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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하 Jul 08. 2021

옴마,나도 자전거 값은 아는 남자여..

나만의 자전거는, 오로지 나의 것이고 소중한 학창 시절의 친구가 아닐까.

세월이 많이 흘렀다. 참으로 놀랍게도 빨리 변하는 세상이다.




까까머리 학창 시절에 매일 5-6킬로미터 통학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이때도 자전거 도둑이 참 많았다.


내가 타고 다니던 자전거는 연분홍빛이 살며시 나는 성인용 자전거였는데, 당시 5만원 정도 주고 샀던 자전거였다. 그것도 삼천리 자전거...


항상 안전하게 학교까지 나를 데려다주는 고마운 자전거, 물론 노동력은 내 양쪽 다리로 하긴 하지만, 건강도 챙겨주고, 버스 토큰값을 아껴주었던 고마운 자전거. 그래서 비나 눈이 너무 많이 오지 않으면 항상 나와 함께 학교까지 함께 가던 나의 소중한 친구였다. 


반백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당뇨도 없고 고혈압도 없이 자질 구래 잔병 없이 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비법이라고나 할까, 아마도 학창 시절에 자전거와 함께한 세월이 길어서가 아닌지 모르겠다.




요즘 보면 자전거 관련 모임도 많고, 애지중지하면서 멋진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도 참 많은 것 같다. 학교를 다니기 위해서 타고 다니는 것이 아닌, 여행이고 힐링으로서의 동반자가 돼버린 자전거....


참으로 변화되는 세상 속에서 자전거의 변천도 멋있는 의미로 바뀌어진 지금인 것 같다.




2002년부터 경기 부천에서 경찰생활을 시작했던 나, 그런 내가 경찰생활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도난 신고를 받고 출동을 했었다.


그때도 자전거 도둑도 많았고, 자질 구래 생활형 범죄가 참으로 많았던 시절이었다. 도난 발생 현장에 가서 피해자를 만나서 주고받았던 일이 있었는데, 나 스스로 "촌놈이라 어쩔 수가 없구먼"이라고 인정을 한 에피소드가 있다. 이때 피해자가 나에게 설명해주고 나는 듣고.. 그리고 함께 웃고 했던 그날.


"자전거 도난 신고하신 분이죠"

"네, 자전거를 여기에 두었는데 없어졌네요"


"참으로 지금도 자전거 도둑놈이 있네. 얼마 비싸지도 않은 것이 요즘 자전건디. 신문이나 우유를 신청하면 자전거를 공짜로 주는데. 참으로 별 스로운 놈이네"

"제 자전거는 보통 자전거가 아니고 비싼 거예요, 내가 이 자전거를 살려고 얼마나 돈을 모았는데"


"앗따, 자전거가 비싸 봐야 10만원 안짝이고 요즘 흔한 게 자전건데, 저기 부천역 자전거 세워놓는데 가봐요 찾아가지 않아서 녹슨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아뇨, 제 자전거는 비싼 거예요"


"얼만데요"

"천만원이요"


"이 아저씨가, 천만원짜리 자전거가 세상에 어딨어요. 나도 학교 다닐 때부터 자전거 타고 다녔던 사람인데, 뭐 천만원짜리가 어딨어 아저씨, 아무리 누가 가져갔다고 피해금을 허벌라게 말하네"

"아니에요, 제 자전거는 000 회사에서 만든 진짜 천만원짜리 자전거예요"


"뭐 자전거를 우주선에서 쓰는 철판으로 만들었다요. 그렇게 비싼 자전거는 나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아니에요, 제 자전거는 천만원짜리가 맞아요"


이때 나와 함께 현장에 출동한 수도권에서 태어나고 자란 수도권 남자 직원이 나에게 슬며시 귓속말로 말을 해주었다.


"천만원짜리 자전거가 있긴 있어요"

"뭐, 아니 어떤 것으로 만들어서 천만원이야"


"우주선에 들어가는 그런 금속으로 만들어서 새끼손가락으로 들어도 들어지는 자전거가 있어요"

"야. 자전거 세게 타면 날아가겠다"



 

나에게 자전거는, 그냥 학교 다닐 때 타고 다니던 것, 짐이 많을때에는 짐빨이라고 불리는 아주 큰 검은색 자전거가 대부분이었는데. 우주선에 들어가는 가벼운 철판으로 만든 자전거라니.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휴대폰은 폴더폰이고 지금과 같이 인터넷을 바로 볼 수 없었던 그때, 피해자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휴대폰으로 인터넷 검색해서 도난된 자전거와 같은 종류를 찾아서 나에게 보여주고 설명해주었던 그때.


전라도 촌놈이 경찰 되어서 처음으로 수도권에 올라와 살다 보니, 정말 이때의 자전거 값은 나에게 인생 충격이었다.


2002년 내가 수도권에 올라오기 전의 전라도의 도로 위에 다니는 외제차는 며칠에 한번 정도 가끔 보이던 시절이었는데, 부천의 도로 위는 온갖 외제차가 발로 차일 듯이 많이 다니던 그때, 그때 나는 스스로가 촌놈의 때를 아직 벗지 못했구나 생각을 하며 스스로 헛웃음이 나던 그때였다.




"나는 그런 비싼 자전거가 있는지도 몰랐네, 이것을 선생님이 타고 다닌다고요"

"네 제가 타고 다니려고 산거죠"


"그럼 어디 함부로 두지도 못하겠네. 집에 이고 다녀야겠네"

"네 맞아요, 집에 들어갈 때 항상 자전거 가지고 들어가죠"


신줏단지 모시듯이 하는 자전거. 참으로 나에게 있어 자전거의 변천사는 대단한 충격이었다.




2021년도인 지금, 내가 근무하는 수안보 지역에 자전거 동호회 사람들이 많이 찾는 카페가 있다. 가끔 식사 후 커피 한잔을 위해 내가 자주 찾아가는 카페인데, 이곳은 자전거 용품도 판매를 하고 자전거도 전시 판매되는 그런 곳.


지금도 카페 가운데에 천만원짜리 자전거가 전시되어 있는데, 새끼손가락으로 들어보니까 들리지는 않는다. 나에게는 15만원 정도의 자전거나 천만원짜리 자전거나 새끼손가락으로 들기는 무겁구나 라는 공통점 외에는 별다른 차이점을 못 느끼겠다. 지금도 마찬가지이고. 물론 동호회 사람들 입장에서는 의미가 다르겠지만.




나에게 있어 자전거는, 내 양다리의 노동력을 에너지로 둥그런 두 바퀴가 잘 돌아가는 그런 단순한 의미,

그런데 요즘 자전거는 내가 생각하는 그런 단순함에서 무언가의 특별한 의미로 변해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에게 자전거는 그냥 편안함과 순수한 학창 시절의 애틋한 그냥 오로지 나만의 것이고 나의 소중한 친구라는 점이다.


그냥 나에게 자전거는, 내 인생에 있어 복잡함 보다는 단순하길 바라는 것과 같지 않을까, 나와 함께 목적지까지 함께 할 수 있는, 복잡하지 않고, 잔머리를 많이 굴리지 않아도 되는, 그냥 성실하게 페달을 밟다 보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하는,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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