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엇나간다 - 제 8화

가해자 부모가 되었을 때, 피해자 부모가 되었을 때

by 장경장

​[제 8화] 가해자 부모가 되었을 때, 피해자 부모가 되었을 때


(부제: 벼랑 끝에 선 부모들을 위한 학교전담경찰관(SPO)의 현실적인 매뉴얼)


​어느 날 갑자기 학교나 경찰서에서 전화가 걸려옵니다.


"어머님,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아이가 학교폭력 사건에 연루되었습니다."


​이 한 통의 전화는 평온했던 가정에 폭탄이 떨어진 것과 같습니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심장은 쿵쾅거립니다.

이때 부모님들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뉩니다.
"우리 애가 그럴 리 없어요. 선생님이 잘못 아신 거 아니에요?"라며

현실을 부정하는 가해자 부모님.


"당장 그 애 죽여버릴 거야. 가만 안 둬!"라며 분노를 폭발시키는 피해자 부모님.


​하지만 학교전담경찰관(SPO)으로서 단호하게 말씀드립니다.

그 즉각적인 부정과 분노는 아이를 지키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늘은 벼랑 끝에 선 부모님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그리고 아이를 살리기 위한 장경장만의 대처 매뉴얼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1. "우리 애는 룸카페가 뭔지도 몰라요" (부모의 착각)


​제가 맡았던 사건 중, 룸카페 불법 촬영 사건이 있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밖에서 보이지 않는 밀폐된 룸카페를 아지트처럼 드나듭니다.

그곳에서 남학생이 여학생의 신체를 몰래 촬영해 친구들과 돌려본 사건이었습니다.


​가해 학생의 휴대폰에서 영상을 확보했지만, 피해자가 누군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름과 사는 동네 정도만 아는 상태에서 저는 해당 지역 학교에 일일이 협조 공문을 보내가며 어렵게 피해 학생을 특정했습니다.


문제는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을 때였습니다.

​"당신 보이스피싱이지? 우리 애가 남자랑 룸카페를 왜 가? 우리 애는 그런 거 몰라!"


​어머니는 완강히 부인하며 경찰서까지 쫓아오셨습니다. 하지만 조사실에서 아이가 울며 진술한 내용을 듣고 나서야 어머니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으셨습니다.


부모님들은 내 아이의 모든 것을 안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세계는 부모님의 상상보다 훨씬 복잡하고 비밀스럽습니다.


경찰의 연락을 받았을 때,

무조건 아니라고 부정하거나 화부터 내기보다는, 일단 차분히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아이를 보호하는 첫걸음입니다.


2. 가해자 부모 매뉴얼 : 돈으로 사과하지 마세요

​내 아이가 가해자가 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황한 마음에 피해자 부모님께 무작정 전화를 걸거나 집으로 찾아가는 분들이 계십니다.


하지만 섣불리 직접 접촉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피해 학생과 부모님은 지금 가해자의 목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떨리는 상태입니다.

이때의 섣부른 연락은 사과가 아니라

'2차 가해'나 '스토킹'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사과와 합의 의사는 반드시 담임 선생님이나 담당 경찰관(SPO) 등 중재자를 통해서 정중하게 전달해야 안전합니다.


가장 최악은 사과 없이 돈부터 내미는 경우입니다.


"합의금 넉넉히 줄 테니 없던 일로 합시다."


이런 태도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입니다. 돈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는 피해자에게 더 큰 모멸감을 줍니다.


진심 어린 자필 사과 편지와 반성하는 태도가 선행되지 않은 합의는,

결국 법정에서 '반성하지 않음'으로 간주되어 아이에게 독이 되어 돌아옵니다.


3. 피해자 부모 매뉴얼 : 분노가 내 아이를 찌르지 않게


​반대로 내 아이가 피해자가 되었다면

피가 거꾸로 솟습니다.

당장 학교로 쫓아가 가해 학생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실 겁니다.


하지만 제발 멈추셔야 합니다.

실제로 학교에 찾아가 가해 학생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위협을 가했다가,

오히려 아동복지법상 정서적 학대협박죄로 역고소를 당해 검찰에 송치되는 억울한 사례를 종종 목격합니다.


​피해자 부모님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성'을 찾는 것입니다.

부모가 흥분해서 날뛰면,

아이는 "나 때문에 일이 커졌다"며 더 불안해하고 위축됩니다.


지금 당장 아이의 심리적 안정을 최우선으로 챙기세요.

그리고 감정적인 대응 대신, 병원 진단서나 캡처 화면 같은 객관적인 증거를 차분히 모으는 것이 내 아이를 확실하게,

그리고 끝까지 지키는 방법입니다.


4. 이기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회복적 경찰활동)


​학폭위가 열리고 형사 고소가 진행되면 결과가 나오기까지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1년이 걸립니다.


어른들은 변호사를 선임하고 법리 다툼을 벌이며 '싸움'에 몰두합니다.


하지만 그 긴 시간 동안 정작 아이는 망가져 갑니다.

학교생활을 견디지 못해 "전학 가고 싶다", "자퇴하고 싶다"며 고통을 호소합니다.


​법적으로 승소해서 가해 학생이 징계를 받는다고 아이의 상처가 씻은 듯이 나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때로는 법적인 처벌보다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가 아이를 치유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경찰은 사건이 경미하고 양측이 동의할 경우, 전문가와 함께 대화의 자리를 마련하는 '회복적 경찰활동'을 지원합니다.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

아이가 다시 일상으로 웃으며 돌아가는 것이

우리 모두의 진짜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5. 사건은 지나가도, 마음은 기억한다


​아이들에게 경찰서와 법원은 감당하기 힘든 공포입니다.

가해 학생이든 피해 학생이든,

이 과정에서 겪는 심리적 변화는 엄청납니다.

수사 서류는 언젠가 캐비닛 속으로 들어가겠지만, 아이 마음에 남은 생채기는 영원한 흉터가 되어 평생을 따라다닐 수도 있습니다.


​부모님들께 마지막으로 부탁드립니다.
가해자 부모님, 아이에게 죄가 있다면 변명 대신 솔직하게 인정하고 책임지는 법을 가르쳐주세요. 그것이 아이를 범죄자가 아닌 성숙한 어른으로 키우는 유일한 길입니다.


피해자 부모님, 이 긴 싸움의 목적은 복수가 아니라

'내 아이의 온전한 회복'임을 잊지 말아 주세요.

​지금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승소 판결문이나 합의금 봉투가 아닙니다.


불안에 떨고 있는 아이를 아무 말 없이 꽉 안아주는 부모님의 따뜻한 품입니다.


사건보다, 법보다, 사람이 먼저입니다.


부디, 서류를 보지 말고 아이의 마음을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