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내 꿈은 실패하는 외계인

미국에 간 겁쟁이 외계인 시리즈

by 글동

내게 실패란 평행선이다. 나와 실패는 절대 만나지 않는다. 나에게 실패라는 건 피할 수 있다면 최대한 피하고 싶은 것이다. ‘실패가 쌓여 우주가 된다’라는 책 제목을 인용한다면 나의 우주는 세로로 길고 얇은 빨대 같을 것이다. 우주라기에는 아주 작고 좁은 곳.


해석하자면 인생을 살며 실패를 별로 안 했다는 소리다. 안했다라기보단 못했다고 표현해야 하나. 솔직히 살면서 실패를 할 만큼 무언갈 많이 도전해보지 않았다. 나는 그 작은 우주에서 옆으로 튀지 않고 위로만, 오직 위로만 더 나아갔다. 덕분에 길을 잃은 적은 없었지만 대신 맨 꼭대기에 빨리 도착하기 위해 늘 다리가 퉁퉁 부어있었다.


내 인생 중 실패에 대한 최초의 기억을 되짚어보면 외고입시에 실패했던 것이다. 1차 결과가 합격이었을 땐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붙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2차 결과가 불합격이었을 땐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 2:1의 눈곱만 한 면접 경쟁률이 내 자존심을 더욱더 산산이 부수었다.


수업시간 내내 눈물을 흘렸다. 수업 중이라 소리 내 울지 못하는 만큼 더 많이 눈물이 났다. 결국 보다 못한 선생님이 친구와 함께 잠깐 나갔다 오라고 할 정도였다. 소리 없는 눈물이 더 길고 오래 지속된다는 걸 난 그때 알았다.


그 이후로 나는 ‘면접’이라는 단어에 치를 떨었고,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면접’이라는 단어만 보면 철저히 피해 다녔다. 늘 이런 식이었다. 나는 애초에 나 스스로에게 실패할 기회조차 주지 않으며 우주를 좁혀나갔다.


그런 내게 미국은 실패하러 오는 곳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곳. 뭔가를 하려면 반드시 한 번쯤은 넘어져야 하는 곳. 그래서 미국에 오면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했다. 실패하기 싫으니까.


하지만 지난 에피소드에서 봤다시피, 지랄 맞은 나는 무작정 쉴 수만은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시기쯤에 이 글을 쓰는 모토가 된 ‘실패가 쌓여 우주가 된다’라는 책을 보게 됐다. 이 책은 ‘실패’라는 주제로 사람들을 인터뷰한 책인데, 책에 나오는 모든 인물이 이렇게 말한다. 실패? 별거 아니에요. 실패? 밥 먹듯이 하는 거죠. 실패? 의미 부여할 필요 없어요.

나는 내가 정확히 이들과 반대로 살았다는 걸 깨달았다. 실패는 내 인생에서 아주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이었고, 몇 번 일어나지 않는 고귀한 사건이었고, 내 인생을 자유롭게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실패 한 번에 우주가 무너지는 것처럼 살았다는 걸 깨달았다. 실패는 우주를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우주를 만드는 거였는데.


이후로 나는 좀 더 적극적으로 영어를 쓰고, 관심만 가지고 있던 베이킹에도 마음껏 도전하고,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

글은 내가 가장 실패하고 싶지 않은 분야였고 그만큼 나는 자주 혼자서만 글을 썼다. 이렇게 남들이 다 볼 수 있는 공간에 올리기 위해서는 남들이 상상 못 할 만큼 아주 큰 용기가 필요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이 글을 천 번이고 지우고 싶을 만큼 무섭다.


내 좁은 우주가 싫은 것은 아니다. 나만의 협소한 우주가 미웠던 적도 딱히 없다. 분명 나는 그 안에서 나름의 행복을 찾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조금 궁금해졌다. 밥 먹듯이 실패를 하고 살면 어떤 우주가 펼쳐지는지, 실패가 별 거 아닌, 실패하는 내 모습이 자연스러운 우주는 어떤 모습일지.


이 글도 분명 실패할 것이다. 평생 나에게만 기억되는 글, 아니 언젠가는 나에게도 잊히는 글이 될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이 미국땅에서 나는 맘껏 실패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이렇게 계속 실패하다 보면 언젠가는 실패가 별거 아닌 일이 될 테니까.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실패와 내가 맞닿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두 개의 평행선이 하나의 단단한 선이 되는 날이.



Q. 독자님들의 최초의 실패기억은 언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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