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감래(苦盡甘來) : 업그레이드

#고진감래 #공부 #죽기 살기 #나를 외치다 #한강 #기회

by 별하

어렸을 때는 참으로 몰랐다. 지금에서야 알게 된 진리를, 왜 학창 시절 때는 몰랐을까. 살아가면서 인간의 삶이 그리 공평하지 못함을 천천히 알아갔으면서도 어린 나이에는 억지로 이를 외면하며 하늘은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기회를 3번 준다는 어리석은 믿음만 고수를 했을까.


기회는 언제 오고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기회가 온다면 알 수 있는 것인가. 정말 기회는 오는 것인가. 정말로 3번 오는 것인가. 나에게는 몇 번이나 왔을까. 만약 왔다면 몇 개의 기회를 잡았을까, 아니면 한 개도 잡지 못했을까라는 의문이 때론 든다.


‘저는 돈도 없고, 부모 찬스 쓸 빽도 없어요’라는 서글픈 현실의 언어를 쓰는 청춘들이 많다. 물론 공산주의가 아닌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어느 국회의원 아들이 말하지 않았던가. 빽 있고 돈 있는 부모를 만나는 것도 능력이라고.


오래전 보았던 영화라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국내에서 홍콩영화가 한참 꽃필 때 보았던 영화 중에 이런 내용의 영화가 있었다. 「삼신할매가 관장하는 하늘집에서 태어날 순서를 기다리는 아기 영혼들이 있다. 다음 생에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떵떵거리며 편히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아이 영혼을 부잣집으로 내려갈 순서의 아이 영혼과 새치기하여 자리를 바꾸기도 하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하는 어머니 영혼을 그렸던 코미디 영화」가 있었다. 정말 하늘나라에서도 그럴까라는 생각을 갖게 했던 영화였다. 그래서일까 지금의 나는 전생의 부모가 하늘에서도 빽도 돈도 없어서 이렇게 현생으로 내려온 건가 하고 말이다. 황당하기 그지없지만.


그런데 살다 보니 알게 되더라, 살아보니 살게 되더라. 돈도 빽도 없어도 스스로 돈과 빽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먹고살기 위해 기술을 배웠고, 기술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자격증이 있어야 했기에 공부했고, 그래서 기술자라는 신분으로 살았다.


한때 불안한 기술자의 신분에서 안정된 신분으로 갈아타서 가족들에게 안전한 비빌 언덕이 되어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공무원으로 갈아타기 위해 공부를 했다. 이때 나는 한강에 가본 적이 없는 촌놈이어서 한강에 다리가 몇 개인 줄도 모르고, 무조건 공무원 시험을 1년간 준비해서 만약에 떨어지면 한강에 있는 다리 중에 무작정 세 번째 다리에 가서 뛰어내린다라는 마음속의 배수진을 치고 공부를 했다. 배수진을 치고 공부한 덕분인지 1년 만에 공무원이라는 신분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돈이 든다. 하지만 공부를 위한 돈은 학원비와 교재비만 있으면 되니 아르바이트를 하던지 해서 자신 스스로가 벌면 된다. 젊음이 있으니 날밤을 새더라도 버틸 수가 있는 것이고, 강한 의지와 목표의식만 있으면 참아낼 수 있다.


공무원으로서의 신분, 큰 업무상 잘못이나 기본에서 벗어난 일탈만 하지 않는다면 나라에서 신분을 보장하니, 정말 안정적이고 철밥통이라고 하지만, 작금의 공무원 세상은 그리 만만한 조직은 아니다. 그리고 60세가 가까워지면 나라에서 정리해고를 한다. 바로 명예퇴직이나 정년퇴직으로 말이다.


어떠한 위치에서 공무원을 했냐에 따라 퇴직 이후의 삶은 다르다, 나라의 부름으로 다른 곳 높은 자리에서 일을 할 수도 있다. 엽관제라는 멋진 제도의 품 안에서. 그렇지만 이는 특별한 경우고 고위 관료직에 있었던 공무원들에게 해당되니, 평범한 공무원은 기대를 하지 않는 게 좋다. 그래서 평범한 공무원은 퇴직 이후의 삶도 스스로 준비를 해야 한다.


빽 있고 돈 있는 부모를 만났다면 물려받은 재산이 많으니 재미나고 즐겁고 취미생활처럼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퇴직하고 난 후, 즐겁게 남은 인생을 즐기면 좋겠지만, 대부분 평범한 공무원은 그렇지 않다. 모두 퇴직 전부터 죽상을 하고 다닌다. 앞으로의 삶의 고민이 많으니까.


지금 나는 공무원 이후의 삶을 생각하면서 또 다른 공부를 하고 있다. 퇴직 이후에 나만의 기술로서 찾아주는 곳이 많도록, 대학이나 기업체에서 강의하면서 지낼 수 있는 그런 신분이 될 수 있도록 또 다른 공부를 하고 있다. 물론 쉽지 않다. 세월의 강의 물살에 비례해서 기억의 시간도 서서히 줄어들고, 기억의 공간도 조금씩 좁아지고 있음을 그리고 뿌리 깊은 나무처럼 의자에 붙어있어야 하는 엉덩이의 들썩거림이 잦아짐도. 중요한 사실은 수도권에서 살고 있는 내가 한강에 다리가 몇 개인지를 알아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뛰어내릴 거야라는 절실함이 과거보다는 많이 희석됨을 느낀다.


‘빽 없고 돈 없다’라고 자책을 어린 나이에 하면서 뭔가에 목숨을 걸지 않고 자포자기하였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빽 없고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게 있다. 바로 공부다. 공부밖에 없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서 알았다. 공부를 해서 자격증을 땄고 공무원도 되었다. 그러면서 내 빽은 내가 만들어갔다. 그러다 보니 돈도 모아졌다.

전라도 촌놈으로 살 때 예능 프로나 뉴스를 보면, 일산이라는 지역이 많이 나왔다. 유명 연예인이 살고 정치인이 사는 곳, 그래서 나는 일산이라는 곳에서는 절대로 살 수 없는 신분이겠구나라는 나만의 카스트 제도 속에서 슬픈 마음을 먹었던 적도 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살게 되고 버티다 보니 살아가더라, 바로 내가, 바로 이곳에서,


공부라는 것은 정말 어렵다. ‘저는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고 말을 하는 사람은 그냥 공부에 재능 있는 사이코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이코는 대한민국에 몇 퍼센트나 되겠는가. 이런 사이코를 염두에 두지 마라, 그냥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고 다들 공부가 정말 싫다. 그렇지만 빽 없고 돈이 없다면 공부밖에 없다. 공부를 하다 보면 지금의 형편보다는 나아진다. 물론 한 걸음씩 나아지니 힘은 든다. 그리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그렇지만 지금보다는 좋아질 것이라는 사실은 명확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버는 방법은 여러 방법이 있다. 두 가지로 나눠본다면 쉬운 방법이 있고 어려운 방법이 있다. 어려운 방법으로는 지금 우리가 지금 하고 있고 우리 부모님이 해온 것처럼 정당한 일을 하면서 능력껏 돈을 버는 방법이다. 직장생활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자신의 지식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주는 삶이거나, 노래를 작사 작곡하거나, 춤을 추거나, 장사를 하거나, 오롯이 타인에게 즐거움과 도움을 주면서 버는 방법이다.


반면에 돈을 쉽게 버는 방법은 간단하다. 술에 취해 쓰러진 주취자에게서 돈을 빼내는 방법, 좋은 옷이나 신발을 신고 있는 아이에게 공갈쳐서 빼앗는 방법, 타인을 속여서 돈을 빼먹는 방법, 주먹 믿고 타인의 돈을 마치 내 돈처럼 빼먹는 방법 등 자신의 능력을 부정한 방법으로 사용해서 돈을 버는 것이다. 그렇지만 결과는 확연히 다르다.


어렵게 돈을 벌어도 정당한 자신의 능력으로 번다면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후대에 이름을 날릴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부정한 방법으로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여 쉽게 돈을 번다면, 바로 경찰이 찾아갈 것이다. 그게 차이일수도 있다. 그래서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말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인생은 세월의 계단을 밞는 것과 같다. 다만 출발점이 다를 뿐이다. 출발점이 다르다고 해서 포기를 하기보다는 악착같이 자신의 신분을 세탁해보라. 바로 공부라는 것을 이용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부터, 아님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목숨을 걸고 해 봐라. 죽기 살기로 해보지도 않고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하는 것은 비겁한 변명이다.


빽도 돈도 없다는 핑계를 대지 마라.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공평하지 않다. 그러니 스스로 최선을 다해서 각자 사는 것이다. 일단 공부로 최선을 다해본다면 스스로 빽과 돈을 만들 수 있음을 스스로 직접 느끼게 될 것이다. 그래서 고진감래라는 말이 수백 년 전부터 전해오는 것이지 않을까.

끝은 있는 걸까 시작뿐인 내 인생에
걱정이 앞서는 건 또 왜일까
강해지자고 뒤돌아보지 말자고
앞만 보고 달려가자고
절대로 약해지면 안 된다는 말 대신
뒤처지면 안 된다는 말 대신
지금 이 순간 끝이 아니라
나의 길을 가고 있다고 외치면 돼

(노래 : 나를 외치다. 가수 : 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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