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여름이 오면, 외계인은

미국에 간 겁쟁이 외계인 시리즈

by 글동

여름에는 더운 날씨 탓인지 평소보다도 더 과일이 땡긴다. 이름부터 시원한 수박, 발음만 해도 단 내가 느껴지는 복숭아는 무더운 여름이 올 때마다 마트 매대를 가득 채운다.

하지만 내게 여름은 수박도, 복숭아도 아닌 토마토의 계절이다. 매년 여름이 오면 나는 마트에서 토마토를 물끄러미 바라보곤 한다. 그러면 토마토는 내게 무덥고 진한 기억을 가져다준다.


나는 중, 고등학교 시절을 강원도 춘천에서 보냈다. 우리 집은 교회 옆에 딸린 사택이었는데, 그 근방에 가장 높은 건물이 2층짜리 새마을금고일 정도로 도심과는 거리가 먼 동네였다.

우리 아빠는 그 동네에서 작은 교회를 했다. 아빠는 하루 종일 사람들을 만나고 교인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목사였지만, 안타깝게도 사람들한테 호감을 사는 재주가 없었다. 이전 담임목사님 시절에는 교회가 교인들로 항상 북적였지만, 아빠가 담임목사로 부임한 후에는 금방 규모가 반 토막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다 대략 한 달 뒤에는 일요일 예배당에 부모님과 나만 남는 날들이 많아졌다.


매주 소박한 예배가 이어졌다. 그러다 매미들이 집 떠나가라 목청 자랑을 해대던 한여름의 일요일에, 갑자기 아주머니들이 나타났다. 아빠는 아주머니들이 나타나자마자 날 앞으로 불러냈고, 나는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한동안 열지 않아 먼지 쌓인 피아노 뚜껑을 닦아내야 했다.

난 피아노 반주를 하는 것도, 아빠의 설교가 길어지는 것도 싫었기 때문에, 그 아주머니들이 또 오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아주머니들은 소나기가 아니었고, 다음 주에도, 그다음 주에도 우리 교회에 왔다.


그들은 우리 집 근처 토마토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는 화교분들이었다. 두 아주머니 중 특히 한 아주머니는 마치 평생 ‘싫어요’라는 말을 입에 담아 본 적 없는 사람 같았다. 그 아주머니는 늘 웃는 얼굴이었고, 그 얼굴을 볼 때마다 나는 부드러운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떠올랐다. 그녀는 숫기가 없어 어른들에게 데면데면 구는 나를 보고도 항상 활짝 웃어줬다. 나는 그 웃음에 보답해야 할 것만 같은 부담감을 느껴 슬쩍 아주머니의 눈을 피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는 서툰 한국말을 웃음으로 대신했던 것 같다. 서툰 영어를 입꼬리 올리기로 대신하는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아주머니는 교회에 올 때마다 토마토를 한아름씩 들고 왔다. 매주 우리 집에는 ‘소양강 토마토’ 상자가 가득 쌓여갔다. 하지만 정작 엄마가 그걸 썰어서 내어주면 아줌마는 먹지 않았다. ‘저는 괜찮아요. 사모님 드세요’라고 말하며 포크를 내려놓기 일쑤였다. 나는 햄버거 집에서 1년 동안 알바를 하고 나서야 그 마음을 알았다. 햄버거 패티를 몇백 개씩 굽고 나면 햄버거는 쳐다도 보기 싫어지는 것처럼, 그녀에게는 토마토가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나는 그 여름에 평생 먹을 토마토를 다 먹었다. 어떤 날은 동그랗게 썰어먹고, 다른 날은 바이킹 모양으로 잘라먹었다. 하루는 귀찮아서 통 채로 먹고, 엄마 없는 날에는 이미 달콤한 토마토에 설탕을 왕창 뿌려먹었다. 엄마는 잔뜩 쌓인 토마토에 실험 정신이 들었는지 갑자기 토마토잼을 만들기도 했다. 물론 엄마 빼고는 아무도 먹지 않았지만.

그 여름 내내 우리 집 안 공기에는 시원하고, 달고, 짭짤하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시큼한 토마토가 둥둥 떠다녔다.


그렇게 꼬박 1년이 지나 다시 여름이 됐을 때, 아주머니는 더 이상 우리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 엄마는 아주머니가 땡볕에 일을 하다 쓰러졌다고 했다. 그때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에어컨이 고장 났나? 어떻게 쓰러질 정도로 사람이 일을 하지? 엄마는 내 질문에 시원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어른의 세계라고 말했다. 지폐와 동전이 사람보다 대우받는 세계,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노동력’이 전부인 세계, 사람이 사람에게 그런 잔인한 짓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세계, 특히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더 날카롭게 휘몰아쳤을 그 세계를 그때의 나는 잘 알지 못했다.


나와 엄마는 여름이 올 때마다 그때 먹은 토마토 이야기를 한다. 요즘 마트에서 사 먹는 토마토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며 함께 투덜거린다. 그러면 토마토를 건네던 아주머니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생각난다. 묵묵히 아빠의 긴 설교를 듣던 진지한 얼굴, 서투른 한국말로 엄마에게 말을 걸던 목소리, 내 등을 쓰다듬던 쪼글쪼글 주름진 손.


나는 그때 부끄러움을 핑계로 아주머니에게 한 번도 활짝 웃어주지 못한 게 못내 후회된다. 미국에 살면서 낯선 이가 주는 친절이 얼마나 따뜻한 것인지 알게 된 후에는 더 그렇다.

아주머니는 아마 일을 하며 바쁜 와중에 제일 맛있는 토마토를 골라 상자에 담았을 것이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타인에게는 자신의 진심을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을 테니까.


아주머니가 그 이후로 어떻게 됐는지는 모른다. 중국으로 돌아갔을 수도 있고, 아니면 한국에 남아 여전히 이방인으로 살고 계실 수도 있다.

아주머니와 내가 다시 만날 가능성은 아주 적다. 이방인과 이방인이 다시 만나기란 쉽지 않으니까.


하지만 나는 늘 그랬듯이 여름이 올 때마다, 토마토를 볼 때마다 아주머니를 떠올릴 것이다. 그렇다면 아주머니는 적어도 내겐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지 않을까. 미래에도 나는 그녀의 진심을 기억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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