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편의점 삼각김밥의 가격은 단돈 700원이었다. 지금은 물가가 올라 기본 1,600원에서 2,000원을 호가하니 격세지감이 느껴지지만, 냉정하게 말해 퀄리티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차갑게 식어버린 밥알의 감촉, 눅눅해지기 십상인 김의 식감, 그리고 지구의 핵처럼 가운데만 몰려있는 속 재료. 하지만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에게 700원짜리 삼각김밥은, 컵라면과 함께라면 1,500원으로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정식(定食)이자 구원이었다.
그중에서도 나의 '최애'는 단연 전주비빔이었다. 하얀 쌀밥이 아니라 고추장 양념이 밥알 하나하나에 배어 있는 그 자극적인 붉은 맛. 그것은 마치 혀끝을 자극하는 작은 폭죽과 같았다. 편의점 일을 시작하고 첫 몇 주는 정말 신이 났다. 매일 밤 12시가 지나면 쏟아져 나오는 '폐기(유통기한 경과 상품)'들을 골라 먹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다. 어제는 참치마요, 오늘은 샌드위치. 편의점이라는 신문물을 공짜로 맛보는 일종의 '허니문 기간'이었다. 나는 마치 뷔페에 초대받은 어린 아이처럼 매일 밤 메뉴를 고르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그 달콤한 시기가 끝나갈 무렵, 나는 편의점 역사에 길이 남을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다.
발주(물건 주문)를 넣던 깊은 밤이었다. 밴드 연습 생각에 들떠 있었던 건지, 아니면 쏟아지는 졸음에 정신이 혼미했던 건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나의 의식은 몽롱한 안개 속을 부유하고 있었다. 나는 전주비빔 삼각김밥 수량 칸에 숫자 '2'를 입력했다. 분명 내 머릿속에서는 두 개였다. 하지만 내 손가락은 나도 모르게 '0'을 두 번 더 두들겼나 보다. 화면 속 숫자는 200. 그렇게 끔찍한 '발주 확정' 버튼이 눌러졌다.
요즘 세상이라면 즉시 물류센터나 본사 AI 시스템에서 경고가 떴을 것이다. "점주님, 평소 판매량의 100배입니다. 200개 주문하신 거 맞으세요? 혹시 뇌졸중이라도 오신 건가요?" 혹은 담당 직원이 전화 와서 실수 여부를 체크해 줬을 것이다. 하지만 2005년은 야생의 시대였다. 안전장치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점주가 200개를 찍으면, 군말 없이 "아, 이 점포에서 오늘 마을 잔치라도 하나 보다" 하고 200개를 보내주는, 융통성 없고 무식할 정도로 정직한 시스템이었다.
다음 날 새벽, 물류 트럭이 도착했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파란색 플라스틱 박스(바트)가 산더미처럼 내려지는데, 까도 까도 끝이 없었다. 그 안에는 빨간색 포장지의 전주비빔 삼각김밥이 마치 붉은 벽돌처럼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그것은 압도적인 붉은색의 물결이었다.
"기... 기사님, 이게 다 뭐예요?"
"뭐긴요, 점주님이 발주 넣으신 거잖아요. 오늘 뭐 행사해요?"
기사님의 덤덤한 한마디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매대에 진열을 하려는데 공간이 턱없이 모자랐다. 결국 라면 매대까지 침범해 삼각김밥으로 탑을 쌓았다. 붉은 성벽 같았다. 유통기한은 고작 하루 남짓. 24시간 안에 이 200개의 시한폭탄을 처리해야 했다. 나는 다급히 본사 담당(FC)에게 전화를 걸어 S.O.S를 쳤다. 담당의 도움으로 인근 점포들에 사정사정해서 절반 정도를 '점간 이동'으로 떠넘길 수 있었다.
남은 건 100개. 나는 매대 앞에 매직으로 쓴 A4 용지를 덕지덕지 붙였다.
[점장 미쳤음. 전주비빔 1+2 행사! 하나 사면 두 개 더 드림!]
1+1도 아니고 1+2라니. 700원을 내면 2,100원어치를 주는, 팔면 팔수록 손해인 눈물의 땡처리였다. 손님들은 "사장님 로또 맞았어요?"라며 신기해하며 집어갔지만, 동네 장사에서 하루에 삼각김밥 100개를 파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것은 마치 사막에서 모래성을 쌓는 것과 같은 허무한 시도였다.
결국 유통기한 마감 시간인 밤 12시.
내 앞에는 처치 곤란한 전주비빔 삼각김밥 50여 개가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그날부터 나의 식단은 지옥의 **'전주비빔 코스 요리'**로 바뀌었다. 첫 끼는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었다. 두 번째 끼니는 김을 벗겨내고 프라이팬에 볶아 '전주비빔 볶음밥'을 해 먹었다. 참기름을 아무리 둘러도 특유의 인공적인 고추장 향은 사라지지 않았다. 저녁엔 나물을 사 와서 비벼 먹고, 심지어 남은 것들은 냉동실에 얼려놨다가 라면 국물에 말아 죽처럼 끓여 먹었다.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빨간 밥알들. 나중엔 포장지를 뜯는 '바스락' 소리만 들려도 조건반사처럼 위액이 역류하는 기분이었다. 억지로 꾸역꾸역 입에 밀어 넣다 보면, 목구멍 끝까지 밥알이 차올라 헛구역질을 하기도 했다. 그것은 고문이었다. 붉은 밥알들이 내 식도를 타고 넘어갈 때마다 나는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결국 내 위장으로 다 처리하지 못한 녀석들은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향해야 했다. 쓰레기통에 붉은 밥알들을 쏟아부으며 나는 맹세했다. 다시는 전주비빔 근처에도 가지 않으리라. 내 인생에서 붉은색 음식은 이제 끝이다.
하지만 인생은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다. 그 지긋지긋한 '폐기'가 나를 밴드부의 영웅으로 만들어주기도 했다.
당시 나는 휴학 상태였지만, 밴드 멤버들은 학교 수업을 들어야 했다. 야간 알바가 끝나고 동이 터올 무렵, 나는 커다란 검은 비닐봉지에 폐기 상품을 한가득 담아 학교 동아리방으로 향했다. 마치 산타클로스가 선물 보따리를 짊어지듯. 습기 찬 지하 동아리방, 문을 열고 들어가면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앰프의 열기, 그리고 며칠 묵은 담배 냄새가 섞인 공기가 나를 반겼다. 그리고 그곳엔 배고픈 하이에나 같은 멤버들이 있었다.
"왔냐? 오늘은 뭐 없냐?"
"우와! 소세지다! 전주비빔이다!"
가난한 대학생들에게 유통기한 몇 시간 지난 편의점 음식은 쓰레기가 아니라, 하늘이 내린 성찬(盛饌)이었다. 내가 봉지를 쏟아놓으면 멤버들은 자던 잠을 깨고, 치던 기타를 내려놓고 달려들었다.
주말 아침 연습 때는 그 낭만이 절정에 달했다.
"야, 오늘 안주 좋은데 연습이고 뭐고 그냥 마시자!"
누군가 편의점에서 제값 주고 사 온(이것만이 유일한 지출이었다) 소주를 깠다. 아침 10시, 햇살이 들어오지도 않는 지하방에서 우리는 폐기 도시락과 핫바를 안주 삼아 술판을 벌였다. 전자레인지도 없어서 차가운 도시락을 그냥 씹어 삼키면서도 우리는 즐거웠다. 눅눅한 김밥과 식어버린 소세지였지만, 20대 청춘들이 둘러앉아 미래를 이야기하며 먹으니 그 어떤 고급 안주도 부럽지 않았다. 드럼 비트 대신 술잔 부딪치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동아리방을 가득 채웠던, 철없고 배고팠던 그 시절의 낭만.
지금도 나는 종종 카운터 구석, CCTV 사각지대에 쭈그리고 앉아 유통기한 지난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운다. 손님이 들어오면 먹던 걸 황급히 숨기느라 허둥대면서 말이다. 입안 가득 퍼지는 차가운 밥알을 씹을 때면, 문득 20년 전 그 붉은 산더미 같았던 전주비빔 삼각김밥의 맛이 떠오른다.
비록 내 실수로 빚어진 200개의 악몽이었지만, 동시에 배고픈 청춘들의 배를 채워주었던 그 짠하고도 그리운 맛. 폐기 상품은 어쩌면 편의점 점주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 아닐까. 버려야 하지만 버릴 수 없는, 계륵 같지만 때로는 선물 같은 편의점의 또 다른 재미 말이다.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