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자본주의의 맛, 그리고 심야의 바텐더

by 편알못가이드

솔직해지자. 습기를 머금은 늦여름의 밤공기가 아스팔트 위에서 끈적하게 녹아내리던 그 무렵. 락스타를 꿈꾸던 스무 살의 청년이 15평 남짓한 좁디좁은 편의점 계산대에 스스로의 발목을 기꺼이 묶어둔 진짜 이유는, 청춘의 거창한 사명감이나 노동의 신성함 따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차가운 금속성의 단어, 바로 **'돈'**이었다.


당시 내 친구들과 밴드 멤버들은 세상 어디에나 흔히 굴러다니는 평범하고 가난한 대학생들이었다. 부모님께 받아쓰는 용돈은 늘 마른 수건처럼 쪼들렸고, 곰팡이 냄새가 배어 있는 지하 합주실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나면 소주 한 잔 사 먹을 돈도 빠듯했다. "배고픈 밴드맨"이라는 말은 문학적인 비유가 아니라, 뼛속까지 시린 처절한 다큐멘터리였다. 컵라면 하나로 끼니를 때우며 예술 혼을 불태우는 것이 청춘의 낭만이라 억지로 포장했지만, 냉정하게 말해 우리는 그저 가난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달랐다. 비록 '엄마의 가게'라는 혈연적 특수성이 작용하긴 했지만, 나는 엄연히 야간 운영을 전담하는 **'부점장'**이었다. 매달 꼬박꼬박, 약속된 날짜에 내 통장에 찍히는 월급의 숫자는 또래 친구들이 서빙 알바를 해서 쥐는 푼돈과는 0의 개수부터가 달랐다.


첫 월급을 타던 날의 공기를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초가을의 건조하고 맑은 바람이 불던 날이었다. 나는 주저 없이 종로의 낙원상가로 달려갔다. 오래된 악기 상가 특유의 나무 냄새와 먼지 냄새가 뒤섞인 복도를 지나, 쇼윈도 밖에서 침만 흘리며 구경하던 내 꿈의 기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거 주세요. 일시불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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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카드가 단말기를 긁고 지나가는 순간의 그 찌릿한 전율. 묵직한 하드케이스를 들고 지하 합주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멤버들이 일제히 보내던 그 노골적이고도 부러움 섞인 눈빛들.


스무 살, 나는 너무 일찍 **'자본주의의 달콤한 맛'**을 알아버리고 말았다. 나의 피곤한 육체적 노동이 곧바로 내 욕망을 채우는 자본으로 치환되는 명확한 경험. 그 강렬한 맛을 혀끝으로 본 이상, 나는 더 이상 편의점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벗어날 수 없었다.



돈이 나를 편의점이라는 무대로 이끌었다면, 나를 그곳에 기꺼이 머물게 한 것은 일종의 기묘한 **'성장의 쾌감'**이었다.


"편의점은 그냥 불 켜두고 문 열어두면 손님이 알아서 들어오는 곳 아닌가?"


사람들은 흔히 그렇게 단편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천만에. 편의점은 24시간 호흡하는, 몹시 예민하고 살아있는 생물과 같다. 주인이 얼마나 애정을 쏟고 섬세하게 만져주느냐에 따라 매출 그래프는 심장 박동처럼 정직하게 춤을 춘다.


나는 2년간 밤낮이 완전히 뒤바뀐 올빼미 생활을 하면서도 매장을 가만두지 않았다. 냉장고 모터가 낮게 웅웅거리는 고요한 새벽이면, 나는 손님들이 자주 찾는 껌과 초콜릿의 기하학적 배열을 계산대 앞으로 옮겨보았다. 먼지가 뽀얗게 쌓인 진열장을 닦아내고, 삐뚤빼뚤한 손글씨로 '사장님 추천! 이 맥주 안주엔 이게 딱입니다' 같은 투박한 팝(POP) 카드를 써 붙였다.


신기하게도 내가 손을 대는 곳마다 즉각적인 반응이 왔다. "어? 여기 이런 게 있었네?" 하며 손님들이 무심코 물건을 집어 들 때의 짜릿한 쾌감. 내가 의도한 대로 타인의 동선이 움직이고, 그것이 포스기의 경쾌한 바코드 소리와 함께 매출 숫자로 찍힐 때의 희열. 그것은 마치 룰을 완벽하게 이해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현실에서 플레이하는 것 같은 지적인 재미였다.


물론 육체는 바스러질 듯 피곤했다. 밤새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늘어놓는 취객을 상대하고, 눈을 찌를 듯이 밝은 아침 햇살을 맞으며 퇴근하는 날들이 700일 넘게 이어졌다. 하지만 그 고단함 끝에 받아든 성적표는 꿀처럼 달콤했다. 2년 뒤, 내가 처음 점포를 인수했을 때보다 매출은 정확히 두 배가 뛰어 있었다. 내가 쏟아부은 시간과 땀방울이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고 결과로 돌아온다는 명확한 확신. 그것이 나를 단순한 알바생에서 진짜 '장사꾼'으로 진화시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를 20년이라는 아득한 시간 동안 이 좁은 카운터 안쪽에 붙들어 놓은 결정적인 중력.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매일 밤 10시부터 아침 8시까지. 도시가 깊은 수면에 빠져드는 시간에 유일하게 깨어있는 편의점은 칠흑 같은 바다를 비추는 **'도시의 등대'**이자, 갈 곳 잃은 외로운 영혼들이 잠시 닻을 내리는 **'정거장'**이었다. 매일 같은 시간, 일정한 온도로 같은 자리를 지키다 보니 자연스레 그 밤의 단골들이 생겨났다.


새벽 2시. 짙은 화장품 향기와 싸구려 담배 냄새가 묘하게 섞인 채 들어오던 인근 노래방 누나들. 화려한 스팽글 의상과 달리 물기를 잃은 지친 표정으로 컵라면을 삼키며, "동생, 공부 열심히 해." 라며 씁쓸한 조언을 건네던 그녀들의 메마른 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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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넥타이는 헐겁게 풀려 있고 얼굴은 소주 기운에 붉게 달아오른 채 들어와 숙취해소제를 찾던, 회식이 막 끝난 회사원 형님들. 그들은 나를 붙잡고 직장 상사의 부조리함을 욕하거나, 대출 이자와 가족들 때문에 집에 들어가기 무섭다며 눅눅한 하소연을 쏟아내곤 했다. 나는 카운터 너머에 서서 그들의 부서진 파편 같은 이야기들을 묵묵히 주워 담는, 술만 팔지 않을 뿐인 심야의 바텐더였다.


그리고 새벽 4시. 어김없이 대형 빗자루가 아스팔트를 쓰는 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타나시던 청소차 아저씨. "학생, 오늘도 꼬박 밤을 새웠네. 고생이 많아." 투박하고 때 묻은 장갑을 낀 손으로 건네받던 온장고 속 따뜻한 캔커피 하나의 무게. 거리에 어둠이 채 걷히기도 전, 도시의 가장 낮고 지저분한 곳을 청소하며 하루를 여는 아저씨의 땀 냄새 섞인 새벽 공기. 나는 왠지 모르게 그 시린 냄새가 참 좋았다.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그 짧고 의례적인 인사 속에 오고 가는 이름 모를 눈빛과 정(情). 집 앞 골목길에 항상 불이 켜져 있는 편의점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그들의 지친 일상에 조용히 스며들었고 그들 또한 나의 텅 빈 새벽을 채워주는 기묘한 친구가 되었다.


돈을 버는 쾌감으로 시작해, 내 가게를 통제하고 키워내는 성취감을 맛보고, 결국 그 공간을 채우는 사람 냄새에 지독하게 중독되어 버린 20년. 어쩌면 나는 스무 살의 그 늦여름 밤, 이미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이 15평짜리 좁은 사각형의 유리 상자가 내 인생의 영원한 무대가 되리라는 것을. 무대 맨 앞쪽에서 기타 줄을 튕기는 화려한 락스타는 되지 못했지만, 나는 수많은 사람의 삶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편의점이라는 무대에서, 20년째 멈추지 않는 나만의 연주를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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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매력과 사연이 찰랑거리는 잔처럼 넘실대는 이곳. 이것이 락스타를 꿈꾸던 소년이 20년 차 베테랑 편의점 아저씨가 된, 가장 솔직하고도 아름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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