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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하 Nov 19. 2020

특별한 존재의 아름다운 저항

나무늘보

샐러리맨의 삶 속에서 퇴근 후 술 한잔은 회사에서 지친 마음과 몸을 다시 추스르게 하는 중요한 활력소와 같은 인생의 신성한 의식이다. 물론 길거리에 쓰러져 잘 때도 있지만, 특히 술자리에서 빠지지 않는 최고의 술안주는 직장 상사나 팀장을 잘근잘근 씹어대면서 차갑게 시야시 되어 있는 소주 한잔을 목구멍에 퍼부어주면.


"캬..."    


나름 스트레스를 몸 밖으로 배출하는 최고의 꿀꺽 한 모금이다.

   

경찰관도 퇴근하면 샐러리맨과 같이 직장 동료들과 함께 술을 마신다. 경찰이라는 직업도 나름 스트레스가 많다. 연쇄 절도범이 있는데 못 잡는다고 세금 도둑놈들이라고 하면서 개잡들이를 하는 팀장부터, 성과로 매일 줄 세우면서 망나니 칼춤 추는 과장까지, 나름 만만치 않은 직업이다. 그래서 퇴근 후 여유로운 소주 한잔은 나름 스트레스를 풀 수 있게 해주는 마법과 같은 시간인 것이다.  

  

‘경찰관은 술을 마시면 무슨 말들을 주로 할까?’     


일반인들과 똑같은 세상살이의 이런저런 이야기도, 재테크 이야기도, 이성 이야기도, 자식 이야기도, 물론 다른 사람들이 하는 보통인의 보통의 삶 속의 이야기도 다 한다. 그런데 직업 특수성에 맞는 특별한 이야기도 한다.

   

가끔은 자신이 처리한 사건 중에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그런 이야기 빼고 재미있거나 특이한 사건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며 함께 공감하고 웃기도 한다. 웃으면서 술을 마셔야 건강에도 좋고, 칼로리 0%일 테니까. 그래서 마치 경쟁하듯이 자신이 처리한 사건 중에 최고의 에피소드가 담겨있는 썰 주머니를 술자리에서 풀어놓기도 한다.

    

나도 많은 사건들을 처리하면서, 그중에 특이한 사건, 특이한 압수물, 특이한 상황 등을 많이 보았지만. 함께 술자리 하던 형님의 경찰생활에서 처음으로 관통상을 당했던 사건, 바로 관통상을 입혔던 특별한 존재의 아름다운 저항 이야기를 듣고 너무 가슴 아프고, 너무 애틋하고, 지금도 살아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요즘 NGO단체들이 너무 많다. 그중에 동물보호 NGO단체도 있다. 나도 처리한 사건 중에 개 사육 관련해서 동물단체로부터 동물학대 관련 고발장을 접수해서 처리해본 적도 있다. 가끔은 사람이나 잘 챙기지라는 생각도 하지만 막상 현장에 나가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은 그런 처참한 모습들도 본다. 개와 소통은 할 수 없지만 죽지 못해 사는 것 같은, 삶을 포기한 눈빛의 강아지와 마주치면 사람이 정말 무섭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형님의 이야기를 해보면, 과거 사이버팀에서 근무를 할 때라고 한다. 동물보호단체로부터 인터넷을 통해 국내에 없는 특별한 존재를 100-150만 원으로 판매하는 사람이 있다는 고발장을 접수해서 수사를 진행하였다고 한다.    

검역법 등 여러 법을 위반한 사안으로 수사 진행하게 된 선배,     


‘검역법’이란, 감염병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나라로 들어오거나 외국으로 나가는 운송수단 및 사람이나 화물을 검역하는 것이다.    


외국에서 반려동물로 키우기 위해 몰래 들어오는 앵무새, 아프리카에서 사는 뱀인 ‘볼파이톤’이나 사막에서 사는 사막여우 등, 여타 국내에서 살지 않는 동물에 대해서는 모두 검역을 거쳐야 한다. 우리도 모르는 감염병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나라 생태계는 우리가 지켜야 하니까.    


수사를 진행하던 형님은 반지하 방에서 살고 있는 용의자의 집을 기습하였다고 한다. 바로 특별한 존재가 거주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특별한 존재가 무엇인지는 알지만 어떻게 포획해야 하는지,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몰랐던 경찰관들은 과천에 있는 동물원 관계자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단칼에 거절당했다고 한다. 아주 단칼에.. 그래서 오로지 경찰관들만 현장에 가서 특별한 존재를 만나게 되었단다.    


반지하의 집안에 있는 철장 안에 특별한 존재 두 녀석이 불법 감금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현장에서 압수 수색하는 경찰관들은 특별한 존재를 발견하고 이를 구해야만 했다.    


이때 특별한 존재에 대해 상식적으로만 느리다는 것만 알뿐 다른 것은 몰랐던 선배는, 철장을 양손으로 꽉 잡고 살기 위해 매달려 있는 특별한 존재를 애견 이동장으로 옮기기 위해 느리게 느리게 다가갔다고 한다.    


철장을 꽉 붙들고 있는 특별한 존재의 양손을 하나씩 철장에서 떼어내기 위해 나뭇가지를 이용해서 구부러져 있는 손톱과 철장 사이로 느리게 밀어 넣어 나뭇가지를 잡게 한 후, 철장을 잡고 있는 남은 손을 떼어내기 위해 구부러져 있는 손톱을 손으로 하나씩 펴고 있을 때, 엄청난 빠른 속도로 전광석화같이 우측 엄지손가락을 물어 관통상을 입었다고 한다.   

 

느리다고만 알려진 이 특별한 존재는 자신에게 불쑥 다가오는 사람이 도움을 주는 사람보다는 해를 주는 사람으로 생각했을 텐데, 얼마나 무섭고 떨렸으면, 살기 위해서, 탈출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저항을 한 것이다.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형님은 피할 수가 없이 관통상을 입었다고 한다.

   

당시 현장에서 특별한 존재를 구금하고 있었던 용의자는 외항선을 타는 사람들로부터 구입을 했다고 한다. 그냥 돈벌이를 하기 위해 그랬단다. 소중한 생명체를 그냥 돈벌이의 물건 다루듯이 그랬단다.     


반지하 단칸방에서 구출한 특별한 존재를 과천에 있는 동물원에 보냈으나 지금까지 잘 살고 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동물원이니까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아있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한다.    


특별한 존재의 이빨로 인해 관통상을 입은 엄지손가락을 붕대로 칭칭 감고 병원으로 갔을 때 의사가 관통상의 이유를 물어 사실대로 말을 했더니 오히려 의사 선생님에게 혼이 났다고 한다. 거짓말하냐고 하면서, 우리나라에 없는 동물인데 하면서,  

  

그래서 특별한 존재를 소개해본다면,     


‘남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에 있는 숲에서 살고 원숭이와 비슷한 동물로, 나뭇잎이나 열매 등을 먹고사는 잡식성으로 척추동물로 분류가 된다. 크기는 약 40-75cm 정도로 머리는 둥글고, 목은 짧은 것이 특징이다. 앞다리가 뒷다리보다 길고 발가락에는 구부러진 튼튼한 발톱이 있다. 특히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살고, 움직임이 너무 느린 특징으로 인해 이름이 정해진 그런 특별한 존재다.’  

  

또 이 특별한 존재는 영화배우다. 바로 주토피아라는 애니메이션에 출현했으며 접수창구에서 근무하는 역할이고, 접수 도장을 찍을 때도, 사진을 찍을 때도 민원인을 답답하게 하는 ‘나무늘보’가 바로 오늘의 특별한 존재다.   


나무늘보가 이유도 모른 채로 잘 살던 밀림에서 납치돼서 대한민국까지 오게 된 것이다. 사람의 욕심으로, 특이한 애완동물을 키우겠다는 욕심으로, 돈을 벌겠다는 욕심으로, 그렇게 소중한 생명을, 자유롭게 살던 나무늘보를,


어느 순간 눈을 떴을 때 대한민국 어느 반지하 철장 안이었을 것이다. 사람과 소통이 된다면 뭐라고 했을까.  

  

엄청 무섭고, 엄청 두렵고, 엄청 화가 났을 것이다.  

   

정말 사람의 욕심은 무섭고 무섭다.   

 

사람들이여, 동물들도 우리와 같이 지구에서 정당하게 살 권리를 갖고 있고,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걸, 인정하면서 함께 살고, 함께 사랑해주면서 사는 그런 공동의 지구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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