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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우 Oct 21. 2020

<맑은 눈빛은 일종의 허락 같은 것>

사는 게 열등하냐고, 삶이 내게 물었다

<맑은 눈빛은 일종의 허락 같은 것>

물이 탁한 웅덩이는 표면만 보고서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확신할 수 없는 위협에 섣불리 발을 담그는 것은 긴 인생에 한두 번이면 족하다. 사는 일에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라면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빠져봐야 물살의 깊이와 빠르기를 알 수 있다고 말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의 이야기지 내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둘 필요가 있다. 현실세계에서 우린 <007> 제임스본드가 아니며, <미션임파서블> 에단 헌트가 아니다. 인생길 앞에 닥친 모든 문제를 멋지게 해결하고 해피엔딩을 맞을 거라는 결론은 섣부르다. 그래서 나는 여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위험만 감수해왔다. 물이 탁한 웅덩이 앞에서 호기심이 일더라도, 발을 담그지 않음으로써 물귀신이 되는 처지만은 면할 수 있었다.


 눈빛이 중요하다. 한 사람을 사귀는 때 그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것은, 잦은 회식으로 볼록 나온 배도 아니고, 굽은 등도 아니며, 미용실에서 잘못 자른 앞머리도 아니다. 눈빛이다. 눈빛만 살아 있다면, 볼록 나온 배도, 굽은 등도, 잘못 자른 앞머리도 제 나름의 의미를 갖고 해석될 수 있다.


 나는 눈동자가 맑고 깊은 사람한테 아주 약하다. 그 눈빛은, 이유를 설명할 순 없지만 묘한 확신을 갖게 한다. 이 사람은 한 번 믿어 봐도 좋겠다, 왜 그런 확신 말이다. 내게 대화는 누군가의 눈을 오래 감상하기 위한 연막작전에 불과하다. 입으로 말하는 척, 사실 그의 눈빛을 바라보며, 그의 진심을 저울질한다. 대화가 삼십 분, 한 시간이 지나도록 눈빛이 생기를 잃지 않는다면 나는 그 눈빛에 내 모든 걸 배팅할 수 있다. 그만큼 눈빛이 맑다는 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신뢰감을 심어준다.


 이런 면에서 눈빛은 웅덩이와 그 속성이 같다고 할 수 있다. 눈빛이 흐릿한 사람이 있다. 초점이 맞지 않고,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럽다. 오래도록 대화에도 그의 눈빛 속으로 빠져들 수 없을 것 같은 사람, 나는 이런 사람을 물이 탁한 웅덩이에 비유하곤 한다. 깊이를 알 수 없어 내가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지 않는다. 물론 그 사람이 내 생각과 다르게 무척 인품이 훌륭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를 가까이 두지 않는 것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위험요소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돈을 탐하다 잃는 건 돈 뿐이지만, 사람을 욕심내다 잘못되면 모든 걸 잃을 수 있다.


 그래서 눈빛이 맑은 사람은 투자 대상이고, 눈빛이 탁한 사람은 투기 대상이다. 맑은 눈빛은 내게 오래도록 행복을 가져다주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는 그럴 수 없어, 한두 번 만나고 가급적 빨리 관계를 정리하는 편이 낫다.


 여기까지 써놓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두 가지 눈빛을 다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맑은 눈빛은 본래 맑은 것이 아니라, 자기 눈동자 속으로 내가 들어가도 괜찮다는 허락이 있을 때만 맑아지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여태 내가 극찬했던 눈빛들은 사실 나에게 무언의 허락을 해주었는지 모른다. 마음을 열어주어서 나는 그 눈빛에 응답할 수 있었다. 결국 맑은 눈빛은 내가 그의 눈빛을,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뜻이었나 보다.


가만히 한 사람의 눈동자를 들여다보기 좋은 계절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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