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문을 여는 가게는 아니었다. 그것은 기존의 점주가 운영하던 점포를, 마치 중고차를 인수하듯 그대로 넘겨받는, 소위 ‘양수도’ 창업이었다.
간판의 불은 어제도 그제도 켜져 있었을 것이고, 진열대의 컵라면들은 여전히 똑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뀐 것은 카운터 안의 공기, 그리고 그 좁은 공간을 채우고 있는 사람, 바로 나 하나뿐이었다.
본사 교육을 갓 마치고 처음 홀로 매장을 지키게 된 그날 밤. 나는 갓 부임한 신임 소대장처럼, 혹은 첫 무대에 오르는 풋내기 기타리스트처럼 비장했다. 비록 나이는 고작 열아홉, 학교에는 몰래 휴학계를 던지고 도망친 철부지였지만, 가슴에 달린 플라스틱 명찰에는 **‘부점장’**이라는 세 글자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그 직함이 주는 무게감이 덜 마른 시멘트처럼 나를 짓눌렀지만, 동시에 묘한 고양감을 주기도 했다.
"오늘 밤, 이 가게는 내가 지킨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마치 주문을 외우는 주술사처럼.
야간 근무는 흔히들 생각하듯 고요하고 정적인 재즈 발라드 같은 시간이 아니었다. 2005년의 대한민국 밤거리는 지금보다 훨씬 소란스럽고, 야만적이었으며, 거칠었다.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유령처럼 조용히 걷는 사람들 대신, 알코올에 절여진 채 비틀거리는 취객들이 거리를 점령하던 야생의 시절이었다.
밤 10시가 넘어가자, 편의점은 그들의 베이스캠프가 되었다.
"딸랑- 딸랑- 딸랑-"
문 열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나는 1화에서 묘사했던 그 **‘디펜스 게임’**의 한복판에 다시 서게 되었다.
컵라면 국물을 테이블에 쏟고도 모른 척하는 아저씨, 담배 이름을 혀 꼬인 소리로 외치는 청년, 아이스크림 냉동고 문을 활짝 열어놓고 어떤 맛을 고를지 심각하게 토론하는 여학생들...
밀려드는 손님(Enemy)을 쳐내느라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나의 뇌는 과부하가 걸린 구형 컴퓨터처럼 윙윙거리고 있었다.
지금의 나, 20년 차 베테랑 점주라면 문이 열리는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다. 발걸음의 무게, 미세한 눈동자의 움직임, 공기의 흔들림만 봐도 이 사람이 물건을 살 선량한 시민인지, 아니면 딴 마음을 품은 불순분자인지, 본능적인 레이더가 작동한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시야각이 15도밖에 안 되는 경주마 같았다. 경주마의 눈 가리개처럼, 나의 시야는 오로지 눈앞의 포스기(POS) 화면과 열렸다 닫히는 돈통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매장 구석, CCTV의 사각지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감지할 여력 따위는 없었다.
그 혼란스러운 틈을 타, 그자가 나타났다.
계산대가 가장 북적거리는 피크타임이었다.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아주 평범한 인상의 남자였다. 특별히 잘생기지도, 못생기지도 않은, 거리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그런 얼굴. 그는 계산대 줄이 줄어들기를 기다리는 듯 여유롭게 매장 안을 서성였다. 그의 한 손에는 내용물을 알 수 없는 빈 종이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그는 마치 자기 집 팬트리(Pantry)에서 야식을 꺼내듯, 너무나 자연스럽게 진열대 사이를 누볐다.
그의 손길이 닿은 곳은 공교롭게도 편의점의 'VIP 구역'이었다.
먼저 주류 코너. 묵직한 윈저(Windsor) 17년산 위스키 한 병이 그의 쇼핑백 속으로 소리 없이 미끄러져 들어갔다.
다음은 생필품 코너.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가장 비싼 도루코 6중 날 면도기 세트를 집어 들었다.
마지막으로 전자제품 코너. 당시 꽤 고가였던 차량용 급속 휴대폰 충전기까지.
하나같이 부피는 작지만 가격은 비싼, 소위 ‘고단가’ 상품들만 귀신같이 골라 담았다. 누가 봐도 수상한 행동이었지만, 바코드 찍기에 혈안이 되어 있던 열아홉 살 부점장의 눈에는 그저 '객단가를 높여주는 아주 고마운 손님'의 듬직한 뒷모습으로만 보였을 것이다.
그는 기분 좋게 두툼해진 쇼핑백을 들고 계산대 앞에 섰다. 나는 반사적으로 바코드 스캐너를 들어 올리며 "어서 오세요"를 외치려 했다. 하지만 그가 먼저 선수를 쳤다. 그는 쇼핑백에서 방금 훔친(나는 그때까지도 그 사실을 까맣게 몰랐지만) 물건들을 주섬주섬 꺼내 계산대 위에 툭, 툭, 올려놓았다.
"이거, 반품 좀 해줘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진공 상태가 된 것 같았다.
‘반품? 지금 사 가는 게 아니라?’
상식적인 상황이라면 의심부터 했어야 했다. 영수증은 있는지, 언제 구매했는지, 그리고 왜 굳이 빈 쇼핑백에 담아왔다가 다시 꺼내는지를. 하지만 그때의 내 머릿속은 본사 교육관에서 주입식으로 배운 **'CS(고객 만족) 십계명'**으로 꽉 차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세뇌였다.
"교육생 여러분, 편의점은 구멍가게가 아닙니다. 서비스업입니다. 고객은 왕입니다. 고객의 요구를 거절하지 마세요. 불친절은 점포의 죽음입니다."
그놈의 친절. 19살의 어리고 순진한 부점장은 그 가르침을 성경 구절처럼 믿었다. 손님이 반품해달라고 하는데 감히 토를 단다? 그건 나의 완벽무결해야 할 '부점장' 커리어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는 일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2005년의 전산 시스템은 지금처럼 똑똑하지 않았다. 요즘 포스기는 원거래 영수증 바코드를 찍지 않으면 아예 반품 화면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의 시스템은 순진했다. [반품] 버튼을 누르고 상품 바코드만 찍으면, 언제 팔았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마이너스 처리가 가능했다. 게다가 신용카드보다 현금 거래가 압도적으로 많던 시절이었다. 시스템의 허점은 도처에 널려 있었다.
"아, 네. 반품이시군요."
나는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훈련된 미소를 지으며 포스기를 두드렸다. 삑- 삑- 삑-. 경쾌한 스캔 소리와 함께 화면에 찍힌 금액은 마이너스 20만 원 남짓. 당시 편의점 시급이 2천 원대였으니, 꼬박 100시간 가까이 서서 일해야 벌 수 있는 거금이었다.
철커덕-. 돈통이 열리고, 나는 내 손으로 빳빳한 만 원짜리 지폐 스무 장을 세어서 놈의 손에 공손히 쥐여주었다.
"확인해 보세요. 20만 원입니다. 안녕히 가세요."
"수고해요."
놈은 짧고 건조한 한마디를 남기고 유유히 매장을 빠져나갔다. 나는 놈의 뒷모습을 보며 '까다로운 반품 고객 응대도 완벽하게 해냈다'는 멍청한 뿌듯함마저 느꼈다.
폭풍 같던 손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매장에 기묘한 적막이 찾아온 새벽 2시. 나는 흐트러진 물건들을 정리하기 위해 진열대 사이를 돌기 시작했다. 라면을 채우고, 음료수를 앞으로 당기며(페이스 업이라고 한다) 주류 코너 앞을 지날 때였다.
‘어?’
발걸음이 멈췄다. 무언가 이상했다. 풍경의 일부가 어긋나 있었다. 늘 자리를 지키고 있던 윈저 17년산 한 병이 보이지 않았다. 인기척도 없이 사라진, 이빨 빠진 것처럼 휑한 빈자리. 시선이 다급하게 옆으로 옮겨갔다. 면도기 걸이도 텅 비어 있었다. 휴대폰 충전기 진열대도 비어 있었다.
순간, 등골을 타고 차가운 소름이 쫙 끼쳤다. 심장이 발바닥 밑으로 툭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머릿속에서 방금 전의 상황이, 고장 난 비디오테이프처럼 되감기 되어 재생되었다. 발주용 컴퓨터를 확인해봐도 재고가 한개 모자랐다.
빈 쇼핑백을 들고 들어오던 남자. 매장을 유유히 돌며 물건을 담던 모습. 그리고 그 물건을 그대로 계산대에 올려놓고 돈을 받아 가던 그 하얗고 매끄러운 손.
"아......"
입에서 탄식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제야 모든 퍼즐 조각이 맞춰졌다. 놈은 집에서 물건을 가져온 게 아니었다. 내 눈앞에서, 나의 감시 소홀을 틈타 내 가게 물건을 쇼핑백에 담은 뒤, 뻔뻔하게 카운터로 가져와 "이거 네 물건인데, 내가 너한테 다시 팔게"라고 사기를 친 것이다.
나는 내 가게 물건을 도둑맞은 것도 모자라, 친절하게도 그 도둑님에게 "물건 훔쳐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며 내 생돈 20만 원까지 보너스로 챙겨 드린 꼴이었다. 이것은 완벽한 패배였다.
텅 빈 진열대를 바라보며 나는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억울함보다는 나 자신의 멍청함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다리가 풀려 창고의 짝맥주 박스 위에 주저앉았다. 가슴에 달린 '부점장' 명찰이 왜 이리도 무겁고 부끄럽게 느껴지던지.
그것이 나의 화려한 편의점 인생의 첫 페이지, 첫 정산의 기억이다. 남들은 첫 월급 타서 부모님께 빨간 내복을 사드린다는데, 나는 얼굴도 모르는 사기꾼에게 거액의 용돈을 상납했다.
이토록 호되게, 이토록 처참하게 당하고도 나는 왜 20년째 이 바닥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아마도 그때 지불한 20만 원이라는 비싼 수업료가 아까워서라도, 본전을 뽑을 때까지는 그만둘 수 없었던 게 아닐까. 20년 동안 24시간 편의점을 지키며, 나는 아직도 그 수업료의 본전을 찾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