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일기] 다양한 인간 군상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by 편알못가이드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편의점을 혼자서 방어해 낸다는 것은, 애초에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1호점에서 9시간, 2호점에서 5시간, 도합 14시간 동안 이 밝고 피곤한 세계를 지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의 24시간 중 나를 기다리는 공백은 무려 10시간이나 남아있으며, 그것을 두 점포로 환산하면 20시간이라는 아득한 틈새가 발생한다. 어떻게든 이 틈을 메워야만 편의점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는 돌아갈 수 있다.


cvsguide_Prompt_An_anime-style_illustration_inspired_by_Makot_d6916c01-f4e1-4214-8611-86ca290868f5_3.png


이것은 꽤나 아이러니한 사실이다. 동네 어귀에 자리 잡은 이 작고 평범한 유리 상자가, 실은 어떤 대기업보다도 치열하고 절실하게 이 도시에 일자리를 공급하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에게는 고작 아르바이트일지라도, 나에게는 내 우주를 유지하기 위한 필사적인 채용 공고를 올린다.


나의 채용 공고에는 단호하고 명확한 룰이 하나 적혀 있다.


"근무 시간이 불규칙하여 전화를 받기 어려우니, 문자로 지원서를 보내주시면 확인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단순한 규칙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놀랍도록 이 짧은 문장 하나조차 소화하지 못하는(혹은 않으려는) 인간 군상들이 차고 넘친다. 공고를 올리자마자 앞뒤 다 자르고 다짜고짜 전화를 때려 박는 사람, 마치 이 '대딸깍시대'를 조롱하듯 이름과 나이만 달랑 적힌 빈 껍데기 이력서를 버튼 하나로 전송하는 사람. 심지어 내가 없는 시간대에 불쑥 매장에 들이닥쳐 "알바 구하죠? 저 왔습니다."라며 당당하게 선언하는 사람까지.


나는 이들을 예외 없이, 아주 가차 없이 '아웃'시킨다. 그건 편견이 아니라 오랜 경험이 쌓아 올린 통계학이다. 첫 번째 규칙부터 제멋대로 부수고 들어오는 사람에게, 내 편의점의 규칙을 지켜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애초에 성립 불가능한 거래다.


운 좋게 첫 번째 허들을 넘고 나면, 진짜 면접이라는 이름의 대면식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안심할 수는 없다.


cvsguide_Prompt_A_detailed_anime-style_close-up_focused_on_a__1ba842f6-428e-47cd-87e7-1681ca851c2d_0.png


약속 시간에 5분 이상 늦는 자, 아웃. 이력서를 지참하라는 말을 잊은 채 덜렁덜렁 맨손으로, 심지어 낡은 삼선 슬리퍼를 직직 끌고 나타나는 자, 역시 아웃이다. 누군가는 그렇게까지 까다롭게 굴 필요가 있느냐고, 고작 편의점 알바 하나 뽑는 데 뭐가 이리 거창하냐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채용이 확정된 후 그가 슬리퍼를 신든, 머리를 초록색으로 물들이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첫 만남, 타인과 관계를 맺는 가장 기본적인 의식을 치르는 순간조차 최소한의 예의를 장착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불특정 다수의 손님을 온전하게 상대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생각보다 많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편의점 점주를 해보라. 기본도 안된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편의점 점주를 한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기본이 안 된 인간들'을 강제로 경험하게 되는 일종의 수용소 체험과도 같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고작 편의점 알바"라고. 하지만 그 '고작'이라는 단어 뒤에 숨은 시급을 알고 나면 조금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주휴수당에 4대보험까지 야무지게 챙겨가는 어떤 달의 아르바이트생 월급은, 뼈 빠지게 일한 내 수익을 가볍게 비웃으며 뛰어넘기도 한다. 더 이상 '고작'이라는 말이 통용되지 않는 시대인 것이다.


무엇보다, 이 작은 유리 상자는 나의 20년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내 삶의 최전선이다. 내가 지쳐 잠든 시간 동안, 이 세계가 무너지지 않고 버텨내려면 나는 이토록 까탈스럽고 신경질적으로 문지기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알바생 하나 잘못 들였다가 나만의 작은 세상이 재기 불가능할 정도로 박살 나버린 쓰디쓴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 파괴의 기록에 대해서는, 나중에 맥주라도 한 캔 마시며 천천히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cvsguide_Prompt_A_melancholic_yet_warm_anime-style_illustrati_4d8be278-dd38-402d-b649-f286615dbe1f_2.png


그러니 누가 뭐라 하든, 나는 앞으로도 문자 지원이라는 첫 번째 관문을 세우고, 슬리퍼를 끈 침입자를 걸러내는 이 거창하고 피곤한 룰렛 게임을 계속할 것이다. 이 편의점이라는 우주를 지켜내기 위해서.

매거진의 이전글[편의점 일기] 대(大)딸깍시대의 우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