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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슬 스커트 Apr 27. 2021

직장인의 시간은 벤자민 버튼처럼..

신입사원에서 시작해서 다시 신입으로 돌아가야 한다.

           늙은이의 모습으로 태어나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죽은 벤자민 버튼의 일생.



직장인의 시간은 사람의 일생과 같다.

브래드 피트가 열연했던 정말 마법 같은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보면 사람의 탄생과 나이 듦을 완전히 뒤바꿈으로써 인생의 역설적인 측면들을 잘 설명하고 있다.

이 영화는 결국 인간의 일생이란 뫼비우스의 띠처럼 나이가 들고 죽음에 가까워 오면 태어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점처럼 돌아간다는 인생의 덧없음과 허무함을 다루고 있는 영화가 아닐까 한다. 

어린애로 태어나 어린애로 죽는, 생과 몰이 결국 한 지점이라는..


최근 직장에서 천천히 내려오고 있는 나는 10-30년간의 직장생활이 인생과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직장생활은 그 길이가 얼마든 간에 우리 인생의 사이클과 매우 유사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시작(생)이 있고 끝(몰)이 있다.

직장생활과 사람의 일생은 시작과 끝을 명확하게 날짜로 말할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

누군가가 언제 태어났고 언제 죽었는지 우리는 기록된 날짜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직장도 첫 출근한 날짜가 있고 퇴사한 날짜가 기록되어있으므로 맺고 끊음이 있는 한정된 시간이다.

그렇게 치면 대표이사 사장도 본인이 회사를 설립한 날과 사업장을 폐쇄한 날을 알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

전문성의 영역, 즉 스스로의 벌거벗은 힘으로 얻어낸 노력들에 의한 가치는 미래를 기약하는 가치들이다. 

그러나 2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해보며 직장인의 끝이라는 것을 보고 있는 지금, 나는 이 직장생활에서 얻었던 경험이나 가치, 지식들이 직장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 힘을 전혀 쓸 수 없는 근육이 되어 버린다는 걸 절절히 깨닫고 있다. 


신입으로 입사해서 말단으로 마무리가 되거나 은퇴하게 되면 다시 신입으로 돌아간다.

최근 나는 내가 신입사원 때나 했을 법한 실무의 밑단 일까지 하고 있다.

함께 일하던 주니어가 팀을 옮겼는데 새로운 충원이 없기 때문이다.

내 직급에서 해야 할 법한 사업을 기획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일부터 그런 일들로 파생되어 나온 세금계산서의 전표를 치는 일까지.. 모든 일이 나의 몫이다.


내가 '벤자민'을 떠올린 시기도 이런 상황에 놓이고부터였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신입으로 들어오면 혼자서 독립적으로는 일을 처리할 수가 없다. 누군가의 부사수로 일을 시작하는 신입 사원의 시기는 사람이 태어나 부모로부터 양육받는 유년기와 꽤 닮아있다.


점차 시간이 가면서 일이 손에 익으면 독립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직급도 오르면서 일에서의 재미도 느낀다. 그러다 어느 순간 '혼자 회사 일 다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과장 정도의 직급에 이르게 된다.

이 시기는 사람이 걸음마를 배우고 학교를 가서 배우고 졸업을 하고 드디어 사회에 나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활동하게 되는 시기와 비슷하다. 젊어서는 두려운 것도 별로 없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꽉 차 있다. 대리-과장 시절도 비슷했던 것 같다. 워낙 젊어서 체력도 좋으니 무엇이든 거침없이 해치울 수 있는 시기이다.


직책자가 되면서 책임이 커지고 그에 따라 권한도 늘어난다. 내가 관리해야 할 팀원들이 생겼고 이들을 이끌기 위한 전략적인 방향성을 스스로 세워야 한다. 윗사람도 설득해야 하고 아랫사람들도 이끌어야 하는 시기가 온다. 이때가 직장에서는 어떤 정점의 시기가 아닐까 한다.

인생에서도 비슷한 시기를 맞이 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집을 사거나 부를 축적하고..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내밀 떳떳한 명함이 생기고, 모임에 가면 '인간 OOO' 보다는 'XX회사 OOO 팀장'으로 알려지게 되는 시기. 

인생 전반기에서의 성과들이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다 안정적이라고 믿었던 직장생활에서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정치적인 견제를 받고 여러 측면에서 평가를 받게 된다. 아직 한참 일할 수 있는 나이라고 스스로 평가함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의 가치는 바닥을 치게 된다. 잉여의 인력이 되고, 지켜왔던 자리로부터 밀려나는 수모도 겪는다.

회사생활의 사이클과 인생이 사이클이 겹치는 시기가 오는데 딱 이 시기인 것 같다.

애매한 시기. 나이가 들었지만 아주 많지는 않고, 은퇴하기에는 여전히 모아논 돈은 없고.

회사생활 한 20년 했지만 박차고 나가서 뭐라도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근육은 전혀 길러지지 않은..

방황의 시기.


높은 포지션에서 밀려나 나처럼 완벽한 실무자가 되는 경우엔 직장인의 신분으로 다시 신입사원이 된 것과 같은 상태가 된다. 가장 어려운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쉬운 일과 맞닿아있다. 

가령, '이거 세금계산서 전표는 어디서 치지?', '공문 도장은 어디 가면 찍을 수 있지..?'

이런 사소한 것에 완벽히 익숙해질 때쯤 아마 나는 퇴사를 하게 되지 않을까.



직장인은 우리의 삶처럼 정해진 운명이 있다. 

팀장을 거쳐 본부장, 대표이사까지 쭉쭉 조직 내에서 승승장구하는 경우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계약이 뚝! 끊기는 순간.. 갑작스러운 퇴사와 동시에 인생의 신입 사원으로 빠르게 돌아간다.

인생으로 치자면 갑작스럽게 노화가 진행된 경우와 같다고 볼 수 있으려나?


너무 높은 곳에서 아래로 곤두박질치며 추락하기 때문에, 위층에서의 삶이 달콤했을수록, 누린 것이 많았을수록 바닥으로의 추락은 타격감이 크고 멘탈을 부여잡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저렇게 조직에서 밀려나면 그들도 어김없이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 한다. 

신입사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결론은, 직장인은 결국에 신입 사원의 인생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월급 받던 직장인에게는 누구도 예외가 없다.


다시 돌아간 신입사원의 삶에서의 성패를 떠나서 여하튼 누구든 예외는 없다.

그리고 다시 신입사원으로 돌아가야지만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헤르만 헤쎄의 소설 데미안의 유명한 대사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라고 했는데..

직장인의 알이 깨어져야 비로소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다.


직장인의 삶이 소멸될 때 우리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이 든 신입 사원의 모습을 한 나를 기꺼이 받아들이자.


직장인의 삶이 소멸되었다고 해도 내 삶이 끝난 것은 아니다.

지갑에 빳빳한 명함을 꽂고 9시까지 같은 장소로 주 5일 출근했다 퇴근하던 일상이 사라졌다고 해도 나의 인생은 계속되어야 한다.


회사라는 곳에서 첫 일을 시작했을 때, 첫 월급을 받았을 때..

그때의 설렘과 두려움은 이미 잊혔고, 그때 젊음 하나만으로도 너무나 빛이 났던 나의 모습도 어느새 세월이 뒤덮어버려 사라졌다.


그러나 기억하자.

나이 든 신입 사원인 나를 반가운 마음으로 받아줄 때.. 새로운 희망은 생겨난다.


벤자민 프랭클린처럼 인생의 유년기와 노년기는 단 한 번이다.

그러나 커리어의 유년기와 노년기는 여러 번 반복될 수 있다.

다만, 나에게 에너지가 남아있을 때, 감히 도전할 수 있는 열정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나는 지금 이 직장에서 벤자민처럼 갓난아기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

이것은 저무는 나에 대한 절망이고 우울함이면서, 또 바꿔 생각하면 희망이고 설렘이어야 한다.

나는.. 이것을 희망으로 설렘으로.. 그리고 새로운 미래로 받아들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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