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하 Nov 23. 2020

두 소녀의 꿈, 제발 그 길로 가지 않았길.

요즘 코로나로 인해 20대 젊은 친구들의 실업률이 상당히 높다고 한다. 내가 20대일 때도 이랬든 저랬든 원하는 직장에 들어갈 수 없는 자신의 능력 때문에 아파하면서 고민하고, 때로는 남들이 봤을 때 멋져 보이는 직업군에 몸담고 싶기도 하고, 좋은 차에 멋진 옷을 입고 폼 잡으면서 직장생활을 하고 싶다는 꿈을 꾼다. 하지만 현실 속의 나는 몸이 힘든 것은 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몸이 힘든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돈을 벌어야 하니까.

    

건설회사에서 10여 년 생활하다가 IMF로 인한 회사 부도로 정리해고를 당한 후,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선택한 길이 경찰공무원의 길이었다. 공부할 때는 정말 지옥 같았다. 책에서 손을 놓은 지 십수 년이 된 상태에서 매일 책과 씨름하고, 잘 외워지지도 않는 영어단어를 외우느라 머리가 어지럽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형법과 형사소송법을 공부하니, 무슨 놈의 한국말은 이렇게 어려워라고 수없이 생각하면서 1년 넘는 지옥 같은 고시생으로 생활했다.     


힘든 고시생의 결과는 달콤한 합격이었고 지금은 20년째 경찰로서 생활하고 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그때 당시 건설회사의 이직보다는 경찰공무원의 길로 선택해서 기적 같은 모험을 했던 나의 선택과 판단은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운명이 한에 바뀐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20대에는 정말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멋진 이성과 연애하고 싶은 것, 정말 많았다. 가고 싶은 회사는 어디든 합격할 것 같은 환상 속에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이 뿜 뿜 넘치는 막무가내 사회 초년생인 것이다.    


아마 내가 부천 북부역 앞에 있는 중앙지구대에서 근무할 때 만났던 “사회야 나와 한번 싸우자”라며 인생의 도전을 했던 20대 소녀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부천역 일대의 야간은, 반짝이는 네온사인 아래 술 취한 사람들의 흔들림, 흔들리며 걷는 술 취한 사람을 향한 유혹의 손길, 화가 가득한 사람들의 살벌한 눈빛, 이러한 인간군상이 가득한 곳이다.     


물론 부천에도 오정동, 약대동, 고강동, 원미동, 춘의동, 대장동, 송내동 등에 공장 산업단지가 있다. 이곳에 취직을 하기 위해 많은 20대 친구들이 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몸으로 하는 일이고 때로는 기름 냄새도 맡아야 하고, 손에는 항상 검정 때가 묻어야 하니 오래 버티는 친구들은 없다. 그래서 외국인 근로자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물론 누구나 사무실에서 깔끔한 옷을 입고 자기만의 전용 경비 전화기를 두고 자기 책상에서 근무하고 싶지, 손으로 기름을 만지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노래방 도우미 고용신고입니다. 빨리 출동해보세요”    


라는 112 신고를 접수하고, 사건 장소인 노래방으로 간다.     

노래방에서는 노래만 불러야지 술을 먹거나 여성 접객원으로 불리는, 즉 도우미를 고용하면 안 된다. 그래서 신고가 있으면 경찰은 가게 된다.

   

지하에 있는 노래방, 이곳에서 20대 초반의 소녀 두 명을 만나게 되었다. 카운터에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는 자기가 전화해서 불렀다고 말을 한다.

    

노래방 업주나 직원이 도우미를 부르면 처벌된다. 음악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처벌된다. 당시에도 처벌 규정이 있었으니 당연히 처벌된다. 그런데 노래방 업주 측에서 보면, 도우미 고용으로 인해 형사처벌은 그렇다 치고 행정벌로 영업정지를 맞게 되면 경제적 손실이 크기 때문에 비상이 걸리는 것이다.     


노래방에서 만난 20대 초반의 소녀 두 명, 그리고 노래방인지 유흥주점인지에 대해 노래방 직원은 업주에게 전화를 하고 난리다.  

  

20대 초반의 소녀 두 명을 지구대로 데리고 와서 자인서를 작성하게 하면서 물어본다.    


“집이 어디야”    


“강원도요”    


“부천에 친척이 있는 거니”    


“고시원에 있어요”    


20대 초반의 소녀 두 명은 우연히 강원도가 고향이고, 같은 고시원에서 머물면서 알게 되었단다.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부천으로 무작정 상경해서 직장을 구해보려고, 그런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고시원 방세 낼 날은 다가오고, 용돈은 떨어지고, 이런 상황에서 두 소녀는 돈을 벌기 위한 선택을 해야 했다.

    

A4 용지보다 두꺼운 종이를 구해 명함 크기로 자른 다음, 이름은 가명으로, 휴대폰 번호와 함께 직접 명함 크기의 종이에 기재해서 며칠 동안 노래방이나 단란주점에 찾아가 연락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리고 연락이 온 곳으로 갔고 이곳에서 경찰관인 나를 만나게 된 것이다.  

  

20대 초반의 소녀 두 명이 간 곳은 노래방이 아닌 유흥주점이었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단속은 되지 않았다. 당시 노래방이 불법적인 도우미를 고용해서 장사를 하는 덕에 정작 룸살롱 등 유흥주점은 장사가 안되니, 노래방을 노래빵으로 하는 등 헷갈리게 간판을 다는 유흥주점이 많았다.  

   

20대 초반의 두 소녀를 돌려보내야 하는데, 취업문제로 20대 때 심하게 고민을 많이 했던 나에게 두 소녀는 그냥 넘길 문제는 아니었다.    


“너희 둘은, 아직 나이도 어리고, 꿈도 많고, 할 일도 많은데,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이길로 가는 것은 안돼, 내일 아침에 이곳으로 올래”  

  

아침에 지구대로 오기로 약속을 한 두 소녀, 나도 돈은 없지만 저녁이라도 사 먹으라고 5만 원을 쥐어주고 보냈다.     


다음날 아침, 두 소녀는 오지 않았다. 왔다면 부천 공장단지에 가서 경찰 근무를 하며 알았던 회사 대표나 인사담당에게 소개를 해주려고 했는데, 오지 않았다.    


20대 초반의 소녀와 만난 후,


수년이 지나 우연히 서울에서 꽤나 알려진 일명 ‘텐프로’라 불리는 고급 룸살롱에서 십수 년 넘게 근무를 한 마담을 조사한 적이 있다.    


얼굴도 정말 예쁘고, 옷도 화사하고, 나이는 40대 중반으로 나와 동갑이었지만 어느 누가 봐도 연예인 풍이 나는 그런 여자였다. 그런데 말을 하다 보면 몸에 각인돼버린 니코틴 냄새와 술로 인해 검게 변색해버린 피부가 보였다. 얼굴은 화장으로 하얀데, 화장을 하지 않은 부분은 검게 그을린 피부처럼 보였다.     


조사받으면서 자신의 과거와 처지를 이야기하며 20대 때 술집이 아닌 다른 길로 갔다면 이렇게 살지 않았을 것이라며 울던 ‘텐프로’ 마담.    

  

인생에 있어 20대가 중요한 것은, 어느 길로 갈지 선택할 수 있는 나이기도 하지만 선택된 길로 한번 가면 좀처럼 바꾸는 게 힘들 수도 있는 순진한 나이기 때문이다. 지금 하는 일이 돈을 벌기 쉬워, 나에게 맞는 것 같아, 의리상 못 나와 등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그냥 그렇게 허무하게 가버리는 20대이기도 하다.  

  

20대 때 남들과 비교도 많이 하면서 좌절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지금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미래의 나를 위해 힘이 들어도 참고 올바른 길로 가려고 노력하면 어느 순간 그때가 옳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것이다.      


나와 만났던 20대 초반의 두 소녀가 제발 그 길로 가지 않았길, 원하는 직장을 얻고 좋은 남자를 만나 가정을 꾸미고 아이도 낳아서 행복하게, 그리고 그때 어두웠던 과거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행복하게 지내길 간절히 바래볼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이 왔어요'라고 불리는 택배, 그 상자 속에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