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일기] 낮과 밤의 편의점, 그리고 좀비의 시간

by 편알못가이드

하루라는 단위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24시간으로 주어지지만, 편의점이라는 중력장 안에서는 그 물리적 법칙이 기묘하게 왜곡되곤 한다. 나는 두 개의 점포를 오가며 낮과 밤이라는 두 개의 서로 다른 궤도를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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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점포에서 기나긴 밤샘 근무를 마치고 나면, 아침 햇살을 맞으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다. 그리고 내게 주어지는 것은 3시간 남짓한, 얇고 부서지기 쉬운 수면뿐이다. 알람 소리에 무거운 몸을 일으켜 이번에는 2점포의 주간 근무를 위해 집을 나선다. 퇴근 후에는 다시 아이를 하원 시키고, 밥을 먹이고 작은 몸을 씻긴 뒤 1~2시간의 쪽잠을 청한다.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 올리면 다시 1점포의 밤샘 근무가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가학적인 뫼비우스의 띠다. 불경기라는 차가운 현실 속에서, 직원들의 월급날을 무사히 넘기기 위해 내가 선택한 피할 수 없는 항해.


밤의 편의점은 심해처럼 고요하다. 팬데믹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세상을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이후, 새벽까지 알코올에 기대어 비틀거리는 진상 손님들의 풍경은 거의 멸종해 버렸다. 새벽 1시를 넘기면 딸랑거리는 자동문 소리 대신, 낡은 냉장 쇼케이스의 모터 돌아가는 낮은 험(Hum) 노이즈만이 공간을 채운다. 그것은 수면욕과 지루함이라는 두 마리 괴물과의 지난한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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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편의점이라는 무대에서 이토록 오랜 시간을 구르다 보면, 아무리 복잡하게 얽힌 잡일이라도 한두 시간 안에 완벽하게 끝낼 수 있는 서늘한 효율성이 몸에 밴다. 남은 시간 동안 나는 카운터에 앉아 글을 쓰고, 블로그를 관리하고, 유튜브 영상을 편집하며 밤의 지루함을 밀어낸다. 한때 체력이 남아돌던 시절에는 이 잉여의 시간을 1분 1초까지 밀도 있게 쓰는 것에 묘한 쾌감을 느꼈다. 하지만 지독한 피로가 뼛속까지 파고든 지금의 나는, 그저 입력된 코드에 따라 기계적으로 관절을 움직이며 남은 일들을 쳐내는 한 마리의 쓸쓸한 좀비에 가깝다.


반면, 해가 떠오른 낮의 편의점은 완전히 다른 행성이다. 2점포의 문을 열면 활기라는 이름의 뜨거운 소음이 훅 끼쳐온다. 하교하는 학생들의 까르르 넘어가는 웃음소리, 저녁거리와 캔맥주를 고르는 넥타이 푼 직장인들, 그리고 동네 아주머니들의 수다. 이른바 '피크타임'이라 불리는 그 시간의 매장은 오래된 재래시장처럼 펄떡이는 생명력을 뿜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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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피가 끓어올라야 할 축제의 시간. 하지만 밤의 궤도에서 묻혀온 짙은 피로가 온몸을 짓누르고 있는 탓에, 나는 카운터 너머로 왁자지껄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저 희미하고 건조한 쓴웃음을 지을 뿐이다. 편의점이란 본디 이 시끌벅적한 사람 냄새를 맡는 맛으로 하는 것인데, 그 축제를 온전히 즐기기엔 나의 스케줄이 너무나도 살인적이다. 나는 생수병을 열어 미지근한 물을 삼키며, 이 불합리한 체력의 한계를 속으로 한탄한다.


시간에도 질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낮의 편의점과 밤의 편의점은 손끝에 닿는 촉감이 전혀 다른 두 장의 천이다.


낮이 사람들의 체온과 마찰로 기분 좋은 보풀이 일어난 '거칠거칠하고 따뜻한 린넨'이라면, 밤은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아 서늘하고 매끄러운 '고요한 비단'이다. 하루에 이 두 가지 이질적인 질감을 모두 온몸으로 뒤집어쓰며 살아가는 일. 그것은 이 작은 네모 상자 안에서, 창백한 형광등 불빛을 등대 삼아 밤낮없이 노를 저어본 사람만이 감각할 수 있는 완벽하고도 외로운 평행우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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