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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시마 Dec 27. 2021

현실에 충실하면 뭐든지 즐겁다.

잠깐 하는 것과 오래 하는 것에 대한 차이는 종이 한 장

출근 당일, 별다른 생각 없이 새로운 일터인 숙박소로 향한다. 비수기에 접어들면서 객실에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리모델링을 하시는가 보다. 숙박소에 도착하자마자 주인장이 반갑게 Hello~! 를 외친다. 나도 반가워서 I'm fine thank you and you? 를 외친다. 아.. How are you?를 주인장이 안 했었구나라고 생각할 찰나, 잠시 좀 웃더니 이제부터 할 일을 천천히 얘기해 주면서 본인을 따라오라고 한다. 내부는 것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게 꽤 넓고 방도 좀 있었다. 빌리지의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보니 내외부의 차이는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지만 다시 새로웠다. 내부 어디의 벽과 천장에 붙어있는 페인트들을 벗겨내야 하는지 확인한 다음 필요한 공구들을 받았다. 작업 하기에 협소한 감이 없지 않아 좀 있었지만, 그래도 일을 마무리 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설명을 다 듣고 난 후에는 주인장이 작업하던 방에서부터 시작을 하였다. 상태를 보아하니 본인 스스로 하다가 힘들어서 알바 쓰는 확률 999%이다. 그때는 별생각 없었지만 이 글을 적으면서 다시금 생각해보니 그렇다.


작업을 시작한 지 4시간 흐른 것 같은 느낌에 잠깐 시간을 확인하였다. 4시간은 택도 없는 겨우 30분이 지나 있었다.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지만 체력이 받쳐줘서 그런지 못 버틸 정도는 아였다. 4시간 같은 30분을 확인한 후에 정신을 가다듬었다. 사실 휘슬러에 와서 생활하면서 복잡한 생각을 할 이유가 없었기에 지금 일에 focus도 금방 할 수 있었다. 계속하다가 보니 속도도 붙어서 어느새 벽 한 면의 페인트를 깔끔하게 볏겨 내었다. 소모된 시간은 3시간. 팔이 좀 결리긴 했지만 결과물에 만족한 상태라서 그런지 개의치 않았다. 벽의 페인팅을 벗겨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거 같은데 배운 것은 그냥 걸레 같은 천으로 비비는 거다. 지우게로 글씨를 지우면 지워지듯이 그냥 무조건 비비는 거다. 단점은 벽의 페인트는 연필로 쓴 글처럼 잘 지워지지 않아서 10배 이상의 힘이 소요된다는 거였다. 사실 중간에 비비다가 보면 맨탈이 한두 번 나갈 거 같은 위기도 찾아왔었다. 하루 8시간 벽을 천으로 비비고 있으면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아닐 수도 있고..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었다. 그래도 목표하는 바가 있었기에 그리고 정해진 범위와 일정이 있었기에 적당히 힘을 조절해 가면서 하나하나 정해진 범위를 클리어해 나갔다. 그리고 마음 한편으로는 이 순간이 영원한 것이 아닌 나중에 돌아보면 이 또한 하나의 추억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마음 편히 일에 전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오면 잠도 잘 왔다. 식사를 간단히 마치고 하루 할당량의 스트레칭과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한 다음 침대에 누우면 자동으로 눈이 감겼다. 에너지가 방전되어버린 듯한 느낌으로 꿀잠을 자버린다. 한국에 있던 시절 책상에 앉아서 하루 종일 모니터를 보고 있노라면 멍 때리는 때도 있고, 노곤 노곤하고, 괜히 점점 게을러짐을 많이 느꼈었다면, 지금 하는 이 일은 내가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하루는 여느 날과 동일하게 벽면을 열심히 문지르고 있었는데, 새로운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반가운 마음에 Hi를 날렸다. 상대방도 반가워하면서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뒤 계속 일을 해 나갔다. 다음날 기회가 되어서 그 친구랑 대화를 나눌 기회가 되어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그녀는 gap year 같은 개념으로다가 미국 텍사스주에서 왔으며, 얼마 전 휘슬러에 도착하여 이일을 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로도 가끔씩 기회가 되면 이런저런 일상 얘기들을 나누면서 조금씩 그렇게 친분을 쌓아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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