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락스타 지망생, 디펜스 게임에 참전하다

by 편알못가이드

2005년, 대한민국.


당시 나는 대학교 1학년이었다. 세상은 밀레니엄의 흥분이 가라앉고 조금은 차분해진, 혹은 지루해진 상태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내 심장을 뛰게 한 건 활자로 가득 찬 교과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펄 잼(Pearl Jam)이나 라디오헤드(Radiohead)의 앨범에서 흘러나오는 드럼 비트였다.


나는 밴드부 활동을 하며 무대 뒤편에서 묵직하게 쿵쿵거리는 베이스 드럼을 밟았다. 킥 페달이 가죽을 때릴 때마다 전해지는 진동만이, 내가 이 세계에 발을 붙이고 살아있다는 유일한 증거처럼 느껴졌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욕심의 부피가 조금 더 커졌다. 무대 뒤편 어둠 속에 묻혀 리듬이나 맞추는 역할은 이제 사양하고 싶었다. 나는 무대 가장 앞쪽, 핀 조명이 쏟아지는 곳에서 화려한 기타 솔로를 연주하는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었다. 깁슨 레스폴 스탠다드의 넥을 쥐고 관중을 휘어잡는 락스타. 스무 살의 내 머릿속은 온통 디스토션 걸린 기타 사운드와 근거 없는 낭만으로 꽉 차 있었다. 마치 갓 구운 식빵 속에 뜨거운 치즈가 가득 차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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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 앉아 교수의 건조한 목소리를 듣고 있는 시간은, 맛이 다 빠진 껌을 계속 씹고 있는 것만큼이나 고역이었다. 결국, 나는 사고를 쳤다. 부모님께는 철저히 비밀로 한 채, 덜컥 학교에 휴학계를 내버린 것이다. 인생에는 때로 논리적인 설명보다 충동적인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 있는 법이니까.


아침이면 나는 학교에 가는 척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하지만 내 목적지는 도서관이나 강의실이 아닌, 학생회관 구석에 처박힌 동아리방이었다. 문을 열면 퀴퀴한 먼지 냄새와 앰프가 내뿜는 열기, 그리고 싸구려 담배 냄새가 섞인 공기가 나를 반겼다. 나에게는 그곳이 천국이었다. 낮에는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도록 기타 줄을 튕기고, 밤에는 선배들과 미지근한 소주잔을 기울이며 젊음을 불태웠다.


부모님을 속이고 있다는 죄책감? 그런 건 청춘이라는 거대한 용광로 속에서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렸다. 적어도 그 전화가 걸려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너 요즘 학교 안 가고 뭐 하니? 시간 많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는 냉정했다. 완전범죄를 꿈꾸던 나의 이중생활은 생각보다 허무하게 꼬리가 밟혔다. 하필이면 그때, 엄마가 지인의 도움을 받아 편의점 창업을 결심하신 것이다. 브랜드는 주황색과 초록색 로고가 선명한 ‘세븐일레븐’.


엄마의 레이더망에 '학교도 안 가고 빈둥거리는(것처럼 보이는) 잉여 아들'이 포착된 것은 나의 가장 큰 불운이었다. 나는 학교를 다닌다고 항변할 명분이 없었다. 휴학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면, 오히려 순순히 엄마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것은 일종의 거래였다. 나의 비밀을 지키기 위한 대가.


그렇게 나는 화려한 무대 조명 대신, 24시간 꺼지지 않는 창백한 형광등 아래로 끌려왔다. 손에 쥐고 있던 기타 피크는 바코드 스캐너로 바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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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가게는 평범한 주택가, 그중에서도 입시 학원이 들어선 건물 1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오픈 첫날, 나는 편의점 일이란 게 그저 바코드나 찍고, 비어있는 매대에 물건이나 채우면 되는, 지루하고 평화로운 일일 것이라 예상했다. 너바나(Nirvana)나 판테라(Pantera)를 틀어놓고 책이나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나의 순진한 오산이었다.


오후 5시. 학원 쉬는 시간 종이 울리는 순간, 가게의 공기가 바뀌었다.


"우르르르-"


마치 거대한 짐승이 다가오는 듯한 진동. 계단을 쿵쿵거리며 내려오는 소리가 지진처럼 울리더니, 수십 명의 학생이 좀비 떼처럼 매장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그들은 모두 똑같은 체육복을 입고 있었고, 그들의 눈빛은 며칠 굶은 하이에나처럼 굶주려 있었다. 목표는 명확했다. 컵라면과 삼각김밥, 그리고 햄버거.


"아저씨! 여기 뜨거운 물 어디에요?"

"이거 전자레인지 몇 분 돌려요?"

"아, 젓가락 안 주셨잖아요!"


순식간에 15평 남짓한 좁은 매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인공적인 소고기 국물 냄새가 진동을 하고, 여기저기서 나를 부르는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그건 장사가 아니었다. 그건 **'디펜스 게임'**이었다.


쉴 새 없이 입구(Spawn Point)에서 몰려오는 적(손님)들을 제한 시간 내에 막아내지 못하면 게임 오버가 되는 상황.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기계적으로 바코드를 찍고, 거스름돈을 내주고, 바닥에 쏟아진 라면 국물을 대걸레로 닦아냈다.


한 명 한 명을 '해치우다' 보니 어느새 창밖이 어둑해져 있었다. 노동의 보람? 음악적 영감? 그런 건 느낄 새도 없었다. 그저 '오늘도 살아서 방어에 성공했다'는 안도감만이, 썰물처럼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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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답답한 계산대에 갇혀, 앵무새처럼 "어서 오세요"를 반복하는 이 생활이 생각보다 싫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조금은 으쓱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 이유는 내 명찰에 적힌 직함 때문이었다.


나는 단순한 시급제 아르바이트생이 아니었다. 야간 업무를 전담하고 매장 관리를 책임지는 **‘부점장’**이었다.


남들은 그저 편의점 알바라고 무시할지 몰라도, 나는 엄마와 함께 본사에 가서 며칠간의 점주 교육까지 이수한 정식 관리자였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양복을 입은 어른들 틈에 섞여서 발주 넣는 법을 배우고, 매장 운영 전략을 듣고 있자니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묘한 책임감 같은 것이 샘솟았다.


"그래, 내가 이 가게의 2인자다."

"이 구역의 재고는 내가 통제한다."


어쩌면 그때 그 어설픈 '완장'이 주는 뽕맛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정신없이 몰아치던 그 디펜스 게임이 주는 기묘한 중독성 때문이었을까?


'잠깐 엄마 도와드리고, 2학기에는 복학해야지'라고 생각했던 그 가벼운 시작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를 이 사각형의 편의점 안에 붙잡아 둘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때의 락스타 지망생은 상상이나 했을까? 자신이 기타 대신 포스기를 연주하고, 관중의 환호 대신 "봉투 필요하세요?"라는 말을 20년 동안 반복하게 될 줄은. 그리고 자신이 편의점이라는 무대의 최장기 공연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의 20년 편의점 인생은 그렇게, 철없는 비밀 휴학과 엄마의 갑작스러운 호출, 그리고 예상치 못한 '부점장'의 자부심 속에서 엉겁결에 시작되었다. 인생이란 늘, 우리가 계획하지 않은 방향으로 튀어 오르는 럭비공 같은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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