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주인공은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멀고도 멋진 도시, 곰스크의 이야기를 들으며 꿈을 가졌다. 곰스크로 떠나리라는 꿈, 이것은 그의 유일한 목표이자 운명이었다. 그러나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곰스크가 아닌 다른 곳에 정착하게 된 지금의 그는 곰스크에 걸었던 희망을 거의 잊어버렸고, 그곳에 가려는 이유조차 희미해졌다. 그렇지만 그에게 곰스크는 다른 이웃처럼 평범한 지명에 그치지는 않았으니 곰스크에 대한 열망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는 그 자신과 소유물에 끊임없는 불안을 던져주는 탈출의 욕망을 뿌리 뽑고 가족의 품에 머무는 고요하고 만족스러운 존재로 거듭나야 한다고 끊임없이 다짐하며 두 가지 생각의 대립 속에서 살아간다.
주인공과 아내는 결혼식 직후 곰스크로 가는 여행에 나섰었다. 엄청나게 비싼 차표를 사느라 수중의 돈을 거의 다 탕진한 그들은 처음부터 서로 다른 생각과 감정을 품고 있었다. 기대감에 벅차 오른 주인공과 달리 아내는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여행 둘째 날, 한 역에서 두 시간을 정차한다고 승무원이 말해주었다. 플랫폼을 밟자마자 아내의 얼굴엔 생생한 홍조가 떠올랐고, 눈이 맑아졌으며, 걸음은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역전호텔'이라는 빛바랜 푯말이 걸려있는 곳의 간이식당에 들어가 부부는 식사를 했고, 신이 난 아내는 마을을 구경하자고 제안한다. 그들은 읍내를 돌아다니다 흙담에 올라서서 일몰을 바라본다. 가장 가까운 산등성이에 떨어질 듯 걸려있는 태양을 보며 아내는 갑자기 저 산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다고 말한다. "기차를 놓치면 안 되는데..."라고 말하는 남편을 뒤로하고 아내는 앞서 달려간다. 아내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남편 뒤로 슬픈 기적소리가 들렸다. 곰스크로 향하는 기차를 놓친 것이다.
그렇게 둘은 역전호텔로 다시 돌아가 신세를 지게 된다. 배정받은 방은 엉망진창이었으나 다음 열차가 오기 전까지만 머물면 되니 문제될 것이 없었다. 다음 날 남편은 아침도 먹지 않고 플랫폼에 서서 기차를 기다렸다. 호텔 주인은 그에게 다가와 곰스크로 가는 기차가 언제 올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한 시간 후쯤? 오늘? 내일 혹은 모래, 또는 다음 주에 올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충격을 받고 방으로 올라간 남편, 빗자루를 들고 먼지와 유리조각을 쓸어내며 방을 청소하는 아내를 발견한다. "그런 걸 해봐야 소용없을 거야. 오늘 우리는 여행을 계속해야 할 테니까······." 아내의 뺨과 이마는 붉어졌다.
남편의 바람과 달리 곰스크행 기차는 계속 나타나지 않았다. 특급열차들이 간간이 지나갔으나 역에 정착하지 않았다. 곰스크를 눈앞에서 놓쳤던 남편은 곰스크의 환영을 놓지 못하며 일상에 집중하지 못하는 듯하다. 반면 아내는 이 마을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주인과 금세 친해진 아내는 옷장을 들였고, 여행을 위해 챙긴 옷가지들을 옷장에 걸었다. 화를 내며 옷장에 걸린 옷을 다시 여행가방에 넣는 남편. 둘 사이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
3일 후 5시 급행열차가 끽 소리를 내며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에게 서둘러 짐을 싸도록 시킨 남편, 차장에게 표를 내밀자 뜻밖의 소리를 듣는다. "이 차표는 무효입니다. 새 차표를 끊으세요." 세상을 잃은 듯한 남편, 터덜터덜 방으로 올라갔더니 가방을 싸지 않고 가만히 있던 아내를 발견한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숨기지 않고 쏟아낸다.
그날 저녁 여행가방은 이제 침대 머리맡에도 있지 않았고, 창문 문틀에는 들풀을 담은 유리병이 놓여 있었다.
"예쁘지 않아요? 방이 환해지는 것 같아요. 그렇죠?"
"이제 확실히 여기 눌러살려는 모양이군."
"다락방에 꽤 쓸 만한 책상이 있어요. 어디에 두는 게 좋을까요?"
"당신이 그 빌어먹을 책상을 어디에 두든지 나는 관심 없어. 아무 관심도 없다고!"
곰스크로 떠나기 위해 다시 돈을 모아야 했던 부부는 주인을 돕기로 하고, 손님들에게 얻는 팁으로 차표를 마련하기로 한다. 극도로 고통스럽고 무료한 일상이 시작된 것이다. 물론 남편이 느끼기에 그랬다. 아내는 마을사람들과 안면을 터갔다.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기 싫었던 남편은 사람이 없는 밤이 돼서야 밖으로 나와 몇 시간이고 초원을 돌아다니며 편안한 고독을 느꼈다. 정처 없이 쏘다니다가 우연히 철길을 마주할 때면 심장은 미친 듯이 고동쳤다. 매끈한 철길이야말로 그가 꿈꾸었고 그의 존재가 시작된 도시, 곰스크와 연결해주는 유일한 끈이기 때문이다. 아내 역시 언젠가 곰스크로 가게 될 것임을 인정했지만 마치 젊은 사람이 죽음에 관해 생각하는 것처럼 그녀는 너무 먼 일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
한번은 아내가 하루종일 집을 비웠다. 며칠 뒤, 아내는 남편을 위해 안락의자를 들고 온다. 저녁까지 하루종일 주인 일을 돕는 남편의 피곤함을 달래기 위해 안락의자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며칠간 하루종일 마을에 가 이장 댁 일을 도운 대가로 받은 것이라 한다. 그러나 오직 곰스크에 골몰해있던 남편에게는 아내의 선물과 그 속에 담긴 정성이 보이지 않았다. 곰스크로 가는 차표를 사기 위해 분주해있던 그는 돈을 벌 시간에 안락의자를 가져온 것이 영 못마땅했다. 어느덧 그들은 전처럼 오랫동안 허물없는 대화를 주고받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방은 아내의 말대로 점점 더 살 만하게 바뀌었다. 그림 몇 점이 벽에 걸렸고 양탄자가 생겼으며 천장과 벽이 밝은 노란색으로 칠해지고 새 커튼이 달렸다. 아내는 남편을 위해 책을 가져와주기도 했다.
봄이 오자 남편은 그사이 상당한 돈을 모은 덕분에 기분이 들떠있었다. 곧 곰스크로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간 끊었던 담배를 음미하며 피웠고 철길을 바라보며 남편은 말한다.
"기차가 정차하면 차표를 끊고 우리는 이제 곰스크로 가는 거야. 우리가 그렇게 기다리던 시간이 마침내 다가온 거야!"
"그럼 떠날 준비가 된 거군요. 그래요..."
"왜 그래? 기분이 좋지 않은 거야?"
"기분이 좋지 않은 건 아니에요."
"나는 당신이 왜 곰스크로 가지 않으려 하는지 모르겠어. 그럼 우리가 여기서 뭘 한다는 거지? 우리가 여기 오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어."
"여보, 나도 당신과 함께 가게 돼서 기뻐요. (눈물을 흘리며 말을 이어간다.) 그런데 당신은 여기서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다는 말인가요? 당신에게는 내가 있었잖아요! 당신은 오직 곰스크만을, 우리가 함께 살아온 이곳에서 등을 돌리게 될 그날만을 기다리지 않았나요?"
"내 인생 전부를 걸고 나는 이날을 갈망했어. 물론 나도 여기서 때로는 행복했지. 당신이 없었다면 이 기다림은 더 견디기 힘들었을 거야. 우리는 서로에게 속해 있어"
그녀는 남편을 오랫동안 뚫어지게 바라보다 웃었다. 여전히 눈물을 흘리면서...
다음 날 오후, 기적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곰스크로 가는 기차가 기적처럼 정차했다. 이 순간만을 기다려온 남편, 역무원에게 다가가 표 두 장과 돈을 건넨다. "30분 후에 출발합니다." 그가 말했다.
남편은 아내를 데려오기 위해 마구 달렸다. 아내에게 빨리 짐을 싸고 떠날 것을 재촉했다. 아내는 주인과 작별인사를 나눴다. 초조하게 아내를 기다리지만 두 사람의 대화는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가방을 먼저 실을게!" 남편이 말했고,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은 객실에 올라가 가방을 선반에 두고 기다렸다. 그런데 아내가 나타나지 않는 게 아닌가. 다시 방으로 돌아간 남편은 기겁한다. 아내가 안락의자를 옮기려고 낑낑대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 지금 제정신이야?"
"하지만 우리 안락의자예요! 안락의자 없이는 떠나지 않을 거예요. 우리는 이걸 두고 갈 정도로 부자가 아니라고요. 곰스크에서 누가 이런 의자를 주겠어요?"
"난 갈 거야. 난 안락의자에 손가락 하나도 안 대겠어!"
"그렇다면 나 혼자 옮길게요."
"당신 맘대로 하라고!"
화가 치밀어 기차로 남편은 뛰어가 자리를 잡는다. 잠시 뒤 역무원 하나가 기차를 따라 뛰면서 문을 닫아걸자 당황하는 남편. 창밖으로 몸을 내밀어보니 아내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숨을 헐떡이며 안락의자를 승강장 위로 끌고 오는 것이 보였다. 기차가 막 출발하려는 것 같자 속으로 욕을 퍼부으며 승강장으로 뛰어내려 안락의자를 어깨에 메고 차에 실으려 한다. 그때 역무원이 다가와 안락의자는 화물칸에 실어야 한다며 돈을 더 내라고 한다. 출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역무원은 어서 타라고 말했고, 남편은 아내에게 안락의자를 놔두고 기차에 탈 것을 종용했다. 그녀를 객차로 끌어올리려는 남편을 아내는 뿌리치며 안락의자를 승강장에 버리고 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녀에게 안락의자는 소중한 일상의 추억이고 중요한 자산이었지만 곰스크만을 좇는 남편에게는 방해거리였다. 결국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두 사람. 아내는 안락의자를 포기하지 않은 채 걱정 말고 혼자 가라고 말한다. 남편도 꿈 앞에서 고집을 꺾지 않는다. 둘은 말없이 서로 바라보았다.
"곰스크에 가면, " 아내가 말했다.
"나한테 편지 보내줄 거죠"
"잘 모르겠어. 그보다는, 당신이 정신을 차리고 지금이라도 기차에 탔으면 좋겠어."
"당신 주소라도 알고 싶어요."
"뭐 하려고? 당신한테는 안락의자가 있잖아."
기적이 울리더니, 한 순간에 그 소리가 기차를 훑고 지나갔다.
"그건," 아내가 소리쳤다. "아이가 태어나면 편지를 써야 하니까요!"
"뭐라고?"
"우리 아이 말이에요!"
남편은 문을 열어젖히고 이미 천천히 출발하기 시작한 기차에서 승강장으로 뛰어내렸다. 기차는 그의 곁을 미끄러져 점점 빨리 앞으로 나아갔다.
"정말 아이를 가진 거야?"
아내는 바닥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당신은 곰스크 외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었잖아요. 언제나 철길만 바라보았고 기차가 오기만을 기다렸죠. 그러지 않았다면 벌써 알아차렸을 거예요."
과연 아내의 배는 눈에 띄게 불러있었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였다. 여기를 떠날 마지막 현실적인 기회. 그는 이를 좀 더 빨리 알아챘어야 했다. 안락의자는 안 된다고 했을 때 그녀가 보인 히스테리며 이상한 행동이 임신한 여자들이 종종 보이는 행태라는 것을 알아야 했다며 그녀가 아닌 자신을 책망한다. 그녀에게 좀 더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기차와 곰스크에 빠져 있지만 않았다면 그녀의 상태를 이미 알아차렸을 것이고 여행이 이렇게 허무하게 취소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허탈감이 몰려왔다.
주인은 그들이 머무는 것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내의 임신 사실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그 후 그들의 일상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어졌고 당분간 여행에 대해서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임산부가 기차 여행을 견뎌내기는 불가능하니 말이다. 어느 날 아이가 태어났지만 마냥 기뻐하지는 못했다. 자신의 꿈이 실현되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이 의식 깊숙한 곳에서 거의 처음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고 생전에 곰스크를 못 볼 것만 같았다.
며칠 뒤, 아내는 마을 이장이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듣고 이장과 대화를 하게 된다. 이장은 남편에게 기존 선생님이 연로해져서 그를 대신할 새로운 선생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원이 있는 예쁜 교사 사택으로 이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는 말했다. 아내는 이 제안을 받아줄 것을 기대했고, 남편은 시골구석 마을의 선생님이 된다는 생각에 씁쓸해졌다. 우리만을 위한 집, 아이를 위한 집을 꿈꾸는 아내의 모습, 그리고 규칙적인 수입이 들어오며 자신의 능력에 맞는 일이라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와 남편은 제안을 물리칠 수 없었다. 안락의자 외에는 가진 게 없었던 그들은 쉽게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원래 그 집에 살던 기존 선생님은 다락방에서 지내게 되었다.
남편은 기존 선생님으로부터 업무를 배우며 친해지게 된다. 나이 든 선생님의 병은 더욱더 깊어졌다. 그는 눈을 뜬 채 뭔가를 공상하기 일쑤였고 남편이 노크하고 조용히 들어서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러나 어떤 날은 그의 의식이 다시 맑아져 긴 대화를 이어가기도 했다. 남편은 언젠가 그들이 나눴던 꿈같은 대화를 뚜렷이 기억한다.
"믿어주시오. 나 역시 한때는 멀리 떠나려고 했소.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더군요." 두꺼운 안 너머 반은 기쁘고 반은 슬픈,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눈빛으로 그는 주인공을 보았다. 마치 주인공 눈앞의 사람은 젊은 시절의 그인 듯했다. "가지 않는 게 좋은 선택이었을 거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마 다르지 않을 테니까요. 보시오. 사람이 원한 것이 곧 그의 운명이고, 운명은 곧 그 사람이 원한 것이랍니다. 당신은 곰스크로 가는 걸 포기했고 여기 이 작은 마을에 눌러앉아 부인과 아이와 정원이 딸린 조그만 집을 얻었어요. 그것이 당신이 원한 것이지요. 당신이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면, 기차가 이곳에서 정차했던 바로 그때 당신은 내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기차를 놓치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 모든 순간마다 당신은 당신의 운명을 선택한 것이지요. ··· 그건 나쁜 삶이 아닙니다. 의미 없는 삶이 아니에요. 당신은 아직 그걸 몰라요. 당신은 이것이 당신의 운명이라는 생각에 맞서 들고 일어나죠. 나도 오랫동안 그렇게 반항했어요. 하지만 이제 알지요. 내가 원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이후에는 만족하게 되었어요."
둘의 운명을 뒤섞은 듯한 그의 말은 정말 기이한 것이었다.
주인공은 곰스크로 갈 때를 대비해 항상 돈을 저축했다. 일이 년 후에 아이가 좀 더 자라면 출발하려고 했다. 돈도 충분히 모아두었다. 그러나 둘째가 태어나자 그의 계획은 좀 더 뒤로 밀려났고 직업을 통해 천천히 마을 사람들의 삶으로 끌려들어갔다. 이제 마을에서는 누구도 그를 이방인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그는 아마도 전임자처럼 나이가 들어서 더 젊은 사람에게 자리를 물려줄 때까지 아이들을 가르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그것은 그를 사로잡는다. 곰스크로 가는 특급열차가 저 멀리 돌진하는 소리가 들리고 그 찢어지는 듯 슬픈 기적소리가 초원을 뚫고 울리다가 멀리 사라질 때면, 갑자기 뭔가 고통스러운 것이 솟구쳐 쓸쓸한 심연의 가장자리에 놓인 것처럼 잠시 서 있곤 한다. 그러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말없이 아내와 아이들 곁을 지나쳐 그의 전임자가 죽을 때까지 묵었던 바로 그 다락방으로 올라간다. 그는 문을 잠그고 침대에 몸을 던진 채 그 나머지 시간을 누구하고도 말하지 않고 숨어서 보내곤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