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하 May 12. 2023

5년차 겁쟁이

5년차가 되었다.

아직도 누구에게 솔직하고 속 시원하게 말하지 못했다.

아마도 겁쟁이라 그랬을 거야.

뭐 자랑도 아닌데.

그런데 누군가에게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라고 하면 정말 잘못이 아닌가라고 누군가가 물어올지도 몰라서.




브런치에 몇 년 동안 글을 쓰며 용기 있는 자들의 글을 통해 그들의 세상을 훔쳐보았다.

그들은 심적으로 때로는 육체적으로 힘든 나날을 보냈지만.

그래도 그들은 또는 그녀들은 용감했다.

그리고 부러웠다. 그들이 또는 그녀들이,

나는 5년차가 되었어도 아직 겁쟁이여서 말도 못 하고 속에 담아두었는데.




5년차가 되었고,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려 웃고, 즐겁고, 그리고 외롭지 않은 척해왔다.

척, 척, 척


외롭다고,

아무렇게나 행실을 하면 안 돼,

그리고 아무한테나 말하고 다니면 너의 약점이 될 뿐이야. 그리고 언젠가는 그들에게 상처를 받을 거야라고.

그래서

척, 척, 척

만 했다.


나는 직업적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한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는 몇몇 사람들이 나에게는 뭔가 모를 강단이 있어 보인다고 한다.

강의할 땐 뭔가 모르지만 청자들의 기를 쭉빨아먹듯하다면서.


청자의 기를 빨아먹는 나.

아마도 다른 사람에게 나만의 심연을 들킬까 봐.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지 못하게 기를 빨아버리는 것 같이 일을 하는 것은 아닐까.

잘 모르겠다.


일선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상담을 했었던 그때도,

그리고 지금 강단에 서있는 지금도

나는. 그냥 겁쟁이.




5년차가 되었지만.

누군가는 등산 모임을, 와인 모임을, 마라톤 모임을, 수영 동아리를, 어떠한 모임들을,


나는 용기가 없어 어떤 모임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아웃사이더.

그런 아웃사이더인 나는 세상 살아야 할 어떤 동기라도 찾기 위해서 그냥 책을 읽었다.

그러면서 5년차 시간을 흘려보낸 것은 아닐까.


아마도 내 인생의 지금은 불질과 담금질을 반복하는 시간으로 5년차가 된 것은 아닐까.


마음속 어느 구석에서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봐야 예전과 별 다를 게 있겠어라는 스스로 의문과 부정의 가스라이팅,

그렇지만 스스로 강하게 움츠려도 세상밖으로 호기심의 눈길은 계속 내비치면서도,




사람의 인연은 영원하지 않은 듯,

누구의 잘못도, 누구의 배신도, 누구의 버림도, 마치 인연이 거기까지인 것처럼 어느 순간 어느 장소에서.


부부 공동체 20여 년의 세월,

처음 5년은 사랑의 열병처럼 뜨거웠고,

다음 5년은 행복이라고 포장된 상자 안에 밑 빠진 독이 있는 줄도 모른 채 한없이 물을 담던 데릴남편으로,

꺼져가는 사랑의 아궁이 안의 불씨를 살리기 위한 힘든 풍로질, 반면에 다른 주인공은 바람이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하게 바람구멍을 막아버린, 마침내 꺼져버린 불씨의 답답한 훈증의 5년.


최후의 5년은 나로 인해 세상에 힘겹게 나온 아주작고 예쁜 두 명의 계열사를 위해 심어놓았던, 그리고 수확철이었던, 괜찮은 삶으로 전환할 수 있게 해 줄 시드머니 작물 밭을 나도 모르게 부부 공동체 동업자의 불장난으로 한순간에 불타 사라져 버린 허무한 낭만, 허탈한 세상에서 버림의 초이스 티켓을 받게 된 그 시간.


짧다면 짧은 그러나 무지 길게 느껴지는 3개월이라는 시간 속에서 20년 전에 뜨거운 사랑으로 녹여서 떼어낸 그때 그 점을 다시 찍었더니 그냥 남이 돼버렸다.




남이라는 글자로 20년 동안 공동체로서 살아온 부부라는 거대한 명분의 본점은 붕괴되었다.

여리고 예쁜 두 명의 계열사 남아 있어서, 최선을 다해 계열사를 돌봤다.


다행히 큰 방황 없이 스스로 운영가능한 독립체가 될 능력을 서서히 키우는 모습에 뿌듯하다.

물론 아직까지 내가 AS는 해야 할 테지만, AS 만료기간도 그리 오래지 않아 도래할 것 같다.




5년차가 된 지금도.

나는 겁쟁이 마냥, 가슴속에 품고만 있다.

나 갔다 왔다,  갔다 왔다고. 그래서 자유롭다고.

누구에게 큰소리로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고, 가슴속에 말을 삭힌다.  


누군가가 본점 동업자 소식을 물으면 그냥 웃음으로 대꾸한다. 그러나 가슴 한쪽은 철렁한다.


아직도 나는 겁쟁이인가 보다.


그러나 언제쯤인가는 세상밖으로 쳐다만 보는 게 아니라

쳐다보는 그곳으로 내 마음도 그리고 내 몸도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을 테니까.  






* 사진은 인터넷에서 가져왔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Q-net에서 1차 팡파레가 문자 배송 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