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대신 펜을 든 경찰관
경찰이 되고 나서 가장 많이 쓴 글은 반성문도, 연애편지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피의자 신문 조서'와 수많은
'수사 보고서'였습니다.
경찰의 보고서는 건조합니다.
육하원칙에 맞춰 감정을 철저히 배제한 채 사실관계만을 나열해야 합니다.
"피의자는 피해자의 안면을 주먹으로 1회 가격하였다."
이 짧은 한 문장 속에 담긴 피해자의 공포, 피의자의 뒤늦은 후회,
현장의 비릿한 공기는 모두 소거됩니다.
법적인 판단을 위해
'팩트'만 남기고 '마음'은 발라내야 하는 작업. 그것이 제가 배운 경찰의 글쓰기였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눈빛은
보고서에 담기지 않았습니다.
도박 빚 때문에 흐느끼던
고등학생의 떨리는 어깨,
쓰레기 집에서 똥 기저귀를 찬 채
잠든 아기의 평온한 얼굴,
벼랑 끝에서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던
아이들의 절박한 눈동자.
저는 그 지워진 감정들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습니다.
팩트 뒤에 숨겨진 '진심'을 기록하지 않으면,
그 사건들은 결국 차가운 서류철 속에 갇혀 먼지처럼 사라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퇴근 후,
제복을 벗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기 시작했습니다.
딱딱한 경찰의 언어가 아닌,
뜨거운 사람의 언어로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글을 쓴다는 건,
누구보다 저 자신을 살리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기도 했습니다.
경찰관은 필연적으로 타인의 가장 불행한 순간을 마주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누군가 다치고, 싸우고, 죽어야만 비로소 출동하는 사람들.
매일 마주하는 폭력과 죽음의 잔상은 알게 모르게 제 마음속에 독처럼 쌓여갔습니다.
동료들은 독한 술로, 담배로, 혹은 격렬한 운동으로 그 독을 빼내곤 합니다.
저는 '글'을 택했습니다.
현장에서 차마 뱉지 못하고 삼켰던 말들, 피해자를 보며 느꼈던 깊은 안타까움,
때로는 범죄자를 향한 끓어오르는 분노까지.
하얀 모니터 화면에 감정의 배설물들을
쏟아내고 나면, 꽉 막혀 있던 숨통이 조금씩 트이는 기분이었습니다.
저에게 글쓰기는 단순한 취미가 아닙니다. 상처투성이인 치안 현장에서 제 영혼이 다치지 않고 내일 또다시 출동할 수 있게 만드는,
가장 안전한 대나무 숲이자 해독제입니다.
물리적인 위협 앞에서 범인을 제압하는 건 테이저건과 삼단봉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건 결국 '공감'과 '이야기'의 힘이었습니다.
제가 쓴 글을 보고
"경찰관님 덕분에 경찰에 대한 편견이 깨졌어요"라는 댓글을 볼 때,
"저도 비슷한 아픔이 있었는데 큰 위로를 받고 갑니다"라는 메시지를 받을 때,
저는 경찰이 가진 공권력보다 더 큰 힘을 느낍니다.
총은 사람을 잠시 멈추게 할 수는 있어도,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은 문장은 누군가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편견의 벽을 허물며, 어쩌면 벼랑 끝에 선 누군가를 삶의 방향으로 되돌려 세울 수도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낮에는 제복을 입고 현장을 누비고,
밤에는 잠옷을 입고 글을 쓸 겁니다.
나쁜 놈은 수갑으로 잡고,
아픈 마음은 문장으로 잡는 것.
그것이 N잡러이자 기획자, 상담가,
그리고 작가인 제가 꿈꾸는 '진짜 경찰'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제게 앞으로의 꿈이 뭐냐고 묻는다면, 이제는 더 높은 계급으로의 승진이나 빛나는 표창장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제 꿈은 우리 사회의 가장 아픈 곳을 먼저 발견하고,
그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을 묵묵히 기록으로 남기는 '기록관'이 되는 것입니다.
사건은 수사 종결로 끝나지만,
그 속에 있던 사람들은
계속해서 오늘을 살아가야 하니까요.
사건 번호가 부여되지 않은
그 수많은 이야기들이,
사실은 우리가 진짜 살아가야 할
이유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