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라 비커는 얼마나 좋을까.
지난 화요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났다.
청와대를 걸어서 퇴근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해하는 것 같았고 몹시 홀가분해 보였다. 대통령으로서의 자리에 대한 미련은 없어 보였다. 드디어 벗어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안도가 느껴졌다.
대통령이란 어떻게 해도 모두의 지지와 사랑을 받을 수는 없는 자리이다. 5년 내내 본인의 결정에 대한 무겁고 무서운 결과를 몸으로 느끼면서 일해왔을 것이다. 대통령의 임기가 5년이기에 그는 버틸 수 있지 않았을까?
만약 대통령직이 종신직이었더라면 임기 내 그의 마음가짐도 달랐을 것이고 지금과 같이 떠날 수 있는 자가 누릴 수 있는 자유와 해방의 특권은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양산의 집으로 돌아갔다는 기사를 보았다.
집으로 들어갈 때 얼마나 기뻤을까.
떠나온 곳이 있기에 돌아갈 곳이 더 소중한 것이다.
BBC 외신기자 로라 비커가 한국을 떠났다.
BBC 외신기자 로라 비커의 한국에서의 주재 기간이 끝이 났다.
솔직히 나는 문재인 전 대통령보다 로라 비커가 훨씬 더 부럽다.
그녀는 외신 기자라 이 나라 저 나라 다니면서 새로운 문화와 사회를 경험하고 본인의 가치관에 그 나라의 여러 가지 상황들을 투영하여 기사를 쓴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녀의 인터뷰를 듣다 보니 부러운 마음이 더 커졌다.
한국에서 4년간 머무르면서 그녀가 경험했던 다양한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한국 사람들은 외국인 특히 백인에게 관대한 편이다.
그녀는 기자로서의 특권뿐만 아니라 인종으로서의 특권 또한 누렸을 것이다.
그녀가 속초에서 잃어버린 지갑을 다시 찾았을 때 포스팅했던 트위터는 꽤나 유명했다.
로라 비커는 한국에서의 유효기간이 정해져 있는 이방인이었기에 모든 경험이 다 새롭고 긍정적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우크라이나를 잠시 방문하고 이후 그녀의 근무지인 베이징으로 이동한다고 했다.
그녀의 인터뷰를 듣고 있자니, 떠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권리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알아듣기 어려운 영국식 영어를 들으면서도 그녀의 목소리에서 후련함이 느껴졌다. 그녀의 가볍고 활기찬 말투는 내게 일종의 해방감을 주었다.
떠날 수 있다는 것.
그것도 돌아갈 곳이 정해져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선배 세 분이 권고사직으로 회사를 떠났다.
올해 회사의 영업실적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코로나 이전에 이미 이렇게 영업 실적이 주저앉았어야 했는데, 그나마 코로나가 터지면서 뻔히 예상되던 영업 실적의 하락이 유예되었던 것이다.
TV가 주요 미디어에서 멀어지고 있는 요즘, TV홈쇼핑이 퇴보하는 유통채널이 되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올해 영업실적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회사는 50을 넘기고 보직이 없는 차부장들 대상으로 회사는 권고사직 인터뷰에 들어갔다. 대상자 중 3명이 권고사직을 받아들여 회사를 떠났다.
50을 눈앞에 둔 많은 40대 임직원들이 충격에 빠졌다. 올해 50살이 되었다면 그 사람은 1973년생이다. 내 남편과 동갑이기도 하고 내 기준에서 보면 그냥 나와 같은 나이대의 사람인데..
권고사직의 대상이 된 것이다.
국가는 법적으로 60세를 정년퇴직 나이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의 온도는 사뭇 다르다.
임원이 되어 계약직으로서 2년씩 계약서를 갱신해가며 버티지 않는 이상, 사기업에서는 평사원으로서 정년까지 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우리 선배들은 문재인 대통령이나 로라 비커처럼 홀가분하게 떠날 수 없었다.
떠밀리듯, 비자발적인 떠남을 택해야 했다.
아직 대학교를 다 마치지 못한 아이가 있고, 영끌해서 늘그막에 마련한 주택대출과 이자가 있지만 여기서는 더 머무를 수 없었다.
"떠날 수 있다" VS. "나가야 한다"
내가 왜 로라 비커의 인터뷰에서 부러움과 해방감을 느꼈느냐 하면..
회사 식당에 앉아서 아침밥을 먹으며 인터뷰를 듣고 있는 나는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한참 공부하고 있는 어린 아들이 있고, 내 집조차 온전하게 다 가지지 못했기에 여전히 나의 시간을 담보로 잡히면서 출근을 해야 하는.. 부의 서행차선을 달리고 있는 불안한 직장인이다.
요즘 부쩍 날씨가 좋다. 그리고 코로나로 인한 해외여행 규제도 서서히 풀리고 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단순히 여행이 아니라.. 나도 이 소속에서 떠날 수 있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내가 이런 불만스러운 마음을 품고 그냥 머무는 것이 게으름에 대한 변명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떠날 준비를 하지 않고 하루하루 발끝만 보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쉽게 떠날 결정을 할 수도 없다. 그래, 나의 게으름 탓이라고 하자.
그러다가.. 어느 날 나의 선배들처럼 "나가야 하는" 상황이 내게 올 것이다.
떠나서 갈 곳이 이미 정해져 있는 출발.
떠나서 다시 돌아갈 곳이 막막한 출발.
이 두 가지가.."떠날 수 있다"와 "나가야 한다"를 규정짓는 것 같다.
나도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설령, 내가 나가야 되는 사람이 되더라도.. 마음만은 홀가분하게 떠나는 사람이고 싶다.
해방감을 느끼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