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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Sep 20. 2023

허주희의 人 인터뷰 12. 소설가 김홍신

영혼이 살아 있는 강력한 행위 ‘글 쓰는 일’

국내 문학계에서 ‘최초’라는 기록을 두 번이나 세운 소설가가 있다. 바로 김홍신 작가다. 

무엇보다 작가에게 ‘이보다 영광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할 정도로, 자신의 이름을 딴 문학관이 세워졌다. 자신의 고향 땅에, 생존 작가 문학관으로 국내 최초가 아닐까 한다. 2020년 6월, 충남 논산에 개관한 ‘김홍신문학관’이다.


일반적으로 저명한 작가가 타계한 이후 그의 고향에 문학관이 세워지는 경우는 흔하나, 여전히 활동하는 생존 착가의 이름을 딴 문학관이 들어서는 것은 전례가 드물다. 


김홍신은 1980년대 소설 ‘인간시장’으로 판매 백 만 부를 돌파하며, ‘대한민국 최초의 밀리언셀러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김홍신 작가는 ‘김홍신문학관’ 개관식에서 “기쁨이 엄청나게 크면 말과 글로 표현할 길이 없으며, 그저 멍청해진다”고 하면서 “남은 인생,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라는 하늘의 명령으로 알고 계속해서 정진하겠다”고 밝혔다.



생존 작가의 문학관 ‘김홍신문학관’


‘인간시장’을 쓴 김홍신의 문학정신을 새기고, 지역 문화발전을 위해 들어선 김홍신문학관은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낸 충남 논산에 들어섰다. 크게 집필관과 문학관으로 구성된 이곳은 지역작가의 창작공간인 ‘집필실’을 비롯해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특별전시실, 그리고 문학전망대, 열린 극장 등을 갖추고 있다. 아카이브 공간에는 작가의 육필원고, 에세이, 칼럼, 기사, 사진, 영상 등 5천여 개의 기록을 아날로그와 디지털 방식으로 전시하고 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장편소설 ‘인간시장’은 그의 출세작이자 소설가 김홍신을 있게 한 작품으로,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의미를 갖는 작품이다.


“인간시장은 1981년에 출간되었습니다. 당시는 삼엄한 계엄령시절이었고 신문, 방송, 잡지, 책 등 모든 매체의 글은 계엄사에서 검열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런 서슬 퍼런 시절에 ‘인간시장’이 나왔고 출간 한 달 반 만에 10만부를 돌파했습니다. 2년 뒤에는 판매 100만 부를 기록했습니다. ‘인간시장’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밀리언셀러로 기록되었으니, 작가로서 굉장한 영광이지요.”


1980년대는 군사 계엄 치하의 억압 받던 시절이었다. 작가 김홍신은 주먹으로 이 상황을 깨뜨릴 수 없으니, 소설로서 억압된 사회를 ‘깨부수자!’고 다짐했다. 주인공 ‘장총찬’을 등장시켜 가진 자, 권력자, 재벌, 판검사, 군, 언론 등 부조리한 것들을 비판하면서 불합리한 사회를 두들겨 팼고 당시 국민들은 잠시나마 숨통이 트이는 통쾌감을 맛보았다.



계속 생각하고 고뇌하며 인내하는 가운데 글이 써져


1976년 등단 이후 김홍신 작가는 올해로 등단 47주년을 맞았다. 또한 나이 일흔을 넘긴 시점에서, 그의 이름을 딴 ‘문학관’이 완공했다.


“사실 요즘 글쟁이로 산다는 것이 힘든 게 현실입니다. 글쟁이가 생계를 위협 받는 시대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어렵고 배고픈 직업이라 해도, 저는 다시 태어나도 글쟁이로 살아갈 것입니다. 저는 죽는 날까지 머리맡에 원고지와 손에 만년필 쥐고 살 것 입니다.”


‘1만 시간의 법칙’에서 알 수 있듯, 어떤 일이든 한 분야에 오랫동안 매진하면 그 분야에 최고가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무리 오랜 세월 썼다고 해도 ‘글’이라는 것이, 기술자의 능숙한 손놀림대로 결과물이 척척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글은 쓰면 쓸수록 어렵다고 하지 않던가.


“글이라는 게 가만히 있다가 저절로 써 지는 게 아닙니다. 제 경우, 글이 가장 잘 써질 때는 마감 전 날, 밤늦은 시간입니다. 그때까지 무엇을 쓸까 계속 생각하고 고뇌하다가, 막판에 터지는 것이죠. 그만큼 급박하고 긴장된 가운데 글이 나오는 법입니다.”



3년간 두문불출, 역사소설 ‘대발해’ 집필 후 후유증 시달려

그는 여전히 손으로 글을 쓴다. 만연필로 한 자 한 자, 원고지를 채워나가는 작업이다. 지금까지도 컴퓨터 자판으로 글을 쓸 마음이 없다. 자판이 아닌, 손으로 쓰는 것이 그의 감성을 자극한다. 그래서 글을 쓸 때면 습관적으로 손에 만년필을 쥔다.


“십 수 년 전, 역사소설 ‘대발해’ 10권 분량으로 원고지 1만 2000장을 썼습니다. 하루에 12시간 이상 글을 쓰니, 팔에 마비가 오더라고요. 3년 간 소설 쓰느라 두문불출해 햇빛을 못 봐 햇빛 알레르기가 생겼고 허리통증, 소화불량, 요로결석, 탈모 등 엄청난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후로 소설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어요. ‘대발해’ 집필 이후 후유증으로 더 이상 소설이 써지지 않고 두려움과 불안감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펜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고민 끝에 ‘사랑 이야기’라면 써지지 않을까? 사랑은 인간의 영원한 숙제니까, 다시 시작해보자, 결심했죠. 이후 2015년에 ‘단 한 번의 사랑’을 냈고, 2017년에 ‘바람으로 그린 그림’을 출간하였습니다.”


소설 ‘바람으로 그린 그림’을 읽은 한 선배 작가는 “이 작품은 ‘김홍신’이 쓴 게 아니라, ‘김홍’을 빼고 ‘신’이 쓴 것”이라고 극찬하였다. 이러한 칭찬은 더 좋은 작품을 쓰고 싶다는 작가의 욕구로 이어진다. 김홍신 작가는 “우리 민족의 장엄한 ‘고대사’도 새롭게 쓰고 싶고, 사랑 이야기도 계속 써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글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 증명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육신도 살아있지만, 중요한 것은 내 정신, 내 영혼이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영혼을 느끼는 지점은 모두 다를 것입니다. 저에게 있어, 내 영혼이 살아 있다는 가장 강력한 행위는 글 쓰는 일입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경제적 가치로만 따지고 보면, 글쓰기 말고 다른 것을 해야 합니다. 밥벌이가 안 되는 직업이니까요. 그럼에도 여기에 매달리는 것은 ‘글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김홍신 작가에게 ‘글을 쓰는 일은 그저 숨을 쉬는 일과 같을 것’이다.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일, 이는 일흔의 작가가 여전히 만년필을 손에 쥐고 끊임없이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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