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약고구(良藥苦口) : 크레바스

#절도 #단독주택 #향기 #크레바스

by 별하
(나) “언제 비우신 건가요”
(여자) “아침 8시쯤에 남편 출근할 때 함께 나가서 일을 보고 지금 (오후 5시) 들어왔거든요, 그런데 이 난리가 났네요”
(나) “피해품은 뭐예요”
(여자) “저기에 있는 서랍 안에 있는 것들 하고, 거실에 있는 저기 저 통 안에 있는 것들이 없어졌어요, 그리고 보름 전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는데 그때는 신고를 하지 않았거든요, 내가 다른 데에 두고 착각하나 해서”
(과학수사요원) “이쪽으로 들어왔네요. 이쪽 문을 외출하실 때 안 잠그시나 봐요”


2층 단독주택이 많은 주거지역에서 절도사건이 발생했다. 옆집 2층에서 빨래 건조대가 설치되어 있는 조그마한 피해자의 2층 베란다로 넘어와서 거실 중간에 있는 잠겨있지 않은 문으로 누군가가 침입해서 피해자의 물품을 훔쳐갔다. 특히 단독주택 부지에서 침입절도가 발생했다면 빨리 검거해야 한다. 연쇄적으로 절도사건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신경을 써야 한다. 아파트보다 방범 쪽으로는 취약하기 때문에,


주변 CCTV 설치 현황을 파악한 후,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정보센터에서 범죄 발생 시간대에 녹화된 CCTV 영상을 확인하는 작업을 한다.


경찰업무는 단순하면서도 복잡하고 변수가 굉장히 많다. 다양한 업무 중에 특히 수사를 전담하는 형사나 수사관들은 눈이 빨리 나빠진다. CCTV 영상이나 컴퓨터 화면을 보는 시간이 많고, 수많은 사건 서류를 쌓아놓고 읽고 또 읽고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이가 그리 많지 않아도 노안이 빨리 온다. 그래서 수사관들의 책상에는 돋보기 안경이 한두 개씩 있는 경우가 많다. 슬프다.


(팀원) “형님, 저 놈 아니에요. 조금 이상한데”
(나) “넘어가는 거 보여?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팀원) “얘, 맞네. 지금 들어가네. 어리게 보이는데”
(나) “얼굴 좀 확대해봐, 어디에 있는지 아니까 가자”


바늘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말이 있다. 초등학생 때부터 좋지 않은 손버릇으로 인해 파출소에서 만나게 되어 나에게 훈계를 받았던 아이가, 시간이 흘러 중학교, 고등학교를 가서도 좋지 않은 손버릇으로 인해 경찰서에서 만나게 되면 참으로 안쓰럽다. 더불어서 무릎을 꿇고 사정하는 부모의 얼굴에서 슬픈 시간 속에서 늙어가며 깊어지는 주름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슬프다.


(팀원) “아까 영상에 나온 그 애 아세요”
(나) “알지, 잘 알지, 부모도 알지”
(팀원) “부모는 무슨 일을 하는데요”
(나) “아버지가 구두닦이 하셔, 엄마 없이 아들 두 명을 키우는데, 막내아들놈 때문에 죽지 못해서 살고 있지, 여러 번 좋게 말을 해주었는데, 이번에는 구속시켜야 하나”


3시간 정도를 차 안에서 기다렸다. 용의자 X가 언제 올지 모르니 일단은 기다려야 한다. 집에는 들어올 테니까. 전에도 똑같은 범행으로 나에게 혼이 났었는데도, 또 같은 짓을 했다. 참으로 이럴 때는 사람에 대한 배신감이 많이 든다. 걸어오고 있는 용의자 X의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함께 걷는다.


(나) “아저씨 누군지 알지, 키 좀 컸네”
(용의자 X) “네, 안녕하세요”
(팀원) “주머니에서 손 빼고, 주머니에 칼 있는 거 아니지”
(용의자 X) “칼 같은 것은 없어요”
(나) “얘는 착해, 칼 같은 건 가지고 다니지 않아, 너 내가 왜 온 줄 알지, 2층 집에서 훔친 거 방에 있니”
(용의자 X) “네.....”
(나) “어떻게 할래, 협조할래 아니면 여기서 체포할까”
(용의자 X) “방에 다 있어요”


용의자 X는 조그마한 폐기물 처리회사에 취직해서 스스로 돈을 벌며 살고 있다. 물론 아버지로부터는 독립해서 살고 있다. 독립으로 가장해서 무작정 집에서 나오고 싶어서일까, 아님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만족스러운 수집을 하기 위함이었을까. 원룸에 사는 용의자 X의 책상 서랍. 피해자의 물품이 모두 있는 것 같다. 샤넬부터 여타 명품도 확인된다. 영상통화를 통해 피해자가 자기의 물건이 모두 맞다고 진술을 해준다.


사람은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정말 맞을까. 죽기 전에는 고칠 수 없는 것일까. 용의자 X를 알고 지낸지도 거의 10년이 돼가는데, 나 말고도 다른 형사들에게 검거돼서 나름 전과도 있는 아이인데. 참으로 아픈 손가락 같은 아이다.


(나) “너 저번에 아저씨가 병원에 가보라고 했는데 가봤니”
(용의자 X) “.................”
(나) “안 가봤구나, 너 그러다가 정말 큰일 난다. 너 지금은 절도지만,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몰라. 평생을 교도소에 왔다 갔다 하면서 살고 싶은 거니, 병원 가서 상담해보고 치료를 받아봐. 아직 21살이잖아”


용의자 X가 아주 어릴 때 어머니는 지병으로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래서 아침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형 하고만 집에서 지내야 했다. 아버지는 늦은 시간까지 구두닦이로 돈을 벌어야 하니, 아이들에게 신경을 크게 써주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먹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많아지면서 용의자 X는 문방구를 시작해서 물품을 하나씩 훔치는 버릇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춘기가 오면서 더 한 욕심이 생긴 것이다.


(나) “너 이거로 뭐하니”
(용의자 X) “그냥......”
(나) “냄새 맡니”
(용의자 X) “네”


용의자 X는 향기 수집가다. 훔친 여성의 속옷에서 나는 향기를 맡으면서 스스로 향기 수집을 한다. 상상을 하면서. 많은 성폭행범들은 심리적으로 관음증으로 시작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진화한다. 관찰 대상인 여성의 집에 침입해서 속옷이나 물품을 훔쳐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성폭행을 하게 된다. 바로 집착일 수도 있다.


정신병원에 가서 상담을 해보라고 권유를 했던 이유도, 용의자 X의 관음증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치유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결국은 신속한 검거가 성폭행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누군가가 옳고 좋은 소리를 하면 모두 잔소리로 취급하며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보낸다. 귀에 달콤한 캔디처럼 달달한 말이 인생의 독이 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많은 사람들은 유혹에 넘어간다. 그래도 몸에 좋은 약은 쓰다는 말처럼 가끔은 누군가가 쓰디쓴 충고를 해줄 때 한 번쯤 자신의 지금 위치와 걸어왔던 인생의 뒤안길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꼭 가질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는지를. 그리고 앞으로도 잘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이렇듯 당신의 주변에 인생의 쓰디쓴 약을 가끔 처방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분은 당신을 아껴주고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인생의 소중이 일 것이다. 그러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주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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