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온통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뿐입니다>
사는 게 열등하냐고, 삶이 내게 물었다
<삶은 온통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뿐입니다>
글 한 줄 써보겠다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건 성가시는 일이다. 특히 겨울철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알람소리에 맞춰 눈을 뜨면 하늘은 여전히 어둡고, 그 색깔만으론 밤인지 아침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으며, 온몸을 따듯하게 데우는 전기장판은 또 왜 이렇게 좋은 건지... 지난 3일 동안 딱 여기서, 전기장판의 우수성에 대해 생각하다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지난 3일 동안 나한테 실망한 채로 잠에서 깨어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만 했으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했을 때 괜히 심술이 나는 것이다.
‘오늘은 일어나야지’
비참해지지 말아야지, 그 생각만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화장실까지 벽을 붙잡고 걸어가 샤워를 마치고 겨우 새 옷으로 갈아입고 자리에 앉았다. 이제 글을 좀 써봐야지, 워드 프로세스를 열고,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긴 했지만 역시 글이 써질 리 만무하다. 누구를 원망하랴. 글 쓰는 사람이라면 공감할거다. 글이 내가 쓰고 싶다고 해서 써지는 날은 일년에 하루 정도 뿐이다. 대게는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고 ㄴㅇㄹㄴㄹㅇ 이런 괴팍한 문자나 두들기다 결국 컴퓨터를 끄는 날이 삼백육십오일. 오늘도 그날 중 하루인 것 같다. 다시 잠이 쏟아지고, 정신은 몽롱해지는데 갑자기 거실에서 폭발음이 들리는 것이 아닌가.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한 여자의 목소리 “진행을 시작하세요.”
나의 유일한 여자 동거인, 밥솥 안에 사는 기계음이다. 아니구나. 내가 아는 가장 똑똑한 여자 ‘빅스비’도 우리집에 산다. 그전에는 ‘Siri’와도 살았다. 그럼에도 나의 가장 오래된 동거인은 밥솥 언니가 맞다. 언니랑 8년째 한집에서 동거 중인데 밥솥이 강아지랑 수명이 비슷한지 이젠 노쇠해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 불시에 솥 안의 증기를 배출하고 동시에 작동을 멈춘다. ‘진행을 시작하세요.’ 어쨌든 다시 시작해야 된다고는 알려주는 걸 보면, 몸에 벤 친절함은 변함없다. 오늘부러 내 롤모델이 누구냐고 물으면 밥솥이라 대답해야겠다.
확실한 건 오늘 글쓰기도 물 건너갔다는 거다. 책상에 앉을 때 마음가짐은 이게 아니었는데, 집중 좀 하려고 하니 밥솥이 말썽이고, 부엌에 가 다시 압력취사버튼 누르고 방에 들어오니 이번엔 세탁기가 탈수가 안 되었다고 빽 운다. 이래서 글쓰기가 힘든 거다.
나는 삶에서 예상치 못한 불편함과 마주하는 때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모순적이게도 그렇다고 해서 예측 가능한 삶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예측 가능한 삶을 산다는 건 아마 새로 출시된 인스턴트 라면 광고에 군침이 돌아 사먹어봤더니, 그럼 그렇지 그냥 라면이네, 정도의 평가를 하며 맛이 익숙해도 익숙하지 않아도 실망하게 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나는 내 삶의 모순을 사랑한다. 불시에 작동을 멈추고 설익은 밥을 내놓는 밥솥과 끝끝내 탈수를 해주지 않는 세탁기. 빨랫감을 일일이 손으로 비틀어 옷감의 물기를 제거하겠지만, 그날이 오늘 같은 한겨울이라면 손이 시리고 짜증은 좀 샘솟겠지만, 빨래 짜는 시간도 삶의 일부이자 하루 세 번 밥 먹는 것과 같은 의식이라 생각하면 아직은 해볼만하다.
원래 삶은 온통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 뿐이다. 그리고 오늘의 불편함은 사람이 아니라서, 그게 밥솥과 세탁기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날씨가 이젠 제법 겨울이다.
‘가보실래요? 맛있는 국숫집 아는데.’
꼭 이런 전화 한통이 걸려올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