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어화(解語花) : 셀러브리티

#유재석 #김혜수 #아이유 #스우파

by 별하

사람마다 보이지 않는 등급이 있다. 자기가 좋아하고 싫어하고에 따라서다. 경찰관으로서 조사업무를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가끔은 평소에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이럴 때는 만나기 전날부터 긴장이 된다. 누구냐고, 정치인이냐고? 「정치인은 개나 줘 버려라는 마음으로 기대 영도 없다」 온갖 허세에 썩은 냄새만 풍길 테니. 그럼 어떤 사람이냐고?.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라는 동요가 있다. 바로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는 사람들, 그것도 내 기억에 있고, 나만의 셀러브리티가 온다면 정말 긴장된다. 출근할 때 옷차림도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마치 사춘기 소년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셀러브리티가 출석하는 날에는 다른 부서의 형사들이 언제 오냐고 묻기도 한다. 물론 좋은 일일 수도 안 좋을 일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이벤트 같은 그런 날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조사를 받아야 하는 연예인 입장에서는 그리 좋은 날은 아니니 우리에게 최소한 사람들이 별로 없는 시간에 조사를 받게 해 달라, 조용한 밀실에서 노출 안되게 해 달라 등등, 귀찮은 요구를 해오는 셀러브리티의 요청을 큰 불평 없이 받아준다. 일반인보다는 얼굴값이라는 나름 경제적 평가액이 책정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유명 연예인이나 덜 유명한 연예인이나, 세월에 따라 유명세의 차이가 있는 연예인이나, 각자 좋아하는 연예인을 만나서 세상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몇 시간 동안 같은 장소에서 서로 대화할 수 있다는 것도 내 직업적으로는 좋은 장점이다. 가끔은 상상해본다. 아주 조그마한 일로 유재석, 아이유, 김혜수, 신민아, 이병헌, 한소희 등 개인적으로 만나고 싶은 연예인을 조사를 핑계로 만나봤으면 좋겠다는 그런 상상을.


물론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내가 만나고 싶은 유명 연예인을 만날 기회는 별로 없다. 물론 몇몇 연예인을 사건 관련해서 만난 적은 있지만, 그리 유명하지 않아서 먼저 자신이 연예인이라고 말을 하지 않으면 못 알아보기도 한다. 특히 90년대생 형사들에게는 더욱더 그럴 것이다.


연예인들은 팬들의 사랑을 먹고사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못 알아보면 속상해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도 몇몇 연예인들이 살았었는데, 가끔 에레베이터를 함께 탔을 때 내가 못 알아보면, 먼저 아는 척을 하면서 자기소개를 한다. 그럼 내가 왠지 미안해진다. 시간이 흘러 유명인이 되면 더 좋은 곳으로 이사를 다들 갔지만. 그래도 같은 아파트에서 연예인과 살았다는 추억도 괜찮은 것 같다. 그리고 가끔 텔레비전에 나오면 함께 살았던 그때가 기억이 나기도 하니까 말이다.


(선배) “오후에 조사 있어”
(나) “한건 남았어요”
(선배) “퇴근 전에 조사 빨리 마치고 한잔하러 가게”
(나) “오키, 냉큼 끝내버리죠”


경제범죄수사팀에서 근무할 때, 오전에 한건, 오후에 두건을 조사했다. 그래야 넘쳐나는 사건을 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사기를 당했어요 어쨌어요 하는 수많은 돈 관련 범죄에 대한 고소장에 기재된 내용은 당사자들의 인생의 한 단면이기 때문에, 나도 그 사람들의 그 당시 인생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면서 진실에 서서히 가까워지니까 말이다. 이 시간 이 순간에도 전국에 있는 경제범죄 전문 수사관들은 매일 타인의 인생의 단면을 쳐다보면서 드러나지 않는 진실을 찾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바로 그대들은 진실을 찾는 자이기 때문에,


(나) “S 씨죠, 여기 앉으세요”
(여자) “네”
(나) “신분증 좀 보여주실래요”
(여자) “네 여기요”


내 앞에 앉아있는 여자는 계속 나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준다. 왜 그럴까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사무실에 있는 다른 수사관들에게도 내 앞의 여자는 고개를 돌려가면서 눈빛을 준다. 아는 사람이라도 찾는 것인가,


(나) “어디 불편하세요”
(여자) “아뇨, 저 누군지 모르세요”


훅하고 들어온 갑작스러운 여자의 질문, 여자가 남자에게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갑자기 누군지 모르냐고 묻는다. 이때가 남자는 제일 무섭다. 그리고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수사관들의 눈빛은 일제히 나를 향한다. 분명히 머릿속에서 온갖 수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 ‘저 여자와 그렇고 그런 사이인가’ 아니면 ‘저 여자와 금전관계가 있나’, ‘몰래 밀회를 즐기는 사이인가’라는 온갖 상상 속의 루머를 만들어가며 나름대로 멜로 영화를 찍을 것이다. 나는 온갖 나쁜 짓을 한 악당으로, 때로는 순정남으로, 때로는 불륜남으로 난도질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 “누군지 잘 모르겠는데요”
(여자) “섭섭하네요, 모른다고 하시니까”


미궁 속에 빠져드는 인생의 난센스 시간이다. 누굴까, 누굴까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계속한다. 내 주변의 다른 수사관들의 뜨거운 찌릿한 눈빛도 느끼면서, 왠지 내가 죄인이 된 것 같다. 마치 내가 조사를 당하는 입장이 된 것 같다. ‘이제는 좋은 여자 한번 만나봐라’라고 가끔 이야기하는 선배의 따가운 배신감의 눈초리가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자신에게 말도 하지 않고 몰래 여자를 만난 거야라는 화가 난 그런 감정의 눈빛을,


(여자) “저, 짝 프로에 나온 출연자잖아요, 짝 안 보세요, 저번까지 내가 n번으로 출연했는데요”
(나) “네, 짝이요, 아하 연예인이시네요, 못 알아봐서 미안해요”


다행이다. 나의 인생 무비의 출연자가 아니어서, 한때 텔레비전에서 방영했던 남녀의 인연을 맺어주는 짝이라는 프로가 있었다. 나도 즐겨봤던 프로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여성은 짝이라는 프로에 출연한 n번 여성 출연자라고 하면서, 먼저 내가 알아봐 주지 못함에 무척 아쉬워한다. 나를 향해 뜨거운 눈빛을 보내던 다른 수사관들은 실망과 허탈감의 눈빛으로 변하면서 각자가 하던 일을 그냥 한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여러 종류의 오디션에 나가 자신만의 재주를 맘껏 보여주며 나름 셀러브리티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각종 예능 프로에서 볼 수 있다. 나도 한때는 가수보다는 백댄서가 되고 싶기도 했었으니까. 성은 달라도 최근 방영했던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보면서 여성 댄서들의 모습들이 내게는 셀러브리티였고 해어화였다. 나의 꺼지지 않는 갈망을 꿈틀거리게 했으니까 말이다. 라떼는 학생 때 댄스를 한다고 하면 온갖 애칭이 붙었다. 퇴학생, 문제아, 공부 못하는 돌대가리, 말썽쟁이, 어디다 써먹을까, 그래서 용기 내지 못했던 사람도 많았으니까 말이다.


물론 꼭 대중이 알아보는 프로에 나가야만 셀러브리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각자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만의 무비를 잘 만들어가면 된다. 만들어가는 무비 속에서 자신이 연출하고 주연을 하면서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어느 순간 자기 스스로부터가 먼저 인정해주는 멋진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때를 만나게 되면 대중이 인정해주는 셀러브리티가 되는 것이다. 꼭 먼저 사람들이 알아봐 줘야 셀러브리티가 되는 것이 아닌 자신 스스로가 자기에게 ‘잘 살았어, 아주 잘살았어, 정말 잘 해냈어’라고 인정해줄 수 있게 살아왔다면 그게 바로 진정한 셀러브리티가 아닐까 한다.


(선배) “짝이 뭐냐, 드라마냐”
(나) “형님 돌싱 되면 한번 출연해봐요, 가끔 특집도 하던데, 아 그리고 안주 좀 좋은 것 좀 시켜봐요, 맨날 순댓국에 소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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