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운지정(望雲之情) : 마인드 블로윙

#엄마 #댄서 #혼혈 #우울증

by 별하
(댄서녀) “엄마. 엄마. 어디가. 같이 가”
(엄마) “......................”
(댄서녀) “발이 안 움직여, 왜 그래 엄마, 무서워, 나 좀 잡아줘”


땅속으로 몸은 서서히 가라앉는다. 앞서가던 엄마는 무심하게도 계속 앞서 걸어가고 있다. 함께 걸을 때도 걸음이 빨랐던 엄마다. 그런데 오늘은 더욱더 빨라서 발이 보이지 않고 그냥 공중에 떠서 간다. 너무 멀어진다. 엄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엄마 엄마 수십 번을 외쳐도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물안개 속으로 엄마의 실루엣이 서서히 사라져 간다. 그리고 점점 숨이 막혀온다. 손가락도 움직이지 못하겠다. 눈이 떠진다.


이슬비 내리는 길을 걸으면
봄비에 젖어서 길을 걸으면
나 혼자 쓸쓸히 빗방울 소리에
마음을 달래도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한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다
한없이 흐르네 봄비

(노래 : 봄비. 가수 : 박인수)


(나) “지금 뭐해”
(아가씨) “그냥 집에 있어요”
(나) “약속 없지”
(아가씨) “네, 일없어요”
(나) “그럼 20분 후에 1층에 도착하니까. 츄리닝 같은 옷 입고 나와”
(아가씨) “어디 가시게요”
(나) “데이트 가려고, 금방 도착해”


가족이라는 존재는, 소중하기도 가끔은 없어져버렸으면 하는 귀찮은 존재기도 하다. 그러나 항상 애증의 관계처럼 없는 것보다는 있으면 좋고, 그런데 옆에 항상 붙어 있는 것보다는 가끔 보는 그런 가족을 원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이런 조건도 항상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는 가족이었을 때 그렇다. 하지만 만남이 불가능한 가족은 어떤 조건도 필요 없이 무조건 만나고 싶은 게 가족이다.

어렸을 때부터 전통무용을 했던 아가씨를 지금 만나러 간다. 무용을 그만 둔지 몇 년이 지났지만 가끔 생활 속에서 하는 동작들을 보면 상당히 유연한 아가씨다.


(나) “점심은 먹었어”
(아가씨) “조금 먹었어요”
(동료 여성) “고향에서 전통무용을 20년 정도 했다고 했죠”
(아가씨) “네”
(나) “왜 이곳에서는 안 해”
(아가씨) “우리 고향 하고는 너무 틀려요, 손동작 발동작 하나하나 표현이 달라요, 그런데 지금 어디 가요”
(나) “좋은데 가지”


가지 못하지만 그곳에는 가족이 있다. 그리고 제일 보고 싶은 엄마가 있다. 비록 살기 너무 어려워서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나서 이곳에서 살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 항상 미안하다. 미안한 마음이 너무 무거워 매일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운다. 너무 무거운 마음을 이기지 못해 영혼의 끝으로 가라앉는 것 같이 모든 게 무겁기만 하다. 친구들을 만나서 웃고 떠들고 맛난 음식도 먹고 싶지만 가족들은 고향에서 밥은 제대로 먹는지, 살아있는지 알 수가 없어 신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요즘 들어 엄마가 계속 떠나는 꿈을 꾸는 날이 많아져서 더욱더 마음이 무겁다.


(나) “이런데 안 와봤지”
(아가씨) “이곳은 뭐하는데에요”
(동료 여성) “팀장님이 며칠 동안 섭외해서 오늘로 날을 잡은 거예요”
(나) “힘들었어”
(아가씨) “.....................”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으면서 한국인과 맛있고 달콤하며 예쁜 색의 칵테일처럼 블랜딩이 되고 싶어도 잘 안 되는 아웃사이더들이 있다. 외국인 노동자, 불법체류자, 고려인, 조선족 그리고 탈북민. 특히 탈북민은 무거운 마음을 모두 가지고 있다. 마치 질병처럼, 그러나 약이 없다. 어느 병원에서도 처방할 능력 있는 의사를 찾기가 힘들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토종 한국인이다. 그러나 만약에 탈북민을 외국인 부류로 나눈다면 나는 혼혈인이다. 이유는 엄마가 북한 원산이 고향이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모두 북한 원산에서 6.25라는 전쟁이 터지기 전까지 사셨던 분이다. 그래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북한식 욕을 들으면서 자랐다. 그러나 나는 한국인이고, 모두가 한민족이다. 이방인은 아니다. 못된 놈들이 그어놓은 선으로 잠시 갈라져 있을 뿐이니까.


(외할아버지) “야 이 존갓나 새끼, 빨리 일어나, 학교 지각한다”


가끔 외할아버지가 나에게 존갓나 새끼라고 욕을 해주던 그때 그 시절, 이모들이 말썽 부리면 “이 애미 나이들이”라고 큰소리치던 그때 그 시절이 눈앞에 선명하다. 그리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보고 싶다. 살아생전 고향땅 한번 손으로 직접 만져보고 싶은 게 소원이셨던 분들이었다.


70년 정도 갈라져 있어서인지, 한국과 북한의 문화와 사상과 가치관이 다름을 느낀다. 전통무용만 해도 북한식과 한국식은 많이 다르다고 한다. 그래서 북한에서 평생을 북한식 전통무용을 했던 아가씨들이 한국에 있는 예술계통 대학교에 편입을 해서 전통무용을 시작하면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어쩔 수 없다. 어렸을 때부터 몸에 녹아든 모든 춤사위를 한순간에 남한식으로 바꾼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을 테니 말이다.


탈북민분들과 만나다 보면, 남녀를 떠나서 육체적 또는 심리적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을 가끔 만날 때가 있다. 고향에 있을 때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골병이 들어 육체적으로 힘든 분, 가족이 그리워서 또는 사랑의 상처 때문에 심리적으로 힘들어하는 분들. 신나는 일을 하려고 해도 고향에 남아있는 부모와 가족들에게 죄를 졌다는 마음 때문에 마냥 신날수가 없이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하고, 알코올 의존증으로 힘들어하기도 한다. 어떤 한국사람은 북한 사람들이 배급 사회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논리를 갖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현재의 북한에서 배급제는 잘 운영되지 않는다. 아니 배급이 끊긴 지 오래되었다. 그래서 나름 살기 위해 자급자족으로 사는 경우가 많다. 목숨을 걸고 중국에서 물품을 구해 북한 장마당에서 팔려고 밀수하다가 총에 맞아 죽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북한의 이러한 사정을 이용해서 돈을 벌려고 하는 나쁜 중국 사람도 많다. 없는 사람의 몸에 붙은 거머리처럼 죽을 때까지 쪽쪽 빨아먹으려는 그런 중국사람들.


(원장님) “아까 전화 주셨던 팀장님이시죠”
(나) “네 제가 전화드렸습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흔쾌히 도와주신다고 해서”
(원장님) “일단 오늘은 테스트만 할 겁니다, 이분이세요”
(아가씨) “네 안녕하세요”
(원장님) “이쪽으로 오셔서 옷 갈아입으시면 됩니다. 팀장님은 나가 계시면 됩니다. 민망한 자세가 많아서”
(나) “덕분에 구경도 하려고 했는데, 아쉽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홀에서 나와 대기실 소파에 앉아 호기심 어린 눈과 쫑긋한 귀로, 홀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와 간간히 들리는 여자들의 웃음소리를 듣는다. 박자에 맞춰 들리는 박수소리와, 계속된 시범을 보이는 소리와 따라 하면서 웃는 소리가 들린다. 항상 전신에 우울모드를 작동시켜놓던 여자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밝은 웃음소리에 절로 나도 기분이 좋다.


(원장님) “무용을 해서인지 너무 잘하시네요, 근력만 조금 키우시면 될 것 같아요”
(나) “소질은 있어 보입니까”
(원장님) “소질은 있으세요, 물론 이쪽 시장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잘 배우셔서 강사로 나가시면 좋을 것 같아요”
(동료 여성) “너무 잘하세요, 나도 한번 따라 해 봤는데, 허벅지 찢어지는 줄 알았어요”
(나) “야, 너 소질 있는가 보다, 마음 어때”
(아가씨) “생각해보겠습니다”
(나) “원장님에게 배운다면 학원비 할인 좀”


잘하는 무용을 지금은 하지 못하는 슬픈 아이에게, 어떤 하나의 힘을 주기 위해서는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를 알게 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무용과 비슷한 무언가를 찾아야 했고, 약간의 전망이 있는 것도 기대할 수 있는 무언가를.


그래서 찾은 것은 폴댄스였다. 나름 무용은 몸에 배어있어 유연하니, 폴에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멋지게 춤을 추는 댄서가 되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나. 강사가 돼서 사람에게 가르치고, 나중에는 자신만의 학원도 차려서 안정된 삶을 살게 하는 것, 바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최소한이지만 최대함일 수도 있다. 우물가에는 내가 데려갈 수는 있지만 떠먹는 것은 본인이 해야 하니까.


비록 지금 힘들더라도 참고 이겨내면서 무언가를 열심히 추구하고 노력한다면, 어느 순간 어느 시점에 하늘에서 알아주실 것이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는 어느 순간 카이로스의 긴 머리카락이 손으로 잡기 편한 위치에서 펄럭거리며 잡아주라고 할 때가 있으니까 말이다.


예전에 읽었던 논문이 있다. 논문 제목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방인이 타국에서 사람을 처음으로 만났을 때, 바로 처음 만난 사람의 영향력으로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논문을 읽으면서 감동을 느끼는 나를 보면서, 나 똘아이인가라고 생각이 들게 했던 논문이었다.


‘블라인드 사이드“라는 영화에서도 길거리를 헤매는 흑인 소년에게 손길을 내밀어 준 사람이 선한 그녀였기 때문에 미국에서 유명한 미식축구 선수가 된 게 아닐까. 만약 선한 그녀가 아니라 마피아의 그놈의 손을 잡았더라면, 끔찍한 일이 발생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미식축구 선수가 아니라 전설적인 범죄자가 될 수 있었음을, 얼마나 끔찍한가. 그래서 나는 기도한다. 나를 만난 사람들은 나로 인해 선한 영향을 받기를, 그래서 희망을 갖기를 말이다.


(나) ”잘 생각해보고, 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일단 해보는 거야, 알았지 “
(아가씨) ”네, 저도 잘하는 걸 찾게 되니 기분 좋아요 “
(나) ”날마다 집에만 처박혀있지 말고, 그냥 질러버려, 그럼 시간은 흘러가, 그냥 너를 위해 살아, 일단 네가 잘 살아야, 통일되면 엄마를 딱 데리고 살 거 아냐 당당하게 “
(아가씨) ”........................... “


자신을 사랑해야 누구도 사랑할 수 있음을, 누구를 미워하고 그리워하고 미안해하는 어두운 생각들은 자신의 마음을 좀먹는 바이러스와 같으니, 잊을 것은 빨리 잊고, 슬기롭게 자신을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 바로 짧은 인생살이의 묘미가 아닐까.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나를 규율할 수 없다. 미래의 나는 현재의 내가 어느 방향으로 방향키를 돌리느냐에 따라 인생 항로가 달라질 테니 말이다. 언젠가 한 번쯤은 아주 신나게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봐야 하는 것 아닌가. 100년도 못 사는 짧은 인생살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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