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
사는 게 열등하냐고, 삶이 내게 물었다
<멈춘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
글을 써야겠다 마음먹고,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으면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언제나 똑같다. 좋은 글을 써야지. 손끝에 힘이 바짝 들어간 채 나는 매일 좋은 글을 쓰기 위해 고민한다. 어제 읽었던 작가의 글은 비유가 참 멋지던데. 나도 주옥같은 비유로 글 한편 지어야지. 의욕은 머릿속에만 맴돌 뿐 막상 손끝에 전해지지 않는다.
오랜시간 첫줄을 쓰지 못할 때는 가끔 영적인 체험을 하기도 한다. 분명 방금 눈앞으로 쓰고 싶은 한 문장이 스쳐지나간 것도 같은데, 잠깐 멍 때리는 사이에 기억 저편 너머로 사라지고 없다. 역시 인생은 얄궂다.
이럴 땐 컨닝만이 답이다! 내 책장에는 문장수집노트 한 권이 꽂혀있다. 소설을 읽다가, 일상을 지내다가도 문득 머릿속에 한 문장 스쳐지나갈 때가 있다. 정말 문득이라서 입으로 뱉지 않으면 금방 머릿속에서 사라질 것 같아, 문장수집노트를 펼칠 때까지, 연필을 집어 무언가 쓸 수 있을 때까지 혼자 반복해서 옹알이 한다. 그렇게 한 문장 한 문장 적어서 모아둔 내 보물 1호, 문장수집노트다. 글은 써야겠고 소재는 떨어졌을 때 가끔 쓰는 방법, 무작위로 노트를 펼쳐, 처음 눈에 들어온 문장으로 글을 쓰자. ‘멈춘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 오늘의 문장이다.
멈춘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
고장난 삶이라도 괜찮다.
멈춰도 멈춘 게 아니니까.
잘하고 있는 걸까. 이게 맞는 걸까. 가족과 친구들은 잘한다 잘한다 하지만, 내가 정말 잘하고 있는 건지, 원래 가려던 방향이 이쪽이 맞는 건지 스스로 의심이 드는 때가 있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그렇다. 게으름 부리지 않았고, 남한테 나쁘게 하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일이나 관계 면에서 나는 여전히 목이 마르다. 채울 공간도 남았고, 채울 용의도 있으나 채워지지 않는 이 만족감이라는 놈을 평생 데리고 살 생각만 하면 아찔하다. 코로나 시국에 출판계도 얼어붙었다. 매일 새벽같이 책상 앞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지만, 이 글이 세상에 나갈 수 있을까. 예전처럼 반듯하게 책으로 만들어져 교보문고 평대 위에 올라갈 수 있을까. 하루에도 수십 번 하는 고민이다.
그럴 수 없을지도 모른다. 분명 사실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다른 길로 들어서야 맞지 않을까. 에이. 그건 뭐 어디 쉽나. 일이라는 게 다 어렵고 힘들지. 이런 사이클로 생각은 돌고 돈다. 그러다 어느 날, 스스로 고장난 시계라고 생각하게 됐을 것이다. 중심에 한 발이 묶인 채 남은 한 발로 하루에 두 번 제자리를 돌고 도는 시계. 부지런히 움직이지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 뿐이다. 남들은 대충해도 저렇게 잘 사는데, 나만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발이 묶여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떨쳐낼 수 없어서, 때론 그 자리에 멈춰서 고장난 시계 흉내를 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알게 된 것이다.
고장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는 사실을.
새해에는 이루고 싶은 일 다 이루시길 바란다.
올해도 역시 존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