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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도리 May 23. 2023

두려움 정복하기

두려움 너 누구니?

두려움은 자식들을 손잡고 다닌다.

첫째 아이는 걱정이고

둘째 아이는 불안 이고

셋째 아이는 공포이다.


인간을 비롯한 고등생물들의 특징 중에 하나는 '두려움'이다.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어두 컴컴한 저녁에 흉가나 폐가 같은 곳에 가면,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고, 고층 아파트의 옥상 위에서 1층의 바닥을 바라볼 때 등골이 오싹하며 죽음의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우리의 생존본능이 위험하다는 신호를 신체에 보내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이 위험 신호는 뇌에서 보내는데, 두뇌 안의 변연계에서 지시를 내린다.


가령, 뜨거운 냄비를 만졌을 때, 우리는 즉시 손을 뗀다.

 

빗길에 지나가는 차가 흙탕물을 튀기면 우리의 눈커플은 자동으로 안구를 보호하기 위해 눈을 감는다.  

우리의 본능은 생존을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반응한다.


그러나 만약 변연계가 다치거나 고장 난다면?


당연히 변연계가 고장 난 사람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편도체는 영어로 아미그달라(amygdala)라고 한다.


왜? 이름이 아미그달라 일까?


아몬드 같이 생겨서 그렇다.

실제로 아몬드랑 비슷하게 생긴 것 같다.


크기는 1센티 정도이며 외부자극은 이곳으로 수집된다. 아미그달라가 불쾌, 유쾌, 호불호, 공포, 분노 등으로 분류해 감정을 일으킨다.


유명한 실험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쥐의 편도체를 제거한 실험이다.

편도체가 제거된 쥐는 겁이 없어져  고양이에게 달려들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고양이에게 잡아 먹히면서도 공포나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두 번째는 편도체를 제거한 여섯 마리의 원숭이를 정글에 풀어놓고 관찰을 했다.

실험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마리 빼고 모두 잡아먹혔다고 한다.


왜? 겁이 없어진 원숭이는 자신보다 강한 동물이나, 뱀과 같은 맹독을 지닌 동물에게도 거리낌 없이 다가가거나 장난을 쳤기 때문이다.


편도체가 고장 난 인간은 마치 사이코패스처럼 잔인한 영화를 봐도 이해 못 하겠다는 반응이고, 주사바늘에 찔려도, 마취 없이 치아를 뽑아도 통증을 못 느꼈다.




그렇다면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지만, 우리가 두려움을 정복하기 위해서, 변연계 편도체 제거 수술을 받을 수는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일반적인 삶 속에서는 신체적 죽음을 느낄 만한 환경이 많지 않다.


기껏해야 차에 치일 정도?


직접적인 본능, 살해나 죽음에 의한 공포보다는

불안, 걱정, 불확실성, 스트레스에서 등에서 오는 심리적/ 정신적 두려움이 더욱 크다.


우리는 환경적 위협 보다는

정신적 위협이 많은 사회에서 살고있다.


2021년 통계청에서 발표한 사망원인 통계를 보면 이를 더욱 명확히 알 수 있다.


그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다.




너무 슬픈 통계가 아닐 수 없다.


특히, 10세부터 39세 까지는 고의적 자해.

즉, 자살에 의해서 압도적인 사망률을 보였다.


나도 극단적인 선택.


자살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던 때가 딱 3번 있었다.

 

그중 한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4년 전 서울 강서구에서 나는 <집지니>라는 시공업체를 운영했다.


집지니는 '마법처럼 집을 바꿔주는, 요술램프 지니'라는 의미였다.


사업분야는 인테리어/건축 사업을 이었고, 온라인 홍보를 잘 한 덕분에 공사 계약이 물 밀듯 들어왔다.


돈을 벌 욕심에, 작은 공사건 큰 공사건 되는대로 계약을 계속 체결했다.

 

인원이 3명 남짓한 회사에서, 현장이 4-5개씩 돌아가니 새벽부터 신나서 일을 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과유불급.


하나둘씩 현장에서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몸은 하나고, 관리 현장이 늘어나다 보니, 현장관리와 퀄리티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잠깐 다른 곳을 보면, 바로 문제가 터졌다.


도배사가 남에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기도 하고, 화물연대 파업으로 물류대란이 일어나서 물건이 안 와 인부들은 멍하니 담배 피우다 집에 가기도 했다. 어느 작업자는 작업현장이 마음에 안 든다고 가버리고, 실내에서 담배를 펴 벽지에 냄새가 찌드는 등 등 하루에도 수십 건씩 크고 작은 문제들이 일어났다.


문제가 터지면, 직업지, 고객, 거래처 등에서 전화가 와서 악을 쓰고 욕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 중 압권은 염창동에 A 아파트에서 철거를 하다 배관을 건드려 물이 터지고,

광명에 B 현장에서는 공사 인부가 잠적했으며,

용인에 있는 C 상가에서는  문을 거꾸로 달아놓기도 하며강남에 있는 D현장에서는 화장실이 멀다며, 페인트통에 인부가 오줌을 싸 놓고 가는 일이 같은 시간대에 동시 다발적으로 터졌다.


공사 잔금을 주지않고 안하무인인 건축주들도 있었고, 일을 부풀려서 임금을 받아가는 인부도 있었으며, 직원의 실수로 견적 가격을 잘못 내는 일들도 많았다. 문제의 연속을 넘어, 문제가 폭포수 처럼 쏟아졌다.


하루에 기본 100통 이상의 전화를 받았고, 대부분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타인의 부정적인 감정의 파도는 언제나 나를 덮쳤다.


전화의 내용들은 주로 "대표님 문제가 터졌습니다. 어떻게든 빨리 해결해 주세요."라는 식의 내용들이었다.

  


이런 일상이 매일, 매시간, 매순간 발생하다 보니

나는 운전하면서 가는 도중 내가 어디를 가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기억력이 나빠졌다.


머리가 터질 듯하니, 집중력이 낮아졌고, 귓속 달팽이관에서는 삐- 하는 고주파 이명소리가 하루종일 들렸다.


길을 걷다. 멍하니 한 자리에 서있을 태도 있었고,

대장이 꼬인건지, 항상 설사를 했다.


새벽에 울리는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했고, 잠을 뒤척이다. 새벽 5시에 뜬 눈으로 다시 일어나 현장으로 움직여 문제들을 해결해야 했다.


몸과 마음은 항상 곤비했다.


그 당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일은,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는 것이었다. 띠링하고 울리는 벨소리는 그 무엇보다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어느 날, 공황장애 증상도 동시에 일어났다.


주변 공간이 찌그러지는 느낌이 들며, 주변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자존심이 강해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나의 내면에는 항상 헐크처럼 화가 나있었고, 짜증이 파리때 처럼 들끓었다. 이런 상태는 곧 무기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한번 자리를 잡으니,

머릿속에 똬리를 튼 뱀처럼 도저히 머릿속을 떠나지를 않았다.


이렇게 극도의 스트레스는 죽음의 문턱까지 나를 떠밀었다.


그때 나는 문득, 두려움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깨달았다.


"이렇게 살다 간 정말 죽겠구나.."

"아.. 두려움은 알지 못하는 것, 모른다는 것. '무지'로부터 오는구나."


매일 아침 눈을 뜨며, 누군가로부터 어떤 전화를 받을지 모르기 때문에 두려웠다.

어떤 일이 터질지 모르기 때문에 두려웠다. 내가 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겼다.

어떤 암초가 나를 가라 앉힐지 몰랐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주변 사람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상사의 뒷모습에서 내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두렵고,

연인의 만남에서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두렵다.

내일 주식장이 어떻게 폭락할지 모르기에 두렵고,

10년 뒤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모르기에 두렵다. 도저히 내 삶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두렵다.


모두가 두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는듯 보였다.




어떻게 두려움을 극복했을까?


두려움이 어디서 오는지 알고난 후, 나는 자신의 미래가 보였다.


이렇게 반복해서 삶을 살다 간 몸이 죽던, 영혼이 죽던, 정신이 죽던 어떠한 형태로든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을 노려보며 혼잣말로 읊조렸다.


"그만, 그만해야겠다. 내가 졌다."


어금니 꽉 깨물고, 하던 현장들을 끝까지 마무리 지었고, 모든 직원을 내보내고 2021년 건축 사업을 그만두었다.


이제 두려움이 무엇인지, 알았으니 숨통이 틔였다.


두려움은 무지이니, 무지함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긴 숙고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나는 '앎' 그리고 '지혜' 그리고 '통제력'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떻게 될지 안다면?

지혜로운 판단을 내릴 수 있다면?

나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면?


우리는 분명,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첫 번째, 앎(know)


중학교시절 장난꾸러기 장도리는 매맞는게 일상이었다. ? 청개구리 심보에 항상 말썽을 있으켰다.


그때는 체벌이 공공연했다. 잘못을 하면 매를 맞았다.


하도 매를 맞다보니, 노하우가 생겼다, 선생님이 막대기로 엉덩이를 체벌할때 나는 막대기가 엉덩이에 닿기 바로 직전! 오리처럼 엉덩이를 쭉 뒤로 쭉~ 내밀어, 엉덩이와 막대기 사이의 거리를 좁혀  막대기의 가속도가 붙는 것을 최소화 해서, 고통을 최소화했다.

포즈는 우스꽝스러웠지만 효과는 만점이었다.


내가 마이클 타이손인데, 링 위에서 상대편의 펀치가 내 복부를 강타할 것이 알게 된다면?

나는 분명 하복부에 힘을 있는 힘을 줄 것이다.


펀치를 맞을때, 분명 고통스럽겠지만, 복부에 힘을 준 덕분에 치명타를 입지 않을 것이다.

같은 펀치도 모르고 맞으면 정말 아프다.


나는 <집지니> 사업을 할 때, 그런 상황이 될 줄 몰랐기에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 상황을 맞이했던 것이다.


내가 창업 전 이미 그 길을 가본 아는 사람, 멘토, 관련분야 사람 등을

만나서 진지하게 사전 검토를 했더라면, 내가 저상태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식이 하락장이 될 것이라고 알고 있다면? 실제로 하락을 해도 두렵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왜? 각종 Index들과 시황분석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하락장이 고통스럽긴 하겠지만, 분명 두렵지는 않을 것이다.  


마음이 고통스럽다면? 마음 공부를 해야 한다.

그 마음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현재 나 자신은 무엇으로부터 고통받고 있는지, 알아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알아야 한다. 심리를 알아야 하고, 역사를 알아야 하고, 정세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지식을 쌓아야만 한다. 즉, 공부를 해야 한다.


공부 깊게 하면 인지하게 되고 결국, 알게 된다.

옛 서양 사람들은 이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영어 단어로 '안다'는 know이다.

ledger은 '장부, 기록하다'는 의미이다.


그 두 단어를 합치면? 지식(knowledge)이라는 단어가 된다.


아주 절묘한 단어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지식을 가진 인간은 알게 되고, 인지하게 된다.


그 단어는 알게하다/인지하다/인정하다는 의미의 'acknowlege'라는 단어가 완성된다.


무지함을 알고, 지식을 쌓아 공부를 하면 우리는 결국 알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지혜

사람들은 지혜라는 말을 남발하지만, 진정한 지혜의 의미를 모르고 사용하는것 같다.


지혜로움은 앎(Know)의 다음 단계다.


앞서 말한 지식만 쌓아서는 절대로 지혜로워질 수가 없다. '지혜는 반드시 경험이 동반'되어야 한다.


지식만 많은 사람이 세상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었다면, 이 세상 문제들은 모두 상아탑의 교수들이 해결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지혜가 필요한 시기는 언제일까?


하루에도 우리는 수백 가지 판단을 하며 살아간다.


그중 많은 부분은 우리의 신피질이 알아서 정보를 취합해서 결론을 지어주지만


즉각적으로 판단할 수 없거나, 자고 일어나도 생각나는 심각하거나, 어려운 문제, 답이 없는 문제 등

판단의 갈림길에 섰을 때 우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혜는 아는 것과 경험한 게 합쳐 생겨난다.


경험은 직접적인 경험/간접적인 경험 등 많은 도전과 역경을 통해서 생겨난다.


가만히 있으면 경험을 쌓을 수 없다.

경험은, 어떠한 목표를 위해 행동하고, 실천했을 때 쌓인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경험도 쌓을 수 없다.


만약 시간도 없고, 경험이 없는 상태라면?


먼저, 나보다 앞서 그 길을 가본 지혜로운 자를 찾아다니는 게  가장 현명하다.


자기가 아는 사람일 수도 있고, 그게 유튜브 콘텐츠 일 수도 있고, 책에서  찾을 수도 있다.  


어려운 문제 일 수록 최대한 많이 지혜로운 자들에게 조언을 구해야 한다.



마지막, 통제력


통제력은 가장 중요하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핵심이다.

 

많은 문제들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제할 수 없고, 시장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

내 친구의 마음을 통제할 수 도 없고, 심지어 내 자식도 통제할 수 없다.


오로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


바로 '자기 자신'


통제력을 잃어버리는 순간? 인생이 도둑맞기 시작한다. 즉, 인생이 털린다.


돼지들은, 음식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다.

식욕을 통제하지 못하니 몸이 망가진다.

몸이 망가지니, 정신과 영혼이 함께 망가지기 시작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돈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다.

대출이자, 빛, 교육비, 월세, 교통비, 카드값, 보험료, 식비, 술값 등을 갚느라 인생이 털려버린다.


허망함과 허무함에 가득 찬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통제하는 것을 상실했다.  내 꿈을 통제 못하니, 공허하고 남에 꿈에 질질 끌려다니고 이용당한다.  


전쟁터에서 총알과 포탄이 마구 떨어질 때, 통제력을 잃어버리고 실성하면 1순위로 죽음을 맞이 할 뿐이다.




당신은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고 있는가?

내일 당장 어떤 문제가 일어날지 알고 있는가?


난 모른다.


삶을 사는 동안 각종 문제들은 도로 위 고라니처럼

각종 문제들은 불쑥불쑥 튀어나와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두려운 괴물이 나오더라도


나의 무지함을 인식하고, 공부를 하여 인지하고

지혜를 구하여 현명한 판단을 하고

그 어떤 환경 속에서도 나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잃지 않는다면, 두려움은 내 손아귀 안에 붙잡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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