요. 제 나이 30대 중반까지 돈을 안 주면서 노래 부르러 오라는 데도 많았어요. ‘내가 바보야’, ‘태클을 걸지 마’가 나오면서 어느 정도 출연료가 생겼고 ‘안동역에서’가 나온 이후로 출연료가 열 배 뛰었어요."


팍팍한 현실에 작은 위안을 준 ‘트롯’

“트롯의 인기는 앞으로도 10년을 갈 것이라고 내다봅니다. 건강이 허락한다면 예순일곱까지 가수로 활동하고 싶어요. 이후 3년은 노래로 봉사활동을 하고요. 제가 자라면서 많은 아픔을 겪었기에, 저와 같은 아픔을 가진 아이들에게 희망을 보태주고 싶어요.”


2020년 초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한 트롯 경연대회에서 열네 살 정동원군이 부른 진성의 ‘보릿고개’는 많은 이들에게 눈물을 자아내게 했다. 배고픔이 일상이었던, 못 살던 시절의 애환을 담은 ‘보릿고개’는 진성이 작사, 작곡하고 또 직접 부른 노래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이후로 ‘안동역에서’가 최고의 히트곡이라고 말합니다. 노래방에서 6년간 일등을 했다고 합니다. 요즘은 ‘보릿고개’가 일등이래요. 보릿고개를 직접 겪어봤기에 서러웠던 그 시절을 노래에 고스란히 담을 수 있었습니다. 보릿고개 가사 하나하나가 대중의 가슴에 와 닿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굴곡진 인생을 살아왔지만, 그 한(恨)과 시련을 ‘노래’로 승화시킨 가수 진성. 

진정성이 담긴 그의 노래는 때론 감동의 눈물을, 때론 기쁨을 주면서 오래도록 대중과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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