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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우 Dec 15. 2020

<능력에 비해>

사는 게 열등하냐고, 삶이 내게 물었다

<능력에 비해>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까지
굳이 내가 할 필요는 없지만,
인생이란 정원에 물을 주는 일, 잡초 뽑아주는 일은
‘나만’ 할 수 있는 일이라서
굳이 나는 나와 잘 지낼 필요가 있다


입을 꾹 다물고 싶은 날이 있다. 솔직히 대게 매일이 그렇다. 오전에 글 쓰고, 오후부터 밤까지 수학을 가르치는 나는, 여전히 능력에 비해 많은 공부를 소화하고, 능력에 비해 많은 책을 읽으며, 능력에 비해 많은 것들을 가르친다. 얼핏 들으면 자기자랑 같고, 얼핏 들으면 굉장히 능력 있는 시람 같이 보일지 모른다. 그래서 일러두는 거다. ‘능력에 비해’


 내가 가진 능력보다 한 단계 높은 레벨에 도전하려 한다면, 대상이 게임이 되었든 일이 되었든 나는 그 숭고한 행위를 ‘노력’이라고 이름 붙인다. 노력은 아름답다. 노력은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보석보다 빛나고, 고귀하다. 하찮은 일도 노력이 한 스푼 더해지면 아름답다. 일요일 아침에 청소기를 미는 것도, 일주일치 묵은 빨래를 돌리는 것도 예술이 될 수 있다. 어떤 일도 예술이 될 수 있다면, 어떤 삶도 예술이 될 수 있다.


 다만, 노력은 치명적인 단점 하나를 품고 있는데, 그건 자주 실패한다는 거다. 노력하면 실패한다. 이건 정말 맞는 말이라서 삶에서 수학공식쯤으로 여겨도 좋다. 생각해보면 또 너무 당연한 말인지 모른다. ‘능력에 비해’ 높은 단계에 도전하는 행위를 노력이라 했는데, 하는 일마다 족족 다 성공하면 그건 ‘능력에 맞는’일을 한 것뿐이잖아. 그래서 노력이 아름답다면, 실패도 아름다운 거다. 둘은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점에서 유통되는 흔한 자기계발서들은 계속해서 노력이 성공과 같은 말이라고 한다. 나도 속았고, 여러분도 속았다.


 성공은 ‘노력=실패’ 공식의 예외 조항이다. 으레 예외라는 것이 그렇듯 자주 일어나지 않지만, 가끔 일어난다. 성공은 한 겨울에 개나리가 피고, 4월에 미세먼지가 없는 정도의 확률로 일어나지만, 우린 아주 가끔 있는 벅찬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산다. 아니 매일 실패한다.


 실패는 당연한 일이다. 인생은 실패와 부대끼며 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실패와 친해지는 법을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 여전히 좀 어색한 사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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