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기원포(先期遠布) : 실드 엔 나이프

#경찰관 #지능수사팀 #경제범죄수사팀 #명품 #파랑새

by 별하

지구대나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경찰관은 파랑새와 비슷한 색깔의 근무복을 입고 근무를 한다. 강력반이나 형사계에서 근무하는 형사들은 질기면서도 잘 늘어나는 편한 옷을 주로 입고 근무를 한다. 지능수사팀이나 경제범죄수사팀에서 근무하는 수사관들은 세미 정장을 입고 근무를 한다. 같은 경찰인데도 근무하는 부서에 따라서 옷차림이 다르다. 만나게 되는 범죄유형이 다르니까.


세미 정장을 주로 입는 경제범죄수사팀 수사관들도 가끔은 옷을 나름 신경 쓰고 출근할 때가 있다. 마치 전쟁터에서 만나게 될 적군과의 기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한 실드가 가끔 필요니까. 본격적인 조사 전부터 보이지 않는 기의 전쟁은 시작되는 것이다. 잡으려는 자와 잡히지 않으려는 자의 불꽃 티는 싸움판에서.


(여 수사관) “선배님, 오늘 멋있는데요”
(나) “오늘 신경 좀 썼지”
(선배) “평소에도 그렇게 좀 입어라, 대충 입지 말고”
(여 수사관) “오늘 프로 사기꾼 오는 날이죠”


그렇다. 오늘 나의 전쟁터에서 만날 적군은, 나름 전투력 게이지가 상당한 40대 초반의 여성 빌런이다. 나는 이 전투에서 승리를 하기 위해 초반 기싸움부터 제압을 하면서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나의 몸을 갑옷으로 장착을 하였다. 갑옷을 장착하고 출근한 나를 본 직원들이 멋지다고 하니 일단은 성공한 것 같다.


선전포고와 동시에 시작된 전쟁터에서 만난 40대 초반의 여성 빌런은, 예상했던 것처럼 과거 전투 경험을 바탕으로 방어와 공격을 바꿔가면서 나와 공성전을 벌였다. 가끔은 나에게 은근슬쩍 눈웃음의 미인계 화살을 날리기도 하고. 그렇지만 나는 오늘 멋진 갑옷을 입었으니 뚫리지 않는다. 전투는 계속된다. 서로 치열하게 주고받으면서 돈의 흐름을 찾아갔고, 돈이 지나간 흔적의 막바지에서 진실은 밝혀지게 된다. 진정한 돈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그리고 결국에는 내가 승리의 깃발을 멋지게 조서에 꼽는다. 마치 개선장군처럼 말이다.


(여성 빌런) “지금 입고 계신 카디건 괜찮네요. 얼마예요, 남자 친구 사줘야겠어요”
(나) “몰라요, 얼만지 생각하고 사본적 없어서”


돈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나의 멋진 쿨한 답변으로 초반 기싸움부터 내가 이겼었구나라며 속으로 환호성을 친다. 나의 적군이 내 갑옷의 진가에 대해 물어보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도 내 갑옷에 대해 잘 모른다. 패션 테러리스트처럼 평소 입고 다니기 때문에, 그냥 편한 게 좋아서. 그래도 승리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흔들리는 시간마다 서울에 있는 신설동 어느 곳을 간다. 이곳에서는 나름 내 인생을 뒤돌아볼 수 있는 마음공부도 하고 좋은 말씀도 때로는 꾸지람도 듣는 그런 곳이다. 그래서 항상 갈대 같은 마음을 잡기 위해서, 또는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오는 사람이 많구나라는 생각에 외롭지 않다는 위로도 받기도 하는 그래서 동질감이 드는 편한 나만의 비밀정원이다.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서로를 잘 아는 사이는 아니고 서로 목례만 하는 그런 사이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우연히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의 만남이니 서로 조심하고 예의를 갖추는 자리여서 항상 경건하다.


(아가씨) “안녕하세요, 다들 잘 계셨죠”
(조언자) “오래간만이네, 많이 예뻐졌네”
(나) “안녕하세요”
(조언자) “위에 입은 옷 예쁘다, 얼마니”
(아가씨)....................
(나) “윗도리가 조언자님이 얼마냐고 묻는데요, 얼마니”


조언자님이 하신 말을 아가씨가 못 알아듣는 것 같아 말을 전달했다. 얼마니라고. 그런데 모두들 빵 터졌다. 10여 분동 안 서로 웃었다. 나는 왜 웃는지를 모르는데, 모두 웃는다. 나를 보면서. 그리고 얼마니라는 말을 여러 번 조언자님이 반복하면서 웃는다. 나는 모르겠다. 얼마니라고 묻길래 얼마니라고 말을 전해준 건데.


한때 수갑 모양의 바클이 달려있는 벨트를 차고 다니는 사복 경찰관들이 많았다. 직업의식은 못 감춘다고 허리띠 바클에 수갑 모양을 달고 다니는 구만, 아주 경찰이라고 소문을 내고 다니는 구만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나름 명품 벨트 인지도 모르고, 물론 나도 한때는 메이커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는 청바지를 입으려면 뱅뱅이나 리바이스가 최고라고 생각했고, 신발은 프로스펙스나 나이키 정도. 물론 전라도 촌놈이 아는 메이커는 이 정도였으니, 명품 메이커를 알 수가 있겠나. 그리고 크게 관심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조언자) “얼마니, 예쁘다 옷이”
(아가씨) “보너스 받은 것으로 샀어요”


아가씨가 입고 있던 옷이 발음에 따라 들리는 톤이 다른데, 아르마니라는 명품 옷이란다. 그래서 알마니 또는 얼마니라고 부르기도 한다는데, 나는 그때 가격을 묻는 얼마니로 들었다. 그래서 명품을 모르는 무식자로 낙인이 박혔다. 물론 나의 명품 무식이 순수하게 보여서인지 함께 있었던 사람들이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지금 내가 차고 있는 벨트는 흰색 바탕의 별이 박혀있는 제품이다. 만년필만 나오는 회사인 줄 알았는데 벨트도 만드는지는 나중에 알았다. 그리고 여성 빌런의 공격에도 끄떡없었던 나의 갑옷은, 바로 내가 물어봤던 얼마니였다. 1년에 몇 번 입지 않아서일까 내가 입는 갑옷에 대해서도 잘 몰랐으니 말이다.


나는 후배 경찰관들에게 말한다. 1년에 하나씩만 적당한 명품 옷을 자신에게 선물하듯이 사주라고, 작년에는 바지, 올해는 상의, 내년에는 재킷, 이렇게 사다 보면 몇 년 후에 한 벌의 갑옷이 될지니, 가끔 살아남기 위한 전쟁터에서 훌륭한 갑옷이 될 수 있음을 말이다.


사회 초년생은 돈이 없으니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명품으로 가끔 위장을 할 줄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의 시각적 효과가 오감의 80프로를 차지한다는 통계도 있으니까 말이다. 사람들은 상대방의 옷차림에 따라서 무시하기도 존중해주기도 조심하기도 한다. 사람의 내면을 봐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다. 어쩔 수 있겠나 그게 사람인데. 보는 것으로 판단 내리는 게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가끔, 아주 가끔은 어떤 장소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냐에 따라서 자기만의 칼과 방패는 있어야 하는 게 작금의 시대인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상대방에 따라 갑옷을 입는다. 두뇌싸움에서 상대방으로부터 허를 찔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해어화(解語花) : 셀러브리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