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로 출근하는 N잡러 -제 8화 기록의 힘

총 대신 펜을 든 경찰관

by 장경장

​제 8화 기록의 힘


총 대신 펜을 든 경찰관


​1. 경찰의 언어 vs 작가의 언어


​경찰이 되고 나서 가장 많이 쓴 글은 반성문도, 연애편지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피의자 신문 조서'와 수많은

'수사 보고서'였습니다.


​경찰의 보고서는 건조합니다.

육하원칙에 맞춰 감정을 철저히 배제한 채 사실관계만을 나열해야 합니다.


"피의자는 피해자의 안면을 주먹으로 1회 가격하였다."


이 짧은 한 문장 속에 담긴 피해자의 공포, 피의자의 뒤늦은 후회,

현장의 비릿한 공기는 모두 소거됩니다.


법적인 판단을 위해

'팩트'만 남기고 '마음'은 발라내야 하는 작업. 그것이 제가 배운 경찰의 글쓰기였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눈빛은

보고서에 담기지 않았습니다.


도박 빚 때문에 흐느끼던

고등학생의 떨리는 어깨,


쓰레기 집에서 똥 기저귀를 찬 채

잠든 아기의 평온한 얼굴,


벼랑 끝에서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던

아이들의 절박한 눈동자.


​저는 그 지워진 감정들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습니다.

팩트 뒤에 숨겨진 '진심'을 기록하지 않으면,

그 사건들은 결국 차가운 서류철 속에 갇혀 먼지처럼 사라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퇴근 후,

제복을 벗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기 시작했습니다.


딱딱한 경찰의 언어가 아닌,

뜨거운 사람의 언어로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2. 글쓰기는 나를 위한 해독제


​사실 글을 쓴다는 건,

누구보다 저 자신을 살리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기도 했습니다.


​경찰관은 필연적으로 타인의 가장 불행한 순간을 마주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누군가 다치고, 싸우고, 죽어야만 비로소 출동하는 사람들.


매일 마주하는 폭력과 죽음의 잔상은 알게 모르게 제 마음속에 독처럼 쌓여갔습니다.


​동료들은 독한 술로, 담배로, 혹은 격렬한 운동으로 그 독을 빼내곤 합니다.

저는 ''을 택했습니다.


현장에서 차마 뱉지 못하고 삼켰던 말들, 피해자를 보며 느꼈던 깊은 안타까움,

때로는 범죄자를 향한 끓어오르는 분노까지.

​하얀 모니터 화면에 감정의 배설물들을

쏟아내고 나면, 꽉 막혀 있던 숨통이 조금씩 트이는 기분이었습니다.


저에게 글쓰기는 단순한 취미가 아닙니다. 상처투성이인 치안 현장에서 제 영혼이 다치지 않고 내일 또다시 출동할 수 있게 만드는,

가장 안전한 대나무 숲이자 해독제입니다.


​3. 총보다 강한 것은 결국 '공감'이다


​물리적인 위협 앞에서 범인을 제압하는 건 테이저건과 삼단봉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건 결국 '공감'과 '이야기'의 힘이었습니다.


​제가 쓴 글을 보고

"경찰관님 덕분에 경찰에 대한 편견이 깨졌어요"라는 댓글을 볼 때,


"저도 비슷한 아픔이 있었는데 큰 위로를 받고 갑니다"라는 메시지를 받을 때,


저는 경찰이 가진 공권력보다 더 큰 힘을 느낍니다.


​총은 사람을 잠시 멈추게 할 수는 있어도,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은 문장은 누군가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편견의 벽을 허물며, 어쩌면 벼랑 끝에 선 누군가를 삶의 방향으로 되돌려 세울 수도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낮에는 제복을 입고 현장을 누비고,

밤에는 잠옷을 입고 글을 쓸 겁니다.

나쁜 놈은 수갑으로 잡고,

아픈 마음은 문장으로 잡는 것.

그것이 N잡러이자 기획자, 상담가,

그리고 작가인 제가 꿈꾸는 '진짜 경찰'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Police Insight: 마음을 검거하는 기록관]


​누군가 제게 앞으로의 꿈이 뭐냐고 묻는다면, 이제는 더 높은 계급으로의 승진이나 빛나는 표창장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제 꿈은 우리 사회의 가장 아픈 곳을 먼저 발견하고,

그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을 묵묵히 기록으로 남기는 '기록관'이 되는 것입니다.


​사건은 수사 종결로 끝나지만,

그 속에 있던 사람들은

계속해서 오늘을 살아가야 하니까요.


사건 번호가 부여되지 않은

그 수많은 이야기들이,

사실은 우리가 진짜 살아가야 할

이유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