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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도리 Jan 26. 2018

27세 청년, 쇼핑센터 만들기 [4장]

어쩌다 이렇게..

나는 초등학교 때 처음 패밀리 마트라는 편의점에 갔던 때가 생각난다.

동네슈퍼와 비교해서, 값도 비싼데

여기서 왜 사지?

이 매점은

곧 망하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생각은 커다란 착각이었다.  

편의점 없는 삶은 생각할 수 없다.


편의점은 소매점의 기능을 넘어섰다

금융, 택배,  버스카드 충전, 식사, 커피, 여가 등


우리의 삶에 중요한 부분들을

발견하여 알차게 채워주고 있다.



아마 전국에 있는 전통시장 및 재래시장의 모습은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장도리의 독자들은 한 달에 몇 번이나 전통시장에 방문할까?


본질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우선 내 고향 강화군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했다.

강화군은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풍부한 역사자원이 있다.

단군신화

바보 온달 이야기

병자호란

병인양요

강화도 조약 등은 살면서 한 번씩은 들어본 이야기였을 것이다.


최초의 근대식 해군사관학교

그 외 최초의 해군사관학교나, 고인돌 등 재미있는 역사적 콘텐츠들이 많이 있다.


서울 및 수도권에서 1시간 정도면 도달할 수 있는 입지조건이 발달되어 있어 인천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손꼽히고 있는 강화도.

이곳 역시 유통혁신이라는 시대의 화살은 피해갈 수 없었다.


1997년 유통시장 개방은 대형마트의 등장을 유발하였고, 온라인 판매, 홈쇼핑의 광범위한 사용은 경제행위에 있어 장소적 의미가 변화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재래시장보다 마트에 가게 됐고, 마트보다 온라인으로 물건을 사기 시작했다.

또한 서울과 경기도로 대규모 인구이탈이 시작되며 노령화와 함께 인구가 감소되었다.


현재 강화에서 가장 큰 시장은 강화 풍물시장이지만, 예전에는 강화읍장이 중심이었다.

강화읍장의 위치는 현재의 강화중앙시장이였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상점 및 노점을 열고 주민들의 교류의 장이 되어, 강화읍의 경제 중심 역할을 하고 있던 중, 1980년에 지하1층, 지상 3층의 상가 건물 형태를 띤 상설시장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양품점, 식료품점, 미곡상 등 생활 관련 점포로 시작하였다.


1980년대까지 호황을 누리던 강화중앙시장은 1990년대 중반까지 시장 주변으로 종합버스터미널이 자리를 지켰으나, 1997년 말 지금의 남산리 인삼센터 근처로 이전하면서 조금씩 쇠퇴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2007년  중앙시장 근처의 노점상들의 정비를 통해 노점상이 강화 풍물시장의 형태로 개설되면서 중앙시장의 쇠퇴가 가속화되었다.


12만 명이 넘던 군민의 수는 어느새 6만 명 언저리로 곤두박질쳤다.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강화 중앙시장은 어쩌다 청년몰로 나왔을까?


강화 풍물시장 개설로 장사가 되지 않자

강화중앙시장 상인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다.


강화군청에 팔자!


상인들이 동의서를 모아 매입 청원을 했고, 강화군에서 받아들였다.


1층에 있던 몇 명 상인들의 반대로

1층의 매입은 불가했고

2층과 3층을 매입했다.



그래서 1층은 민간 소유

2층은 지자체 소유의

강화중앙시장이 되었다.


역사 및 인구분석뿐만 아니라

유동인구분석, 주차시설, 버스노선, 경쟁상가 분석 등을

진행해서 기초자료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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