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편의점 횡단보도 전쟁의 승리자, 그리고..

by 편알못가이드

우리 가게 맞은편, 쉴 새 없이 자동차들이 매연을 뿜으며 질주하는 왕복 6차선 도로의 횡단보도 건너에는 거대한 적이 하나 존재했다. 파란색과 초록색이 촌스럽게 섞인 로고, '패밀리마트'. 지금은 'CU'라는 세련된 이름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지만, 당시에는 일본 자본의 든든한 뒷배를 업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편의점 업계의 1인자였다. 주황색 간판의 우리 가게(세븐일레븐)와 그곳은, 크고 복잡한 사거리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마치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서부 영화 결투 장면처럼 건조하게 마주 보고 있었다.


신호등의 붉은 불빛이 파란색으로 바뀔 때마다, 횡단보도 앞의 사람들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왼쪽으로 갈 것인가, 오른쪽으로 갈 것인가. 그것은 매일 밤낮으로 벌어지는 소리 없는 영토 전쟁이었다. 초기에는 서로의 존재를 묵인하며, 마치 암묵적인 불가침 조약을 맺은 마피아들처럼 각자의 구역을 지키는 나름 사이좋은(?) 경쟁 관계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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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본주의의 평화란 늘 살얼음판처럼 위태롭고 짧은 법이다. 균형의 추는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내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스무 살의 끓어오르는 패기와 락스타 특유의 근거 없는 오만함으로 무장한 나는 가게를 미친 듯이 굴렸다. 인수 당시 일 매출 80만 원 남짓하며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던 가게는, 불과 2년 만에 기적 같은 숫자를 포스기 화면에 띄워내기 시작했다. '일 매출 130만 원'. 지금의 감각으로 들으면 그저 평범한 동네 구멍가게 수준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담배 한 갑에 2,500원, 아르바이트 시급이 3,000원 하던 시절이었다. 체감 물가를 고려하면 지금의 300만 원, 400만 원에 육박하는, 그야말로 브레이크 고장 난 스포츠카 같은 엄청난 매출의 질주였다.


내가 매일 밤 자정이 넘어 매출 신기록을 갱신하며 창고에서 남몰래 쾌재를 부르고 있을 때, 왕복 6차선 건너편 패밀리마트의 불빛은 어쩐지 점점 더 창백하고 어두워져 가는 듯했다. 그리고 그들의 조급함과 불안감은 곧 비열하고 고전적인 **'네거티브 공세'**로 이어졌다.


늦은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부터인가, 단골손님들이 문을 열고 들어올 때의 눈빛이 묘하게 달라졌음을 느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음료수만 집어 들고 나가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제보들이 하나둘씩 카운터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총각, 혹시 건너편 가게 사장이랑 무슨 일 있어?" 소문의 진원지는 명백했다. 패밀리마트였다. 그곳 점주는 물건을 계산하는 손님들에게 우리 가게에 대한 악의적이고도 창의적인 헛소문을 퍼뜨리고 있었다. 우리 가게가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썩은 음식을 속여 판다는 둥, 밤마다 뒤에서 불법적인 도박장을 운영한다는 둥, 입에 담기도 유치한 삼류 소설 같은 내용들이었다.


그중에서도 그들의 가장 집요하고 날카로운 공격 대상은 다름 아닌 나, '야간 알바생'이었다. "저기 건너편 야간에 있는 놈 알지? 그 노란 머리 양아치. 걔가 그렇게 질이 안 좋다더라. 거스름돈을 슬쩍한다나 뭐라나..."


그렇다. 당시 나는 대학교에서 밴드 활동을 하느라 머리를 레몬색에 가깝게 샛노랗게 탈색하고 있었다. 2000년대 중반, 보수적인 동네 어르신들의 잣대로 보기엔 영락없는 '날라리' 혹은 '양아치'의 완벽한 표본이었다. 그들은 나의 그 눈에 띄는 외양을 교묘하게 약점 잡아, '불량하고 위험한 알바생이 지키는 우범 지대'라는 프레임을 우리 가게에 덧씌우려 했던 것이다.


분노가 목구멍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밤새 졸린 눈을 비비며 찐득거리는 매대를 닦고, 취객들이 남기고 간 토사물을 치우며 악착같이 일궈온 나의 2년이었다. 노란 머리는 억압에 저항하는 내 음악적 자존심의 발현이었지, 비행이나 일탈의 상징이 아니었다. 나는 당장이라도 횡단보도를 건너가 그 사장의 멱살을 쥐고 흔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 뜨거운 억울함을 식혀준 건, 나의 거친 주먹이 아니라 밤마다 우리 가게를 찾아오던 '나의 사람들'이었다. 새벽 2시, 차가운 겨울바람을 몰고 여느 때처럼 출근 도장을 찍은 노래방 누나가 온장고에서 꺼낸 캔커피를 따며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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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노랑머리! 너 건너편에서 아주 천하의 쓰레기 됐더라?"

"누나까지 왜 그래요, 진짜. 저 속 터져 죽겠는데."

"아니, 그쪽 사장이 나한테 그러잖아. 저기 주황색 간판 가지 말라고. 위험한 놈팽이가 지키고 있다고. 그래서 내가 계산하다 말고 한마디 해줬지. '아저씨, 저기 총각이 아저씨보다 백배는 더 친절하고 성실하거든요? 남 욕할 시간에 그쪽 유통기한 관리나 좀 똑바로 하시지?'라고 아주 면전에 쏘아붙이고 왔어. 어휴, 내 속이 다 시원하더라."


물론 오랜 시간이 지나 머릿속에서 각색한 대화지만, 대충 이런 느낌이었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매일 어스름한 아침을 여는 청소차 아저씨도, 퇴근길에 넥타이를 풀어 헤친 직장인 형님들도 이미 모든 상황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내가 매일 밤 어떤 마음으로 묵묵히 이 작은 가게를 지키는지, 카운터 너머로 건네는 내 인사가 얼마나 피곤함 속에 묻어나는 진심인지. 손님들은 그들의 생각만큼 바보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타인이 악의적으로 만들어낸 허구의 소문보다, 자신이 매일 밤 직접 살갗으로 겪은 온도를 더 믿었다.


"거기 사장이 남 욕이나 하고 자빠져 있으니까 장사가 그 모양이지." 손님들은 오히려 혀를 차며 패밀리마트를 매몰차게 떠났다. 얄팍한 네거티브 전략은 날카로운 부메랑이 되어 그들의 뒤통수를 깊게 찔렀다. 건너편 가게의 손님들은 썰물처럼 빠져나와, 횡단보도를 건너 우리 가게로 밀려들었다. 포스기의 매출 그래프는 꺾일 줄 모르고 수직으로 치솟았고, 결국 나는 왕복 6차선을 둔 영토 전쟁의 완벽한 승리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봄의 초입. 건너편 패밀리마트의 촌스러운 간판이 덜그럭 소리를 내며 철거되었다. 텅 빈 가게 내부, 흙먼지가 묻은 유리창에 덩그러니 붙은 '임대 문의' 종이를 바라보며 나는 묘한 아드레날린과 승리감에 도취되었다. 20대 초반의 새파랗게 어린 점장이(서류상 알바생이었지만 사실상 점주 역할을 했으니),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노련한 사장을 상대로 정면 승부에서 이긴 것이다. 나는 내가 마치 삼국지의 조자룡처럼 천하무적의 장군이라도 된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달콤한 승리의 기쁨은 모래성처럼 허무하고 잔인할 만큼 짧았다. 어머니와 맺은 본사와의 계약 기간 2년이 만료되는 시점. 나는 당연히,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재계약 도장을 찍을 것이라 생각했다. 죽어가던 점포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고 매출을 두 배나 띄워놓은 일등 공신이 아닌가. 하지만 서울 한복판 번듯한 빌딩에 앉아있는 '본사(Head Office)'라는 거대한 괴물은, 20대 청년의 피땀 어린 노고 따위엔 일말의 관심도 없었다.


그들이 회의실 테이블 위로 무심하게 내민 계산기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역설적이게도 장사가 '너무 잘 되는 것'이 문제였다. 상권이 살아나고 매출이 오르니 건물주는 탐욕스럽게 임대료를 올리려 했고, 본사는 기다렸다는 듯 수익 배분율을 자신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조정하려 들었다. 어머니와 나는 그들의 복잡하고 교묘한 엑셀 셈법과 거대한 자본의 갑질 앞에서, 마치 폭풍우 앞의 종이배처럼 철저하게 무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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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우리가 매출을 이렇게 올려놨는데 왜 우리가 쫓겨나듯 그만둬야 합니까!" 전화기를 붙잡고 핏대를 세우며 항변해 보았자 허공에 흩어지는 메아리일 뿐이었다. 계약서 하단에 깨알 같은 글씨로 적힌 독소 조항들은 언제나 힘 있고 돈 많은 자들의 든든한 방패막이였다. 2년간 매일 밤 무릎을 꿇어가며 광을 낸 바닥 타일, 내 지문과 손때가 겹겹이 묻은 유리 진열장, 그리고 나의 지친 새벽을 위로해 주던 수많은 단골손님들... 그 모든 눈부신 전리품들을 고스란히 남겨둔 채, 우리는 결국 그 공간을 비워주고 떠나야 했다.


마지막 야간 근무를 마치고 무거운 철제 셔터를 내리던 새벽. 공기는 서늘했고, 동쪽 하늘은 이제 막 푸르스름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나는 맞은편의 문 닫은 패밀리마트의 어두운 쇼윈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뒤를 돌아, 내 등 뒤에서 여전히 화려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우리 가게(이제는 남의 가게가 되어버린)의 주황색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치열한 백병전 끝에 경쟁자를 물리치고 영토를 확장했지만, 정작 전투가 끝나자 자신이 돌아가 쉴 성(城)은 어처구니없이 빼앗겨버린 장군. 그것이 그날 새벽, 횡단보도 앞에 선 나의 초라한 모습이었다.


스무 살부터 시작된 2년간의 맹렬했던 편의점 전쟁. 돈의 맛도 보았고, 사람의 온기도 얻었으며, 승리의 쾌감도 뼈저리게 맛보았다. 그 농밀한 경험들은 훗날 내 인생의 단단하고 값진 자양분이 되었지만, 스물두 살의 내가 그 새벽의 찬 공기 속에서 깨달은 씁쓸한 진리는 단 하나였다. "동네 사장들끼리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아등바등 싸우는 건, 그저 모래 놀이터의 소꿉장난일 뿐이다. 진짜 피도 눈물도 없는 적은 저 높고 단단한 빌딩 위에 있는 놈들이다." 나쁜 건 건너편에서 헛소문을 퍼뜨리던 경쟁점 사장이 아니라, 우리를 장기판의 소모품 말처럼 마음대로 쓰고 버리는 본사 놈들이었다.


그렇게 나는 가슴에 달고 있던 플라스틱 '부점장' 명찰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화려하고 뜨거웠던 나의 첫 번째 편의점 시대, 그 1막이 허무하게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편의점 인간으로 태어난 자의 얄궂은 운명은 결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성을 잃고 쫓겨난 장군은 이제 견장에서 계급장을 모두 떼어내고, 가장 춥고 낮은 밑바닥에서 다시 진흙을 뒹굴며 시작해야 했으니까.


� [다음 화 예고]

"어서 오세요, 세븐일레븐입니다." 어제까지는 매출을 쥐락펴락하던 위풍당당한 부점장이었는데, 오늘부터는 시급 3,000원짜리 최저시급 알바생? 본사와의 재계약 실패 후, 콧대 높던 부점장이 남의 가게 일반 알바생으로 전락하여 겪게 되는 '진짜 을(乙)'의 뼈아픈 이야기. 계급장 떼고 맨몸으로 부딪혀본 편의점의 차가운 민낯이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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