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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하 Mar 16. 2021

피눈물 흘리는 그녀, 앗따! 깜짝이야

내가 경기도에 있는 모 경찰서의 경제 수사팀에서 근무할 때인 것 같다. 30대 후반의 그녀, 누가 봐도 계란형 얼굴에 쌍꺼풀이 진하고 콧대가 높은 아름다운 외모에, 딱 봐도 알 수 있는 명품 브랜드 옷을 몸에 걸치고 있는, 딱 봐도 연예인 풍의 향기가 나는 여성이었다.


아마도 그때가 2015년 간통죄 위헌 판결이 있은 후 몇 달 정도 지난 시점이었던 것 같다.


"여기로 앉으시면 됩니다."라고 말하고 손짓으로 내 책상 마주편에 있는 딱딱한 철제의자에 앉기를 권했다.

"네"라는 짧은 대답과 함께 철제의자에 앉는 그녀.


딱딱하고 삭막한 사무실 공기에 왠지 향긋하고 봄내음 같은 향기가 콧속으로 들어오는 듯 기분이었다.




경찰이라는 직업은 많은 사람을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그런 매력적인 직업이다. 가끔은 험악한 사람도 만나긴 하지만 반대인 경우의 사람도 만나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은 경찰은 오로지 범죄자나 피해자만 만나는 것으로 생각은 하지만 그렇지 않은 정말 법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사람도 가끔 만나기도 한다. 아주 가끔....... 그게 아쉽기도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1억 원이라는 돈은 어마어마하게 컸다. 대박의 꿈을 이루려면 지금도 가끔 케이블 tv에서 재방송을 하는 "응답하라 1988"에서의 정봉이 집처럼 주택복권 1등이 되면 정말 대박이 나는 것이다.


그때 당시만 해도 1억 원이면 집을 사도 돈이 남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물론 서울 강남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1억 원이라고 하면 껌값이라고 우습게 생각하는 경향이 다반사이다. 그래서 10억 원 정도는 되어야 라고 말을 많이 한다. 물론 일반적인 가정에서 10억 원을 모으기는 정말 어렵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로또 복권 1등이 되면 10억 원 정도 받는데, 그래도 회사는 그만두지 못하겠다고 말을 하는 경우도 많다. "별로 쓸 것도 없어"라고 말을 하면서 말이다.


요즘 부동산 가격이 대단해서 10억 원으로 서울 웬만한 지역에는 입성하기 어렵다. 지방이야 가능하겠지만. 그렇지만 지방에 있는 괜찮은 지역 아파트 한 채라도 사려면 부족할 수도 있는 상황이고. 아니면 집을 사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우리나라 부동산은 정상은 아니다. 우리 때야 은행에 계시는 양아버지에게 돈을 빌려다 집을 사면 되지만, 앞으로의 우리의 자식이 집 사기는 정말 어려운 세상이 되었으니 씁쓸한 기분이 든다.




그런데 내 앞에 앉아 조사받기 위해 기다리는 그녀는 5억 원 정도의 돈거래로 인해 사기로 고소를 당해 내 앞에 앉아있다. 물론 조사를 해봐야 사기꾼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지만 말이다.


"지인으로부터 여러 차례 걸쳐서 돈을 송금받으신 건 사실이죠"

"네, 그런데 저는 그때 당시 의류 사업을 했어요. 원단을 일본에서 수입해서 만드는..."


그녀는 일본에서 원단을 수입해서 나름대로 디자이너로서 자기만의 특별한 디자인의 옷을 만들어 국내와 몇 개국에 수출을 하는 나름 잘나가는 여성 CEO였다.


사업이라는 게 잘될 때는 사장님 소리를 듣지만, 무너질 때는 채권자들로부터 온갖 욕을 듣기도 하고 사기꾼으로 신분 하락이 되기도 한다. 물론 사장님이나 사기꾼이나 앞에 '사'짜가 붙어있는 것 공통점이지만, 그 의미는 하늘과 땅 차이일 것이다. 하나는 존경의 대상이요 하나는 비난의 대상이 되니까.




조사를 받는 그녀, 그녀를 고소한 남자. 서울 어느 지역의 화려하고 고급진 인테리어로 꾸며진 나름 콧방귀를 뀌는 남녀 손님이 들락거리는 은은한 음악 속의 '빠'에서 서로를 만났다. 두 남녀는 서로 돌싱이었고, 나름 CEO로 자부심이 있던 두 사람. 대화의 시간이 많아지면서 서서히 서로를 깊이 알고 싶은 욕망이 마음 한구석에서 삐집고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남자는 서울 어느 지역 한복판에 번듯한 사무실도 있고 일본에서 원단을 수입하고 제품도 수출하는 그런 회사의 여성 CEO라는 것을 알고 난 후, 그 남자의 돈은 그녀를 향해 서서히 서로를 탐닉하며 배배꼬는 것처럼 농밀하게 흘러갔다.


그 남자는 그녀가 디자인한 아름다운 옷을 자신만 탐독하기 아까웠는지, 많은 사람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많은 돈을 지불하고 네이버나 다음 포털사이트의 쇼핑 채널에 광고를 올렸다. 나름 순수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그녀의 뒤에서 든든한 버팀대가 되어주겠다는 나름 멋진 백마 탄 왕자, 아니 백마 탄 중년의 왕이 되었던 것 같다.




철제의자에 앉아 있는 이 여성, 금전 흐름에 대해 1차 조사를 진행하는 동안, 


"뭐 그런 쪼잔한 남자가 있어, 여기 고소하기 전에 내 사무실에 와서 행패 부리기도 했어요, 내가 도망간 것도 아니고, 지금 일본 쪽에 계속 연락도 하고 있는데 사업이라는 게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중국에서 원단에 물들일 물감이 들어와야 하는데 지금 한국과 사이가 좋지않아 막혀버렸고


나름 억울함을 피력하며, 여러 번 코를 푸는 모습도 의도치 않게 나에게 보여준 그녀. 물론 사람이 흥분하면 콧물이 나오고 그래서 코 풀기도 하는데, 나는 내 앞에서 연예인 풍이 나는 아름다운 여성이 코푸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마치 나만의 여신이고, 학창 시절에 책받침으로 가지고 다니고, 지금도 tv에서 나오는 그녀를 보면 아직도 이렇게 여신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국민 여배우 김혜수가 내 앞에서 코를 푼다고 상상하면 될 것이다. 


이렇든 저렇든 인생 살면서 돌부리나 풀뿌리에 넘어진 사연들을 주야장천 이야기를 들어주며 조사를 마쳤다. 그리고 내가 앉아있는 자리의 좌측에 있는 프린터에서 그동안 조사 내용을 기재한 조서를 출력하기 위해 나의 눈은 잠시 프린터로 향했다. 그리고 프린터에서 출력된 조서를 빼면서 내 눈은 다시 그녀를 보았다.


"앗따. 깜짝이야"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왔다.


전설의 고향이나 공포영화를 보면 소스라치게 놀라는 장면이 많다. 그중에 가슴에 한을 잔뜩 품고 살해당한 양반집 마님이나 우물에 몸을 던진 자매 원혼이 이생에서 원한을 풀기 위해 구천에 떠돌며 지나가는 나그네들에게 나타나는 장면. 이때 원혼으로 나타난 그녀들은 모두 식칼을 입에 물고 있거나,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면서 나타난다. 어렸을 때 이불속에서 얼마나 벌벌 떨면서 봤는지 지금도 생생하게 생각나는 장면이다. 이런 장면을 본 날은, 화장실도 가질 못했다. 무서워서.


그리고 아침에는 이불에 세계지도가 그려져 있기도 하고, 그러면 내 등판은 손바닥 자국이 그려졌으니까.


지금 내 눈앞에는 조사를 잘 받았던 아름다운 그녀는 어디가고, 피눈물을 흘리는 그녀가 있었다. 한쪽 눈이 아닌 양쪽 눈에서 콧날 옆을 계곡 삼아 흘러내리는 피눈물. 티슈로 피눈물을 닦아내는 그녀. 지금 바로 내 앞에 딱 앉아있다. 


'나에게 원한이 있나', 내가 사람이 아닌 한을 품은 여자 원혼을 조사하고 있었던가. 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나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받고 생을 마감한 여자가 있나?, 아니면 나를 오랫동안 짝사랑하다 생을 마친 여자가 있나?. 정말 찰나에 많은 생각을 했다. 정말 외치고 싶었다.   


피눈물 흘리는 그녀에게 외치고 싶었다. "귀신이면 썩 물러가거라" 그러나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내 좌우 옆에 앉아있던 수사관들도, 마주편에 앉아있던 수사관도 모두 일시 정지되었다.


나는 조사하면서 책상을 내려치거나, 소리를 치거나, 윽박지른적도 없이 그녀와 너무 화기애애하게 시간을 보내며 조사를 했는데...




그녀의 한쪽 손의 손가락에는 머리가 하얗지만 붉게 피로 물든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머리는 하얗게 둥글지만 몸통은 가느다란 그것, 바로 면봉이다.


나를 쳐다보며 그녀가 말한다.

" 놀래셨죠. 가끔 이래요."


뭐라고요. 왜 가끔 그래요. 병원 가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녀는 계속 나에게 말을 했다.


"몇 주 전에 쌍꺼풀 수술을 했어요, 앞 트임이나 뒤트임도 했거든요, 그런데 앞 트임의 부작용이래요. 앞쪽의 찢어진 부분이 계속 붙어요. 그래서 완전히 자리 잡을 때까지 붙은 부분을 면봉으로 띄어줘야 해요. 그래서 하루에 몇 번 정도 이래요. 피눈물 나는 여자 처음 보셨죠."


나를 놀래게 했던 그녀, 나에게 피눈물 나는 여자 처음 보았냐고 말을 하면서 피식하고 웃는 그녀..


"형사님도 혹시 쌍꺼풀 수술하시게 되면 앞 트임은 하지 마세요. 힘들어요."


무쌍의 내 눈을 지적하며 쌍꺼풀 수술할 때 앞 트임은 하지 말라며, 앞 트임에 대해 온갖 그녀가 겪었던 경험과 지식을 나에게 아낌없이 조언을 해주었던 그녀. 그러나 아직 내 무쌍의 눈은 그대로 무쌍이다. 그때의 트라우마인가. 쌍꺼풀 수술은 하고 싶은데 엄두가 안 난다. 남들의 눈에 피눈물 흘리는 마당쇠로 보일지도 몰라서.




경찰도 사람인데. 혹시 피눈물이 나실 것 같은 분은 미리 말 좀 해주세요. 놀라지 않게. 경찰도 사람인지라 겁도 있어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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