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일기] 타인과의 적정 거리, 혹은 '네거티브'

by 편알못가이드

손님과의 적정한 거리는 과연 얼마일까. 나는 가끔 조용한 카운터에 기대어 그 보이지 않는 선의 길이를 가늠해 보곤 한다.


어떤 손님에게 편의점 점주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좋은, 일종의 안전한 벽창호 같은 존재다. 한 번 입을 열면 10분은 기본으로 체류하는 일주일에 한두 번 오는 아주머니가 바로 그런 부류다. 그녀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변주되는 스윙 재즈처럼 쉴 새 없이 이어진다. 곧 다가올 직장에서의 퇴직, 성격이 제각각인 세 딸의 근황, 그리고 막내딸의 결혼 준비까지.


내가 굳이 이 복잡한 타인의 가정사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 싶으면서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적당한 타이밍에 미소를 짓는다. 다른 손님이 들어오거나 진열대 정리를 핑계로 딴청을 부리기 전까지 그녀의 독주는 멈추지 않는다. 때로는 그 수다가 귀찮게 느껴지는 순간도 분명 존재하지만, 그녀가 뿜어내는 경쾌하고 밝은 에너지는 결코 나쁘지 않다. 그것은 이 좁고 단조로운 유리 상자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꽤 괜찮은 보람 중 하나다. 반대로 내가 아주 약간 아는 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얄팍한 친밀감을 견디지 못하고 영영 궤도를 이탈해 버리는 손님도 있으니까. 인간의 중력이란 참으로 제각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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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매일같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도, 공간의 공기를 무겁게 가라앉히는 부류도 있다. 나는 속으로 그들을 '네거티브(Negative)'라 부른다.


그들에게서는 특유의 냄새가 난다. 삶의 피로가 땀과 섞여 발효된 듯한 시큼함, 그리고 손가락 끝에 깊게 밴 오래된 담배 냄새. 그들은 짙고 우울한 아우라를 두른 채 매장을 배회한다. 자주 마주치지만 결코 말을 섞지 않는, 아니, 굳이 그들의 직업이나 숨겨진 사연 따위를 묻고 싶지 않게 만드는 일종의 차단막을 지닌 사람들. 물론 겉으로는 완벽하게 평등한 '손님'으로서 응대하지만, 내 마음속 한구석에는 이미 서늘한 선입견의 방 하나가 만들어져 있다.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카운터를 지키며 깨달은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편의점 생태계를 파괴하는 폭발적인 '진상'들은 대개 일면식도 없는 외지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서서히 진화한다. 내 마음속에 선입견을 심어주던 바로 그 '네거티브' 손님들이, 어느 날 사소한 불씨 하나를 핑계로 괴물처럼 돌변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면식범의 소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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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이 비싸다며 카운터 위로 신경질적으로 집어 던지는 것은 클래식한 도입부다. 이어지는 반말, 그리고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식상한 클라이맥스. (참고로 나는 그들이 누군지 전혀 관심이 없다.) 그들의 레퍼토리는 계절이 바뀌어도 놀랍도록 일관적이다.


나는 그 지긋지긋한 폭발 앞에서도 대체로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쓴다. 그들도 결국은 한 명의 연약한 인간이고, 어찌 됐든 문을 열고 들어온 손님이니까. (물론 선을 크게 넘는 이들은 손님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경찰의 인도를 받게 되지만 말이다.)


내 성격의 가장 깊은 밑바닥에 자리 잡은 '적당히, 적당히'라는 이 미지근한 체념과 방어 기제는, 아마도 지난 20년간 저 수많은 네거티브와 진상들의 파도를 온몸으로 맞으며 형성된 굳은살일 것이다. 정말이지, 편의점 카운터에서 20년을 굴러먹다 보면, 웬만한 부처님도 울고 갈 기묘한 아량을 갖게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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