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엇나간다 - 제 4화

빵 셔틀은 갔다, 이제는 와이파이 셔틀이다

by 장경장

[​제 4화] 빵 셔틀은 갔다,

이제는 와이파이 셔틀이다


(부제: 때리지 않아도 영혼이 베이는 곳, 보이지 않는 감옥의 실체)


1. ​"선생님, 그냥 장난이었어요. 쟤도 괜찮다는데요?"


​학교폭력 가해 학생을 조사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입니다.

아이들의 표정에는 억울함이 가득합니다. 때리지도 않았고, 돈을 뺏지도 않았으니까요. 그저 스마트폰 데이터 조금 나눠 쓴 것,


단톡방에서 농담 몇 마디 한 것이 왜 학교폭력이냐고 반문합니다.

그 당당한 태도 앞에서 피해 학생은

고개를 숙인 채 입술만 깨물 뿐입니다.

​하지만 그 장난 뒤에서 피해 학생은 매일 지옥을 경험합니다.

과거 매점에서 빵을 사 오게 하던 빵 셔틀은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습니다.


지금 교실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데이터 갈취와 24시간 탈출할 수 없는 사이버 감옥이 아이들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멍 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아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정서적 폭력의 진화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2. ​보이지 않는 족쇄, 와이파이 셔틀의 진실


​쉬는 시간, 학교 근처 편의점 앞이나 교실 뒤편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겉보기엔 평화로워 보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상한 풍경이 눈에 띕니다.

한 아이만 스마트폰을 켜둔 채 꼿꼿이 서 있고, 나머지 아이들은 그 주변에서 낄낄거리며 게임을 즐깁니다.


​일명 와이파이 셔틀입니다.

힘센 아이가 피해 학생에게 핫스팟(데이터 테더링)을 켜게 강요하고,

데이터를 마음대로 끌어다 쓰는 것입니다.

피해 학생은 자신의 데이터를 쓰지도 못한 채 움직이는 공유기가 되어야 합니다.

데이터가 소진되어 속도가 느려지면 욕설이 날아오고, 피해 학생의 부모님은 영문도 모른 채 데이터 요금 폭탄을 맞습니다.


​가해 학생들에게 이것은 폭력이 아닙니다.

그저 친구끼리 데이터 좀 나눠 쓰는 호의일 뿐입니다.

하지만 거절할 수 없는 호의는 착취입니다.


때리지 않아도, 뺏지 않아도, 아이들 사이의 권력 관계는 이미 데이터의 흐름을 타고 명확하게 그어지고 있습니다.


3. 옆 학교 남친까지 동원된 카톡 감옥


​제가 맡았던 사건 중 하나입니다.

한 여학생이 반 친구와 사소한 다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부터 피해 학생의 휴대폰이 쉬지 않고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알고 보니 여학생이 다른 학교에 다니는 남자친구에게 일렀고,

그 남자친구는 피해 학생과 같은 반인 자신의 친구를 시켜 피해자를 낯선 단톡방에 강제로 초대했습니다.

​"야, 네가 내 여친 건드렸냐?"


​초대된 방에는 얼굴도 모르는 타 학교 선배들, 동네 형들까지 있었습니다.

수십 명이 한 명을 향해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붓습니다.

공포에 질려 방을 나가면 다시 초대하고(일명 카톡 감옥),

또 나가면 개인 문자로 협박을 이어갑니다.


심지어 피해자만 남겨두고 우르르 나가버리는 방폭으로 소외감을 극대화하기도 합니다.


​이 사건은 결국 사이버 괴롭힘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타 학교 남자친구가 친구들을 이끌고 학교 앞까지 찾아와 피해 학생을 불러내 위협하는,

일명 현피로 이어졌습니다.


피해 학생은 지금도 모르는 번호로 알림이 울리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휴대폰을 쳐다보지도 못합니다.

집이라는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까지 침투한 이 공포는 24시간 아이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4. ​"계정 좀 빌려줘" : 범죄자가 되는 아이들


​"야, 나 당근마켓 정지당해서 그러는데 너 계정 좀 빌려주라."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는 계정 셔틀도 빈번합니다. 중고거래 앱이나 게임 계정을 친구에게 빌려주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거절하면 친구 사이에 쪼잔한 놈 취급을 받거나, 무리에 끼지 못할까 봐 겁이 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빌려준 계정은 사기 범죄의 도구가 됩니다. 가해 학생은 친구 계정으로 물건을 판다고 사기를 치고 돈만 챙겨 잠적합니다.

며칠 뒤 경찰서에서 연락을 받는 건 사기를 친 가해자가 아니라, 계정 주인인 피해 학생입니다.

단순한 괴롭힘을 넘어, 자칫하면 아이가

'사기 방조' 혐의로 피의자 신분 조사를 받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내 아이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기 범죄의 공범으로, 혹은 피의자로 전락하는 순간입니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이 은밀한 착취는 아이를 범죄의 늪으로 끌어당깁니다.


5. 때리지 않고 말려 죽이는 은따의 공포


​가장 잡아내기 힘든 폭력은

은따(은근한 따돌림)입니다.

대놓고 욕을 하거나 때리지 않습니다.

그저 투명 인간 취급을 할 뿐입니다.


단톡방에서 피해 학생이 용기 내어 말을 하면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하거나,

피해 학생만 쏙 빼고 다른 방을 만들어 자기들끼리 낄낄거립니다.


SNS 게시물에 주어 없이 피해 학생을 교묘하게 저격하는 글을 올리기도 합니다.
​신체적 상처가 없으니 선생님께 말하기도,

경찰에 신고하기도 애매합니다.

아이는 "애들이 나만 무시해"라고 호소하지만, 어른들은 "네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니?"라고 넘기기 일쑤입니다.


"나만 참으면 되나? 내가 이상한 건가?"


아이는 스스로를 의심하며 고립감 속에서 서서히 무너져내립니다.

몸에 나는 상처보다 마음에 나는 생채기가 훨씬 더 깊고 오래간다는 사실을,

어른들만 모르고 있습니다.


​6. 침묵하는 아이들의 신호를 읽어주세요


​부모님들께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사이버 폭력은 멍 자국이 남지 않습니다.

옷이 찢어지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분명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아이의 휴대폰 데이터 사용량이 갑자기 급증했는지, 소액결제 내역에 모르는 게임 아이템이 있는지 확인해 주세요.


무엇보다 아이가 "학교 가기 싫어", "학원 끊을래"라며 이유 없이 등교를 거부하고, 평소보다 기운 없이 방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순한 사춘기 투정이 아닙니다.


살려달라는 마지막 구조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스마트폰이라는 작은 기계 속에서, 아이는 지금 거대한 세상과 홀로 싸우고 있습니다.


"다 클 때 겪는 과정이야"라는 방관 대신,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 아빠는 네 편이야"라는 확신을 심어주세요.


부모님의 그 따뜻한 관심만이,

차가운 사이버 감옥의 문을 열고 아이를 세상 밖으로 데리고 나올 수 있는 유일한 열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