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사는게 열등하냐고, 삶이 내게 물었다.
<이만하면>
지금은 도서관이다. 계획은 오전에 글 한 편 써놓고, 지금쯤 식당에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제야 첫줄을 쓰고 있다. 나 뭐했지. 이로써 오전 한때 내 알리바이는 불투명해졌다.
국어사전을 펼쳤다. 가끔 쓰고 싶은 글이 없을 때, 국어사전을 펼쳐 글감을 찾는다. 실은 그냥 정신을 놓고 싶을 때 국어사전을 읽는다. 멍하다.
‘어?’ 하고 말이 입밖으로 새어 나올 때가 있다. 이건 처음 봤고, 아름다운 단어를 발견했다는 신호다. 감탄은 화사해서 좀처럼 참기가 힘들다. 그저께는 ‘ㅎ’파트에서 허하롭다는 낱말을 발굴했다. 의미는 독자들이 직접 사전에서 찾아보시길 바란다. 줄임말과 욕설이 팽배한 시대에, 나는 청소년이 국어 문제집 보다 국어사전에 더 큰 애착 가지길 바라는 사람이다.
‘ㅇ’단원을 들추다 ‘이만하다’라는 단어에서 눈길이 멈췄다. 그 뜻은 다음과 같다. 상태, 모양, 성질 따위의 정도가 이러하다(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주로 우리는 ‘이만하면’이라는 형태로 자주 사용하는데, 그 뜻에는 ‘~보다’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으레 중년은 “이만하면 잘 살았다.”고 말한다. 이 말은, 내 명의로 된 30평 대 아파트가 있고, 차는 성공한 남자의 상징 ‘그랜저’일 때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다, 20평대 아파트 전세 살고, 차는 소나타 밖에 안 되는 친구 영훈이 보다 내가 낫다는 말이겠다.
나는 ‘이만하다’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지우고 싶었다. 단어를 한 자 한 자 소리 내어 읽을 때마다, 단어가 오만함으로 똘똘 뭉쳤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 좀 잘났다’ ‘그래서 뭐’, 신성한 국어사전에 낱말 뜻풀이가 이러할 리 없지만, 이만하다는 단어를 치아 사이에 두고 우걱우걱 씹으면 씹을수록 ‘나 좀 잘났다’ ‘그래서 뭐’, 이 두 마디만 계속해서 귓가에 맴돌았다.
많은 청춘의 삶이 방향성을 잃었다. 뭣 모르고 좋은 대학가면 성공된 삶을 살 수 있다는 어른들의 말에 속았다. 열심히 공부했다. 그 말들이 전부 거짓이었음을 본인들의 삶으로 증명하는 것 지켜본 뒤로, 나는 많은 것들을 의심했다. 그리고 저항했다. 특히 ‘원래 그렇다’는 말을 굉장히 싫어하게 되었다. 세상에 원래 그런 건 없다, 최초의 누군가 그렇다는 말을 했고, 우린 그 말을 의심 없이 믿었을 뿐이다.
나는 제법 깨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홈베이스를 밟고 서서, 마치 홈런이라도 치고 들어온 타자 마냥 우쭐해 있는 녀석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기도 싫었다. 누구도 아직 홈런을 치지 않았다. 우린 이제 막 맞은편에 들어선 세상이라는 투수의 1구를 받아치기 위해 홈베이스를 밟고 서 있는 것뿐이다. 아무리 세상에 무감각하더라도, 지금 내가 뛰어가야 할 곳이 벤치가 아니라 1루라는 것쯤은 알았으면 했다. 그리고 나는 그걸 제법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겸손은 자만을 품고 있었다.
20대 초반, 나는 분명 1루를 향해 뛰고 있었다. 취미와 직업,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까지,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느라 학교 밖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수많은 불안과 싸웠다. 친구들이 하나 둘 안정된 직장에 고액연봉을 받고 입사하는 것을 지켜보며, 비정규직에 삼각김밥으로 삶을 연명하는 내 처지가 한스러웠다. 그럼에도 나는 1루로 뛰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20대 후반, 그 믿음이 유효한지 내게 묻는다면 나는 뭐라 할 말이 없다. 머릿속에 그려왔던 거대한 패기에 비하면, 현실은 작고 초라하다. 작아서 초라하다. 얇아서 초라하다. 작은 바람만 불어도 아스팔트 위에서 나뒹구는 낙엽이다.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는 왜 낙엽이 초라하다고만 생각했을까’
작은 바람에 움직일 수 있다는 건, 작은 바람만 있어도 멀리 날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낙엽의 가벼움이 장점인 줄 모르고, 나는 왜 스스로를 초라하다고만 생각했을까. 바람이 불면 그 바람에 몸을 맡기면 된다. 말라 바스락 소리 내는 낙엽은 그 가벼움이 장점이다. 어디든지 갈 수 있고, 열매보다 좀 더 쉽게 갈 수 있다. 가벼워서 그렇다. 가진 게 없어 그렇다.
나는 낙엽이다. 그런데 날지 못했다. 아니 날았다고 생각했다. 벤치로 들어가지 않고, 1루를 향해 뛴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럼에도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내가 어디로 뛰고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여태 달려온 곳이 1루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매번 주저하고 망설이느라, 도루에 실패한 주자였던 것만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분명 열심히 했는데 성과 없는 일들이 많았고, 점점 더 염세적으로 바뀌어가는 스스로를 지켜볼 수 없었다.
‘이 글을 끝 맺으면 나는 바람에 몸을 맡긴 낙엽이 될 수 있을까’
쉽사리 YES라고 답하지 못해서 울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