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로 출근하는 N잡러 -에필로그

쓸모없는 시간은 단 1초도 없다

by 장경장

에필로그


쓸모없는 시간은 단 1초도 없다


​"경찰관이 엑셀 좀 하면 뭐 해?

범인만 잘 잡으면 되지."

​누군가는 나의 유난스러운 행보를 보며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현장에서 범인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는 것은 경찰의 강인한 체력이지만,

범죄가 발생하기 전 시스템의 구멍을 메우고,

조직의 내일을 바꾸는 건 익숙함에 저항하는 '새로운 시각'이라고.

​나의 20대는 뜨거웠고, 산만했으며, 치열했다.
폭우를 뚫고 달리는 배달 라이더였고, 무릎 꿇고 주문을 받는 레스토랑 서버였으며,


흔들리는 M버스 안에서 밤새워 기획안을 짜는 스타트업의 일원이었다.

누군가는 혀를 찼고, 누군가는 걱정했다. 나조차도 때로는 불안했다.


이 파편 같은 경험들이 도대체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지 알 수 없었기에.

​하지만 제복을 입고 치안 현장에 선 순간,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내 안에 아무렇게나 쌓여있던 과거의 경험들이 하나둘 연결되며

나만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기 시작했다.


• ​빗길을 질주하던 라이더의 감각은

1분 1초가 급박한 골든타임 출동의 밑거름이.

되었고,
• ​수많은 진상 손님을 웃으며 응대했던 서비스.

마인드는 굳게 닫힌 피의자의 마음을 여는

공감의 열쇠가 되었다.
• ​상담실에서 청소년들과 울고 웃던 시간은

위기에 처한 아이를 알아보는

SPO(학교전담경찰관)의 따뜻한 시선이

되었고,
• ​맨땅에 헤딩하며 치열하게 고민했던

스타트업의 기획력은 딱딱한 경찰 조직에

혁신을 불어넣는 엔진이 되었다.

​나는 깨달았다.

경찰은 단순히 매뉴얼대로 법을 집행하는 '기계'가 아니라,


세상의 온갖 경험을 재료 삼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문제를 해결하는 '종합 예술가'여야 한다는 것을.


내 몸에 새겨진 그 '잡다한 DNA'들이야말로 나를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경찰'로 만든 일등 공신이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어쩌면,

보이지 않는 미래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을지 모른다.


노량진의 좁은 책상 앞에서,

혹은 원치 않는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자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경찰을 꿈꾸는 후배들,

혹은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오늘을 살아내는 모든 이들에게

감히 말하고 싶다.



의심하지 마라.

당신의 인생에 버려지는

시간은 단 1초도 없다.



지금 당신이 흘리는 땀방울,

남몰래 삼키는 눈물,

겪어내는 모든 부조리와 시행착오는 결코 증발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당신의 내면에 차곡차곡 쌓여,

훗날 당신이 가장 빛나야 할 결정적인 순간에 당신을 지탱해 줄 가장 단단한 근육이 될 것이다.


바로 지금의 나처럼.


​그러니 두려워 말고 세상 밖으로 나가 부딪쳐라.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깨지고, 경험하라.


책상 위의 이론이 아닌, 몸으로 부딪치며 얻은 '경험의 근육'만이 진짜 당신을 완성시킬 것이다.

​나의 이야기는 여기서 일단락되지만,


'N잡러 경찰관'의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낮에는 제복을 입고 현장을 누비고, 밤에는 이 뜨거운 기록들을 써 내려가며,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경찰,

조금 더 깊은 사람이 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낼 것이다.



우리가 살아낸 모든 순간은,

결국 빛을 발할 것이다.


​2026년 어느 날 밤,


당신의 찬란한 경험을 응원하며.


장경장 드림.



​[그리고, 다음 이야기]


"제복 입은 어른이 아닌, 인생의 선배로서"

​돌이켜보면, 경찰이 되기 전 방황하며 겪었던 수많은 경험 중 버릴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치열했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저는 벼랑 끝에 선 아이들에게 "법대로 하자"는 말 대신 "밥은 먹었니?"라는 말을 먼저 건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학교전담경찰관(SPO)이 되어 마주한 아이들의 세상은, 제가 겪었던 방황보다 훨씬 더 깊고 은밀하고 위험했습니다.


스마트폰이라는 작은 창 너머에서,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이 모르는 사이에 소리 없이 병들어가고 있었으니까요.


​이제 저는 '저의 이야기'를 잠시 멈추고, '아이들의 진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딥페이크, 사이버 도박, 마약...


뉴스 먼 곳에 있는 줄 알았던 범죄들이 어떻게 우리 아이의 책상까지 침범했는지.

그리고 부모님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다음 2부에서는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어긋난다'는 뼈아픈 진실을 마주하며,

현직 SPO가 목격한 아이들의

위태로운 세계와 현실적인 해법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