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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행성 Feb 20. 2018

6. 신의 선물

우리의 유일한 안식처는 서로의 선(善) 안에 있다.

- 레이첼 나오미 레멘 (Rachel Naomi Remen) -


병원에 오면 화를 내는 고객이 많습니다. 의사의 설명이 부족하거나, 입원실의 청소상태가 불량하거나, 주차요금이 비싸다 생각해도 화를 냅니다. 내 몸이 아프지 않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사소한 것들도 아픈 환자들에게는 커다란 짜증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커다란 눈과 밝은 웃음을 지닌 그녀는 고객민원을 담당합니다. 불친절한 의사의 태도나 비싼 진료비를, 민원담당 직원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복잡한 병원 시스템은 오랜시간을 거쳐 프로세스가 확립된 것이어서, 절차상의 불편을 호소한다고 쉽사리 바뀔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녀와 애기를 하고 난 후, 잔뜩 화가 난 환자들이 화를 가라앉히고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면서 저는 그녀를 ‘응급 소방수’라고 부르곤 합니다.   

     

그녀는 타고난 공감력과 풍부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깊이 경청해주고 환자의 입장에서 해결방법을 모색하며 병원에는 시스템 개선 제안을 가장 많이 합니다. 그녀와 상담을 하는 환자들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자신을 이해해주고 마음을 알아주는 직원과 애기를 나누었다는 것에 만족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환자들을 만났을텐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는지 있느냐?’고... 

그녀는 오래 전, 산재업무를 담당할 때 만났던 소중한 고객의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꼭 산재승인이 되어야 한다던 그녀    


그녀의 남편은 사진사였어요. 중,고등학교의 수련회, 수학여행, 졸업여행을 따라다니며 학생들의 사진을 찍고 졸업앨범을 만드는 사진관에서 근무했습니다. 두 아들을 키우는데 사진사의 벌이가 시원치 않았던가 봅니다. 지나친 과로 탓인지 심장에 무리가 와서 중환자실에 입원했습니다.  

    

그런데 사진사의 아내가 저를 찾아와서 서럽게 울더라구요. 그리고 환자가 산재로 승인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몇 번이고 부탁을 했습니다. 아이교육 때문에라도 산재처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요.      

“아이가 어떤 교육을 받는데 교육비가 많이 드냐?”고 묻자,  작은 아이가 ‘자폐아’라고 하더군요. 저도 자식을 키우는 입장인데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부모님들이 반대하신 결혼이었다고 하더군요. 친정 부모님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택한 결혼이었지만, 자폐 아이를 낳았고 남편까지 쓰러지자, 차마 염치가 없어서 가슴 아파하실 친정 부모님께 알리지도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산재승인을 받아야 치료비도 해결되고 휴업급여라도 받아야 아이교육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연을 듣고 보니 그녀에게 기댈 곳이라고는 아무곳도 없었습니다. 아니, 나 밖에는 없었습니다. 최대한 도와드리겠다고 말씀 드리고 산재 요양신청을 위해, 의사에게 소견서를 받으러 다녔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심장내과 교수님의  ‘심장마비’라는 진단명으로는, 산재 승인이 어려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수님을 찾아가서 혹시 다른 병명으로 수정해 주실 수 있는지 물어보았으나, 교수님은 확고했습니다. 돕고 싶고 안타까운 마음에 두어 번을 더 찾아갔으나 교수님은 ‘더 이상 찾아오지 말라’며 크게 화를 내셨고, 진료실에서 쫓겨나기까지 했습니다.  산재 신청은 하지도 못한 채, 후불로 처리해 준 치료비는 쌓여갔고 시간도 하염없이 흘러갔습니다. 보호자는 애쓰는 나를 보고 ‘미안하다.’ 며 눈물을 보였지만, 나 역시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치료경과에 따라 환자가 심장내과에서 재활의학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산재 소견서를 받기 위해 재활의학과 교수님을 찾아갔습니다. 그간의 상황과 환자의 어려운 상황을 말씀드렸습니다. 가만히 듣고 계시던 교수님이 적어주신 소견은 ‘심장마비로 인한 저산소증 뇌손상’이었습니다.   

    

어쩌면‘가능할 수도 있겠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8월 1일, 중환자실에 입원한지 4개월 만에,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산재 승인이 되었습니다. 승인이 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병동에서 한달음에 뛰어 내려 온 보호자와 나는 서로 부둥켜 안고 같이 울었습니다.      



서로에게 깊이 공감할 때, 우리는 우주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공감은 신의 선물이어서 무너져 절망하는 이를 껴안고 모르는 타인의 눈물을 닦아줍니다.      


다정한 말을 건네는 것.

낄낄대고 웃어주기.

지나온 삶의 실수에 대해 괜찮다고 말해주기.

쾌유를 위한 기도.

한 사람을 위한 노래... 

지치고 어려울 때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것은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마음입니다. 

아파 본 사람들은 그 말을 진심으로 이해합니다.      


그때를 회상하던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붉게 물들었습니다.      

“언제 있었던 일이에요?”

“벌써 10년 전 이네요.”

“그런데 왜 소중한 고객이에요? 환자쪽에서 더 고마워해야 할 것 같은데...”  

   

한 가정을 송두리째 흔들리게 했던 화재를 잡아 준 그녀. 응급 소방수가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녀의 대답을 듣다보니, 누가 더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였을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자폐아였던 작은 아이가 벌써 고등학교를 다니고, 환자도 퇴원해서 통원치료 중이에요. 지금도 올 때마다 제게 인사를 해요. 환자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의식은 3~4살 아이 수준 밖에는 안 되거든요. 어찌 보면 최악의 상황이잖아요.  그래도 늘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살려고 애쓰는 보호자를 보면서, 감동 받기도 하고, 배우기도 하고, 저 역시 다짐을 하게 되거든요. 감사하며 살자구요. 그래서 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고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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