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일기] 새벽 3시의 의자와 '민심'이라는 유령

by 편알못가이드

"앉아 있지 마라."


20년 전, 내가 처음 편의점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였을 때 본사 교육팀장은 마치 십계명을 낭독하듯 그렇게 말했다. 당시 카운터 뒤의 의자는 나태함의 상징이자, 본사의 눈치를 봐야 하는 금단의 오브제였다. 시대는 변했다. 이제 점주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다고 해서 본사가 전화를 걸어오는 일은 없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뉴스 사회면 한구석을 장식하기 딱 좋은 소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본사의 매뉴얼보다 더 강력하고 불합리한 '개인의 매뉴얼'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날은 새벽 3시였다. 도시가 가장 깊은 잠에 빠져들고, 편의점의 형광등만이 인공적인 낮을 유지하는 시간. 나는 카운터 의자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 자동문이 열렸고, 나는 20년 동안 몸에 밴 조건반사로 즉시 몸을 일으켰다. 내 엉덩이가 의자에서 떨어지는 속도는 꽤나 민첩했다고 자부한다.


"어서 오세요."


나의 인사에 돌아온 것은 묵직한 짜증이었다.


"앉아서 인사를 하냐?"


그는 마치 내가 자신을 모독하기 위해 일부러 의자에 앉아 있었던 것처럼 역정을 냈다. 피로가 침전물처럼 쌓인 새벽 3시, 나의 신경줄도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일어나고 있었잖아요."

그는 나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차며 매장을 나갔다. 그리고 닫히는 문틈 사이로 예리한 한마디를 던졌다.


"그러니까 동네 민심이 안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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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은 마치 날카로운 송곳처럼 내 명치를 찔렀다. 나는 스마트폰 게임에 빠져 손님을 투명 인간 취급하는 요즘 세대의 아르바이트생이 아니다. 20년 동안 20개가 넘는 점포를 거치며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다. 보통 때라면 술 취한 행인의 헛소리쯤으로 치부하고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 '민심'이라는 단어가 내 안의 불안을 건드렸다.


겨울 비수기. 매출 그래프가 완만한 하강 곡선을 그리는 시기에는 점주의 마음도 덩달아 얇아진다. 나는 매대를 더 꼼꼼히 채우고, 평소보다 더 큰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며 그 하강 곡선을 붙잡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민심' 운운하는 말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환청처럼 들렸다.


물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것은 궤변이다. 단골손님들과의 유대는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고, 인터넷 세상에서의 나의 존재가 조금씩 가게 단골들에게 알려지며 오히려 새로운 연결들이 생겨나고 있으니까. 하지만 새벽 3시의 감성은 이성보다 훨씬 원시적이다. 나는 한동안 붉어진 얼굴로 속으로 욕을 삼켰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옛말이 있다. 말에는 물리적인 질량이 없다지만, 때로는 천 냥의 금화보다 무겁고, 때로는 예리한 칼날보다 깊게 박힌다.


아무리 술에 취했더라도, 혹은 내가 우두커니 서서 그를 기다리는 충직한 문지기처럼 보이지 않았더라도, 피로에 절어 비틀대며 일어나는 편의점 직원에게 날 선 비난 대신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넬 수는 없었을까. 그랬다면 그 새벽의 공기는 전혀 다른 온도로 기억되었을 텐데.


나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텅 빈 매장, 윙윙거리는 냉장고 소리 사이로 '민심'이라는 유령이 잠시 떠다니다 사라졌다. 말의 무게에 대해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고단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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