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언제 퇴직할지 모르지만, 그때 가서는 나이에 맞게 나름 괜찮은 곳에서 새로운 인생 살려면 뭔가 공부해야지”
(친구) ”공부를 평생 하냐, 이제 그것만 하고 즐기면서 살아라 “
친구의 말대로 나는 항상 뭔가에 쫓기면서 살았다. 1년 365일 그 안에 여러 계절이 바뀌듯이 내 인생의 색깔도 서서히 바뀌어가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 깨달았다. 10대 때는 왜 이렇게 20대가 안되는 거야 라고 시간의 느림을 원망했었고, 20대 때에는 사회 초년생으로 이리저리 뛰다가 보니 나름 시간이 빨리 갔다. 30대 때에는 가정을 안정적으로 만들어야 하니 꿈이고 뭐고 생각할 것 없이 그냥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살았다. 그러다 보니 나이와 비례되는 속도로 세월이 지나갔다.
40대가 되선 커가는 아이들의 등쌀과 세월의 강물에 떠내려가 버린 내 과거의 모습이 어느 순간 눈에 들어오면서 삶의 의욕이 순식간에 사라짐을 느꼈다. 힘이 없고 그냥 그냥 하루의 삶이 무의미해지는 느낌. 이런 느낌이 보통 갱년기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 그냥 그랬다. 그리고 훌쩍훌쩍하는 마음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느덧 50대로 풀쩍하고 넘어와버렸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매년 무언가를 했던 것 같다. 10대 때는 당연히 졸업장 따먹기 해야 하니까 공부를 했고, 20대 때는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나름 회사생활에 뒤처지지 않도록 직무상 필요한 공부를 했다. 그리고 살기 위해서 이직을 위한 법률 공부를 했다.
30대 때는 진급 공부를 한답시고 퇴근을 하면 주야간 언제 일을 했냐는 듯 상관없이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 물론 성과는 눈에 보이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지식으로만 내 머리와 가슴속에 남았지만.
나이 먹고 갱년기를 이겨보겠다고 다른 곳에 신경을 집중하면서 취미생활처럼 방송통신대학교에 편입해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끊김 없이 그냥 계속 질렀다. 어느덧 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학교 생활은 끝났다. 물론 지금도 내가 진정 배워보고 싶은 게 있어서 다시 방송통신대 대학원에 들어가고 싶은데 이제는 그때만큼 열정의 불꽃이 피지는 않는다.
지하도를 지나다 보면 계단 위에 항상 노숙자분들이 고개를 숙이고 머리맡에 밥그릇이 있었다. 밥그릇 안에는 동전 몇 개가 항상 들어있었다. 20대 초반의 내 눈에 보이는 계단 위의 노숙자분들을 보면서 내 미래가 저렇게 안되려면 뭔가를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계속 가졌었다. 그래서 항상 뭔가를 찾았었다.
매년 말쯤 되면 사람들이 어떤 자격증을 제일 많이 취득했는가를 순위로 발표를 한다. 사람들이 제일 많이 딴다는 것은 취업도 잘되기 때문이고, 반면에 너무 많아서 반작용이 생길 수도 있는 1위 자격증이 있다. 바로 지게차 건설기계 자격증이다. 나 또한 미래의 불안감을 줄이고 와일드카드로 쓸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수 년전에 지게차와 굴삭기 자격증을 따놓았다. 뭔가 매년 했다.
이래저래 자격증도 여러 개다. 물론 나이 먹고 써먹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지만 그냥 따놓았다. 내가 몇 년 전 1회 시험 때 딱하고 합격한 보험조사 분석사라는 자격증이 있다. 지금 내 나이에 써먹긴 힘들어진 자격증이다. 만약 30대만 되었어도 보험회사마다 있는 보험사기 조사 전담인 SIU로 이직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지금은 SIU로 이직하기에는, 아마도 잘 나가는 클럽의 물관리를 위해 정문에서 기도들에게 붙잡히는 물 버리는 대상자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직 가능성은 없어져버렸다. 젠장 나이는 숫자일 뿐인데.
그렇지만 지금도 뭔가를 한다. 50대 때 퇴직할지, 60대 때 퇴직할지 모르나 퇴직 이후 죽을 때까지 나름 괜찮은 인생의 업그레이드를 해줄 그것을 목표로 공부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중요한 시점에서 왠지 쉬고 싶다. 시간이 없어서 쉬면 안 되는데 그냥 쉰다. 그런데 나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미션 모두가 메시업을 해야 하는 쉽지 않은 인생 과제물인데, 아무튼 해야 하는 입장인데 그냥 두 손 놓고 멍 때리고 있다.
A 미션은, 내 인생을 위해 스스로 알아서 한다는 명목으로 하고 있는 것인데,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여러 법률과 건설 현장에서 기술자로서의 공법상 노하우를 메시업 해야 성공할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있다. 내 인생의 마지막까지 떵떵거리면서 나름 먹고 싶은 것 먹고, 놀고 싶을 때 놀면서 살려고, 퇴직 후 공무원 연금은 이제 기대도 안 하니까. 지금 연봉보다 퇴직 이후 연봉이 더 높다면 괜찮은 인생의 미션이 아닐까. 물론 내 기대지만. 그랬으면 좋겠지만. 충분히 가능할 것 같으니까.
B 미션은, 내 업무로 인해 타의의 강요로 해야 한다. 물론 내가 이 부분은 한다고 했는데, 수많은 경제 전담 수사관을 교육해야 하는 내 업무로 인해, 재산범죄와 민법, 그리고 민사소송법을 매시업 해서 단권화를 나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추가로 사람들의 금전적인 분쟁으로 쓰이는 고소장의 고소내용을 스토리텔링으로 분석하면서 형법과 민법을 매시업하는 작업도 해야 한다.
물론 현장에서 전담 수사관으로 일을 하면서 겪었던 사건 처리 경험과 수많은 사람을 상담하면서 느꼈던 부분을 녹여서,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 요즘은 많은 부분들이 매시업이 되고 있다. 어떻게 보면 하나의 일만 좋다면서 할 수 있는 세상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내가 B 미션을 해결한다면, 어느 서점에도 없고 어느 교육기관에도 없는 나만의 최초 작품으로 경제범죄 전담 수사관들을 위한 책으로 탄생할 것이다. 그런데 머릿속에서는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맴맴 하고 돌고는 있는데, 마음과 같지 않게 뭔가가 추진이 안되고 있는 듯하다. 아마도 내 에너지가 많이 떨어져서 충전이 필요한가라는 생각을 한다.
사람은 가끔 쉬면서 멘탈 케어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너무 써먹으면서 휴식을 취해주지 않은 것 같다. 아무 일도 안 하고 있으면 항상 불안한 것처럼 잡생각이 많이 드니까 뭔가를 계속 만들어서 하는 것 같은데, 이제는 조금 피곤하고 싫다. 조금은 놓고 싶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놓으면 안 된다. 미션 수행에 있어 시간이 그리 많이 주어지지 않아서.
빈곤 속의 풍요로움을 맛본 사람은 다시 빈곤으로 가고 싶지 않다. 바닥에 떨어져 본 사람은 다시 바닥에 떨어지고 싶지 않다. 그래서 뭔가를 한다. 계속 도전을 하다 보면 어떤 결과물이 내 인생을 건져줄지 모르니까 말이다. 그러나 나도 조금은 쉬고 싶다. 며칠이라도 멘탈 케어를 해야 다시 스스로 미션 수행에 박차를 가할 것 같다. 그래도 되겠지. 그래도 크게 인생이 바뀌지 않겠지, 며칠인데.