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귀 가는 경찰 오빠, 증거 찾는 공무원 동생
지금은 학교전담경찰관(SPO)으로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지키고 있지만,
이 이야기는 제가 밤낮없이 현장을 뛰어다니던 지구대 순찰 팀 시절의 기억입니다.
"애가 계속 우는데 옆집에서 소리가 너무 커요."
야간 근무 중 떨어진 긴급 아동학대 신고.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코를 찌르는 술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방바닥에는 술병이 굴러다니고 있었고,
3살짜리 남자아이는 구석에서
불안하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
태어난 지 고작 2주밖에 안 된 신생아가 자지러지게 울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만취 상태였습니다.
"내 새끼 내가 안을 거야... 비켜!"
비틀거리는 엄마가 목도 못 가누는
핏덩이를 안고 휘청였습니다.
아찔한 상황이었습니다.
"어머니, 잠깐만요! 아이 다쳐요!"
저는 본능적으로 엄마를 제지하고
아이를 받아 안았습니다.
묵직한 기저귀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확인해 보니 아이의 엉덩이에는 대변이 말라붙어 피부가 벌겋게 짓물러 있었습니다.
꽤 오랫동안 방치된 게 분명했습니다.
보통의 경찰관이라면 당황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5살, 3살 두 아이의 아빠이자,
둘째 때는 육아휴직까지 쓰며
직접 아이를 키워낸 '육아 경력직'이었습니다.
"부장님, 어머니 좀 진정시켜주세요."
저는 망설임 없이 화장실로 가서 손을 씻었습니다.
그리고 익숙한 솜씨로 굳어버린 기저귀를 닦아내고 새것으로 갈아입혔습니다.
아이가 배고파서 보채자,
엄마에게 분유를 타 달라고 소리치는 대신
제가 직접 주방을 뒤져 분유를 탔습니다.
"오구오구, 배고팠어? 옳지, 잘 먹네."
능숙하게 젖병을 물리고,
등을 쓸어내려 '꺼억-' 트림까지 시킨 뒤 아이를 재웠습니다.
땀에 젖은 제복 위로 잠든 아이의 평온한 얼굴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이 아이, 오늘 밤 절대 이 집에 두면 안 된다.'
즉시 시청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아동보호팀)에게 연락했습니다.
현장에 도착한 시청 팀과 긴급 회의가 열렸습니다.
여기서부터 관점의 차이가 충돌했습니다.
시청 팀:
"원칙대로 해야 합니다. 즉시 분리해서 보호 시설로 보내겠습니다."
나(경찰):
"잠시만요. 시설보다는 근처 할머니 댁으로 보내는 게 낫습니다."
시청 공무원들은 매뉴얼대로 가장 안전한
'시설 입소'를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저는 경찰이기 이전에 아동·청소년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아이에게 '가족과의 단절'이 주는 공포가 얼마나 큰지 알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알코올 중독은 아닙니다.
임신 기간 내내 참았던 술을 오늘 한 번 마시고 실수하신 것 같아요.
물론 잘못했지만, 지속적인 학대 정황은 안 보입니다.
당장 낯선 시설로 보내면 가족 관계가 완전히 끊어집니다.
아이 정서를 생각해서 할머니 댁으로 인계하죠."
팽팽한 의견 대립 끝에, 결국 제 설득이 받아들여졌습니다.
아이들은 낯선 시설 대신 익숙한 할머니 품에 안겼습니다.
술이 깬 엄마는 다음날 펑펑 울며 뼈저리게 후회했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만약 그때 기계적으로 시설로 보냈다면, 이 가정은 영영 깨졌을지도 모릅니다.
사건이 잘 마무리되고 며칠 뒤,
실제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친여동생과 통화를 했습니다.
동생네 팀장님이 "현장에서 기저귀 갈고 분유 먹이는 경찰관은 처음 봤다"며 칭찬하더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으쓱해진 저는 동생에게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야, 봤냐? 오빠가 육아휴직 짬바(경력)로 애기 딱 케어하고, 할머니 집으로 보낸 판단력. 완벽했지?"
그런데 수화기 너머 동생의 반응은 뜻밖이었습니다.
"오빠, 미쳤어? 그걸 그냥 갈아주면 어떡해!"
"뭐? 애가 똥독이 올라서 우는데 그럼 보고만 있냐?"
"아니, 사진부터 찍었어야지!! 엉덩이가 빨개진 그 상태가 바로 '방임'의 증거잖아.
그걸 닦아버리면 나중에 엄마가 발뺌할 때 뭘로 입증할 건데?
우린 그걸 근거로 분리 조치한다고!"
순간 말문이 막혔습니다.
동생의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시청 공무원 입장에선 확실한 행정 처분을 위해 '증거(Evidence)'가 최우선이었습니다.
하지만 경찰이자 아빠인 제게는 당장 울고 있는 아이의 '안녕(Safety)'이 먼저였습니다.
"야, 그래도 애가 아픈데 어떡하냐.
사진이고 나발이고 일단 닦아줘야지."
"으이구, 이 인간적인 경찰관 나셨네.
하여튼 현장 감성은 알아줘야 해."
우리는 그렇게 또 티격태격했습니다.
방법은 달랐지만, 결국 동생도 저도 목표는 하나였습니다.
어른들의 실수로 고통받는 아이가 없게 하는 것.
오늘도 저는 현장에서 기저귀를 갈고,
동생은 사무실에서 증거 사진을 분석합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위치에서, 같은 아이들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동학대 사건은 정답이 없습니다.
매뉴얼과 원칙을 중시하는 행정(시청)과,
현장의 위급함과 유연함을 중시하는 치안(경찰).
이 두 바퀴가 맞물려 돌아갈 때 아이들은 가장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가끔은 동생에게 "증거 날려먹었다"고 잔소리를 듣더라도,
저는 다시 그 상황이 오면 주저 없이 기저귀부터 갈아줄 겁니다.
증거는 사라졌을지 몰라도,
그날 밤 아이가 느꼈던 온기는 사라지지 않았을 테니까요.
어쩌면 아이를 구하는 건
차가운 증거 사진 한 장보다,
자신을 위해 기꺼이 손을 더럽혀준
어른의 따뜻한 손길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